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詩 300首 飜譯

讀韓碑詩 / 李啇隱

甘冥堂 2012. 12. 27. 08:21

 

讀韓碑詩  /  李啇隱

                            한유의 비문을 읽고


元和天子神武姿,     원화시대 천자의 신무한 자세는,

彼何人哉軒與羲.     저 분이 어떤 분인가, 헌원씨와 복희씨라.

誓將上雪列聖恥,     맹세코 위로 열성조의 수치를 씻으려고,

坐法宫中朝四夷.     궁궐에 앉아 사방의 오랑캐들 조회를 하게 하였다.

淮西有賊五十載,     회수 서쪽에 도적들 오십 년에 걸쳐 할거하여,

封狼生貙貙生羆.     이리가 살캥이 낳고 살쾌이가 말곰을 낳아.

不據山河據平地,     산과 강에 거처하지 않고 평지에 거하면서,

長戈利矛日可麾.     긴 창과 날카로운 창으로 해도 찌를만 했다.

帝得聖相相曰度,     황제는 배도라는 어진 재상을 얻었는데,

賊斫不死神扶持.     적의 암살로도 죽지 않았으니 신의 도움이라.

腰懸相印作都統,     허리에 재상의 인둥이 차고 도통이 되어,

隂風慘淡天王旗.     음풍 참담한 곳에 황제의 깃발 세웠네.

愬武古通作牙爪,     삭 무 고 통이 부관이 되고,

儀曹外郎載筆隨.     예부의 원외랑 붓을 들고 따라 간다.

行軍司馬智且勇,     행군사마 한유는 지혜롭고 또 용감하며,

十四萬衆猶虎貔.     십사만 군대는 호랑이와 맹수 같았다.

入蔡縛賊獻太廟,     채주에 들어가서 적을 묶어 태묘에 바치니,

功無與比恩不訾.     공은 비할 사람 없고 성은은 헤아릴 수 없다.

帝曰汝度功第一,     황제가 말하기를 당신 배도의 공이 제일이라,

汝從事愈宜為辭.     그대의 종사관 한유가 글을 지어야겠다고 말씀하신다.

愈拜稽首蹈且舞,     한유가 머리숙여 배알하고 발을 구르고 춤추며,

金石刻畫臣能為.     금석에 새길 문장은 제가 지을 수 있으나.

古者世稱大手筆,     예로부터 고금에서 말하는 이른바 저명한 글이라,

此事不繫於職司.     이 일은 제가 할 일은 아니지만.

當仁自古有不避,     仁은 예로부터 양보하지 않지요,

言訖屢頷天子頥.     말을 다하니 천자께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셨다.

公退齋戒坐小閣,     공은 물러나 제계하고 작은 누각에 앉아,

濡染大筆何淋漓.     큰 붓을 적시니 어찌 흥건하지 않은가.

点竄<堯典><舜典>字,   <요전><순전>의 글을 손질해 놓고,

塗改<清廟><生民詩>.  <청묘><생민의 시> 새롭게 고쳐 놓았네.

文成破體書在紙,     문장이 완성되자 행서체로 종이에 쓰고나서,

清晨再拜鋪丹墀.     새벽에 임금께 재배하고 단청 대에 펼친다.

表曰臣愈昧死上,     표문에 이르기를 신 한유가 죽음을 무릅쓰고,

詠神聖功書之碑.     신성한 공적을 노래 했으니 비에 새겨 주소서 했다.  

碑髙三丈字如手,     비석의 높이는 삼장에 글자는 손 만하고,

負以靈龜蟠以螭.     영험한 거북이에 얹어 용이 서리어 둘렀다.

句竒語重喻者少,     글귀는 기묘하고 말이 심오하여 읽어 아는 이 드문데,

之天子言其私.     천자에게 참언하여 그것은 사사롭다 말했다.

長繩百尺拽碑倒,     긴 포승줄 백척으로 비를 넘어뜨려 끌어내어,

鹿砂大石相磨治.     녹사 큰 돌로 서로 갈아 없애 버렸다.

公之斯文若元氣,     한유의 이 문장은 원기와도 같아서,

先時已入人肝脾.     그 전에 이미 사람들의 간과 비위에 들어갔다.

湯盤孔鼎有述作,     탕왕의 대야와 공씨의 솥에 명문이 있었는데,

今無其噐存其辭.     지금 그 기물은 없어도 그 말은 남아 있다.

嗚呼聖皇及聖相,     오호라. 성스런 임금과  성스런 재상의 이름,

相與烜爀流淳熈.     서로 함께 빛나며 환하게 전해지고 있다.

公之斯文不示後,     한유의 이 문장이 후세에 보이지 않았다면,

曷與三五相攀追?    어찌 삼황오제와 더불어 반추될 수 있겠는가?

願書萬本頌萬遍,     바라건데, 만 번을 쓰고 만 번을  읽어,

口角流沬右手胝.    주둥이에 거품이 나오고 오른손에 못 박히게 하여.

傳之七十有二代,     칠십이대에 까지 전하여,

以為封禪玉檢明堂基.  봉선문이 되고 명당의 터가 되었으면 좋겠네.

