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애 보는 일

甘冥堂 2013. 5. 16. 09:28

무엇인가 목적을 잃어버린 것 같은 텅 빈 마음을 무어라 하는가?

책 한 권 번역하고 나니,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것 같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것도 들쳐 보다가 저것도 찔끔 들쳐보고.

아무 일도 않으면서 멍하니 앉아있기 일쑤이고, 막상 책을 읽으려해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보름 가까이 이런 멍한 상태에서 보내고 있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마음만 바쁜, 정신 집중이 안 되어 건성건성 시간만 때우고 있다.

 

오늘 안하면 내일 하지 뭐. 이거 뭐 오늘 당장 해야하는 일도 아니니. 술이나 한 잔 하지.  매일 같이 술을 마신다. 마음이 그런쪽에 있으니 몸이 따라갈 밖에. 빨리 다음 목표를 세워야 한다. 하긴 '이생에서 해야 할일'의 목록을 만들어 놓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할일 들이니 당장 할 일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진작부터 준비해 놓은 책을 번역할까 아니면 다른 것을 할까 고민 중이다.

 

어제 동학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 어느 동학이 일이 바빠 공부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다소 맥 빠진 소리를 한다.

생각해 보면 일 년에 100 만원 남짓, 한 달로 치면 월 10만원도 안 되는데, 그 돈으로 배움의 끈을 이어 갈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이냐?

아닌 말로 술 한 잔 안 마시면 될 돈을 가지고 이렇게 일주일에 한번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공부도 하고, 이런 모임이 어디에 있느냐? 모여 앉아 쓸데없는 수다나 떨고, 남 흉이나 보고, 몰려 돌아디니는 것 보다야 백 번 낫지 않느냐? 같이 모인 동학들도 모두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한다.

 

이웃 친구에게  사이버 대학이나 방송대학에 들어가서 공부 한번 해보라 권하니, 내 말을 들은 것인지는 몰라도 입학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두고 말았다. 눈이 아파 책을 읽을 수가 없어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아니면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다.  평양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지 뭐 어쩌겠나. 같이 이웃에 있어 서로 배움에 대한 담소를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크게 기대를 했었는데... 나 혼자 아쉬울 뿐이다.   

 

지금 이 나이에 무얼 할 수 있을까?  이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 기껏해야 허드렛일 밖에 더 있겠는가? 배운 게 있나, 아는 게 있나? 그렇다고 돈이 있나 배경이 있나?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데 과연 무얼 할 수 있나? 친구들에게 늘 얘기하듯 이 사회에서는 나이 먹은 게 죄인인 사회다. 너무 맥빠지는 얘기만 한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지난번에 동창 몇명이 왔다. 뭐 하며 지내냐 하니, 요새 재산 정리하러 다닌다고 한다. 요샌 남은 재산을 잘 관리하는 게 돈 버는 거란다. 재산을 자식에게 부인에게 어떻게 쪼개주어야 절세가 되는지, 그걸 연구하며 또 그 일을 하러 다닌다고 했다. 증여세니 상속세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었다. 다 나누어 주고, 남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잘 먹고 즐기다가 떠나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날 점심 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과하게 음식을 주문하는 걸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뭐 그럴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나? 앞으로 자주 만나 술 한 잔 하자며 헤여졌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는 친구도 있는 거다. 왠지 썩 마음이 편치는 않다. 친구가 부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거 뭐 그렇게 까지 할 것 뭐 있나. 적당히 살다 죽으면 어련히 자식들이 알아서 잘 챙길까? 그걸 뭐 벌써부터 정리한다고 바쁘게 뛰어 다니냐?

 

친구가 김포에 아파트 경비 자리가 비었으니 오라고 성화다. 그 성의야 고맙기 이를 데 없지만, 하는 일도 있고, 농사도 지어야겠고, 생각해 보겠다고 얼버무리고 있다. 지난번에 딱 부러지게 안 한다고 했는데 자꾸 부르는 것이, 우리 친구도 옆이 허전한 모양이다. 같이 근무하면 서로 좋을 텐데.. 그럴 수 없어 아쉽다. 

 

남 얘기 할 때가 아닌 것이, 난 뭐 그리 똑바르게 처신하고 있는가. 나도 남들이 볼 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백수인 것을.

내일부터 석가탄신일 연휴다. 아이들이 강원도 가자는데 옆에 있어주어야 한다. 당장은 애 보는 일. 그게 내가 할 일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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