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음반을 내겠다 하니

甘冥堂 2012. 7. 31. 14:21

친구에게 우스개로

"나도 음반을 한 장 내려고 한다, 내 인생에 남는 게 뭐 있겠느냐? 노래라도 한 장 남기고 가야지.."

순진한 우리 친구는 내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같은 교회 다니는 가수 한 분에게 부탁을 했다 합니다.

한 달 전쯤, 한번 만나게 해 주겠다는 걸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습니다.

감히 내 정도의 실력으로 무슨 가수를 만나나? 어림 없지...혼자 주눅이 들기도 하고, 멋적어 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친구에게 또 전화가 왔습니다.

"그 가수도 시간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 어떻하냐? 한번 나와라."

또 다시 거절할 명분이 없어 마지 못해 집사람을 대동하고 나갔습니다. 친구 부부, 가수분 부부와 같이 시내에서 만났습니다.

시원한 데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상견례를 했습니다,

그 가수분은 술을 전혀 못한다고 합니다. 식사도 아주 조금씩 소식하고, 그러나 운동으로 단련되어 몸매가 단단합니다.

나이가 나보다 젊은줄 알았는데 올해 칠순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랍니다. 몸 관리를 철저히 하는 분이구나.

머리 뒤로 묶고, 흰 수염에, 삼베 저고리를 입으니 꼭 시골에서 올라 온 할아버지 같다고 핀잔 주는 집사람에게, 체면이 사정없이

구겨지고야 말았습니다.

 

식사 후,

노래방에 가자는데, 영 탐탁지 않았습니다.

1년 가까이 노래방에 가 본 적이 없었고, 더 큰 이유는, 술이 한 잔 얼큰해야 노래가 나오는 평소의 버릇 때문이었습니다.

술도 한 잔 안 마시고 맹숭맹숭하게 어떻게 노래를 불러?

그러나 가수 앞에서 무작정 싫다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마지 못해 따라 갑니다.

3.1빌딩 옆 골목에 있는 노래방에 갔습니다. 시설이 아주 훌륭합니다.

 

내가 미리 준비한 27곡의 메모를 내밀었습니다.

"이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곡도 있지만, 꼭 부르고 싶은 곡도 있다.  어떤 곡은 가사도 잘 모른다"고 하면서 한 수 부탁을 했습니다.

메모지를 훑어 보더니 보통은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합니다. 곡명만 보고 어찌 알겠습니까? 하기 좋은 소리지...

가수분이 먼저 노래를 한 곡 부릅니다. 과연 가수답습니다. 박자며 음정이며 감정이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합니다.

내가 부를 차례입니다. 쪽지에 적힌 대로 몇 곡을 불렀습니다. 일행들은 서로 양보하며 내게만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옆에서 직접 박자도 추어 주면서... 가수에게 현장 지도를 제대로 받았습니다.

조금 연습하면 괜찮겠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물론 초면에 인사치례의 말일 것입니다.

그 가수분은 어떤 좌석에서든 좀체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늘은 여러 곡을 자진하여 불렀습니다.

오늘은 좀 특별한 날 같다고 친구도 좀 의아해 합니다.

 

이리하여 첫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자신감은 오히려 반비례 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어휴! 저 경지를 어떻게 넘어..?

 

그 분 말대로, 돈을 받으면서 노래하는 가수와, 어쩌다 돈 내고 부르는 아마추어가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수가 되려면 노래 한 곡을 백번, 천번 부른다고 합니다. 그리해도 평생에 한 곡 힛트 칠까 말까한 험한 세상입니다.

술 한잔 마시고 제 멋에 겨워 부르는 노래를, 감히 프로 앞에서 폼을 잡았으니 얼마나 가소롭겠습니까?

그 가수분께 좀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얼른 귀를 씻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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