 

 

韓碑: 한위가 지은 <平淮西碑>를 말한다. 당헌종 원화12년(817)10월, 승상 裵度는 군대를 이끌고 반란군인 회서번진 吳元濟를 토벌하였는데, 절도사 李愬가 눈 내리는 밤중에 채주에 들어가 오원제를 생포하였다. 12월 황제의 명으로 한유에게 <평회서비>를 짓게 하였다. 비문중에 배도의 공을 돌출나게 하자 이소의 불만이 생겼다. 이소의 처는 唐安公主의 여식이었음으로 궁에 들어가 당 헌종에게 비문이 부실하다고 진술하였다. 그래서 어명을 내려 한위의 비문을 지워없애고, 한림학사 段文昌에게 다시 짓도록 하였다.  이 두 편의 비문을 비교하니 한유의 비문에는. 배도와 이소의 전쟁중의 역할과 공적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진술되어 있었고, 더구나 문학적 가치가 단문창의 것 보다 우수하였다. 이상은은 한유의 객관성을 지지하여, 시에서 한비를 추승하며 칭찬하였다.

 

列聖恥: 안사의 난 이후 번진이 여러 번 반란을 일으켜 황제가 피란가는 치욕을 당했다. 封狼(봉랑): 큰 이리. 貙貙,(추.chu): 살쾌이와 비슷한 맹수. 羆(비.pi): 말곰. 모두 맹수들로서, 번진의 흉폭함을 비유하며, 이들은 몇 대에 이어졌다.  日可麾:  麾(hui)는 揮와 통한다. 이 두 구는 번진이 스스로 군대가 강병하다는 긍지로, 산하의 험한 지세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며 평원에 거하면서 공공연하게 조정에 대항하엿다.  斫: 벨 작.

 

賊斫不死: 당시 재상 무원형, 어사 배도는 출병하여 회서를 평정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절도사 왕승종, 이사도는 오원제를 사면하여 전쟁을 피할 것을 요구하여, 조정이 격렬히 논쟁하였다. 원화 10년 6월, 이사도는 자객을 보내 무원형과 배도를 암살하려 했다. 무원형은 비명에 죽었으나 배도는 요행히 살아 남아 후에 재상이 되었다.  神扶持: 하늘이 보우하여.  헌종이 배도가 죽지 않았음을 알고, 말하기를 "배도는 모든 것을 얻었으니 하늘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愬武古通(소무고통): 배도의 부장이었던 이소. 한공무. 이도고. 이문통을 가리킨다. 이소는 원화 11년(816) 당등수절도사가 되어 오원제를 평정 했다. 牙爪(아조): 무장. 배도의 부장을 가리킨다. 貔: 비휴 비(맹수의 일종)  訾: 헤아릴 자. 비방할 자. 屢頷: 여러 루, 끄떡일 암.  頥: 턱 이.  淋漓:물 뿌릴 림. 스며들 리. 많이 흘러 흥건하다.

 

点竄(점찬): 字句를 수정하다. 점은 지워서 없애는 것이고, 찬은 바꾸는 것이다. 점찬 두 글자는 한유의 필법이 <서경>의 <요전>과 <순전> 및 <시경>의 <아><송>에 필적함을 칭송한 것이다.  破體: 서체 중 행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하나, 여기서는 당시의 보통 서체와는 다르게 파격적으로 썼다는 의미다.  丹墀(단지): 붉은 계단. 궁궐 안의 붉은 계단을 말한다.  昧死(매사): 죽을죄를 범하다. 신하가 왕에게 표문을 올릴 때 자신의 글이 형편없다는 뜻에서 상투적으로 쓰던 말이다.  靈龜(영귀): 신령스런 거북이. 蟠(반): 서리다. 똬리를 틀다. 螭(이): 교룡. (참): 참언하다. 

 

湯盤(탕반): 商 탕왕의 세숫대야. 그 세숫대야에 "날마다 새롭게하면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 질 것이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孔鼎(공정): 공자의 조상인 孔正考父의 솥. 그 솥에 한 번 명함에 숙이고 두 번 명함에 구부리고, 세 번 명함에 구부리면, 담장을 따라 걸음에 나를 감히 업신여기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一命而僂, 再命而傴, 三命而俯. 循墻而走, 亦莫予敢侮)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烜爀(훤혁): 명성과 위엄이 밝게 빛나는 모양. 淳熈(순희): 환히 빛나다.  三五: 상황오제. 攀追(반추): 따라잡다. 胝(지): 굳은 살.  傳之: 한유의 문장이 천추만대로 이르도록 전해지기를 바란 것이다.  有: ~와. 또.  封禪(봉선): 천지신명께 제사 지내다. 태산 위에 흙으로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을 봉이라 하고, 태산 아래의 작은 산인 梁父山 위에 땅을 쓸고 평평하게 하여 산천에 제사 지내는 것을 선이라 한다.  玉檢: 봉선문을 넣어두는 옥상자. 봉선문을 가리킨다. 明堂: 황제가 정교를 펼치고 제후를 접견하고 제사를 거행하고 인재를 선발하는 일을 하던 곳.

 

작자 이상은(813~858) 자 義山. 호 옥계생. 회주 하내 사람으로 대화년간에 천평절도사 영호초와 알게 되어, 837년 진사에 등과되었다.

영호초가 죽자 경원절도사 왕무원의 서기가 되었고, 왕씨 여와 결혼하였다.  당시 영호초 父子는 牛黨이였고 왕무원은 李黨이 되어 서로 배척하였다.  우당이 득세하자 이당의 왕무원의 딸과 결혼한 이상은을 배은망덕하다 하여,  종신토록 坎凛되어 불우하였다.

 

이상은은 만당시의 거벽으로 두목과 더불어 "小李杜"라 불렸다. 작은 이백, 두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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