灤河祠 (난하사)
(副題: 題夷濟廟(제이제묘) 成三問
叩馬當年敢言非 (고마당년감언비)
大義堂堂日月輝 (대의당당일월휘)
草木亦霑周雨露 (초목역점주우로)
愧君猶食首陽薇 (괴군유식수양미)
말고삐를 잡고 간언하던 그때 감히 그릇됨을 말했으니
큰 의로움 당당하기가 해와 달 같이 빛나네.
초목도 주나라의 비와 이슬에 젖었거늘
부끄럽도다 그대들이어, 수양산 고사리를 먹었구나.
이 시는 이조 문종 때 성삼문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던 길에 호북성에 있는 백이숙제의 사당을 지나며 읊은 시입니다.
백이.숙제는 은나라 때 제후국인 고죽국의 왕자들로서, 당시 제후국 周가 天子국인 은나라의 紂임금을 치러 나가려 할 때, 周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은나라 정벌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주 무왕이 그의 父 文王의 위패를 전차에 싣고 전쟁터로 향했으니, 그것은 예의에 없는 일이오. 신하의 나라가 天子國을 정벌하려 하는 것은 군신의 도리가 아니다. 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왕을 막아섰던 것입니다. 감히 당당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叩馬之諫 (고마지간) 이란 고사도 있습니다.
이윽고 은나라가 망하자 은을 멸망시킨 周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는 特立獨行 (빼어난 뜻을 지니고 독특하게 행동) 한 선비였습니다.
중국인들은 백이숙제의 절개를 높이 사 사당까지 지어 놓고 그 뜻을 기리는데,
당시 조선의 선비가 그 백이숙제를 조롱한 것입니다.
‘주나라 것이라 하여 먹지 않는다면서, 고사리는 왜 먹는가?
그것도 먹지 말고 죽어야지.‘
성삼문의 대쪽같은 성품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우리말로 지은 시조에서도 그 기상이 서립니다.
수양산 바라보며 / 성삼문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수양산 바라보며 백이와 숙제를 한하노라
차라리 굶어 죽을진데 고사리를 캐 먹었단 말인가
비록 푸성귀인들 그 누구의 땅에서 난 것인가 (주나라 땅에서 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에서 읊은 시는 사람의 마음을 미어지게 합니다.
臨死賦絶命詩(임사부절명시)
죽음에 임하여 노래한 절명시-성삼문(成三問)
擊鼓催人命 (격고최인명)
西風日欲斜 (서풍일욕사)
黃泉無客店 (황천무객점)
今夜宿誰家 (금야숙수가)
울리는 저 북소리 이내 목숨 재촉하는데
서풍에 걸린 해는 뉘엿뉘엿 지려 하네
황천가는 길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자고 갈까.
대쪽 같던 선비도 저승 가는 길은 일반네들과 대동소이 합니다.
눈물이 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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