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烈女 洪娘의 사랑 이야기

甘冥堂 2014. 11. 23. 19:44

파주지역에는  함경도 洪原 땅의 기생 愛節(이하 홍랑이라 칭한다)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조 중엽 최경창(호:孤竹)이란 분이 1572년 함경도 병마절도사의 부관으로 있었다.

그는 임지에서 홍랑(洪娘)이라는 기생과 지냈는데 한양으로 발령을 받아 함경도를 떠나게 되었다.

홍랑은 최고죽을 따라 쌍성(지금의 함경남도 영흥지방)까지 쫒아와서 이별했다.

咸關嶺(함경남도 함주군과 흥원군 사이에 있는 고개)까지 왔으나, 더 이상 쫒아갈 수가 없었다.

당시 兩界之禁이란 국법이 있었는데,  함경도와 평안도 사람들의 서울 도성 출입을 제한하는 제도 때문이었다.

이 함관령에 이르렀을 때 해는 어두워지고 비가 내렸다. 이에 홍랑은 시를 지어 최고죽에게 부쳤다.

 

그 이듬해 최고죽이 병이 들어 오랫동안 누워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홍랑은 그날 즉시 길을 떠나서 칠일 밤낮을 걸어서 한양에 도착했다.

그러나 양계지금(兩界之禁)이란 제도가 있었고 또한 국상을 치르고 소상을 지난 지 1년이 지났어도 평상시 같지 않았다.

홍랑은 그냥 함경도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별할 때 시 두 편을 써서 보냈는데 그 한 편에서 말하기를,

 

相看脉脉贈幽蘭   (상간맥맥증유란)

此去天涯幾日還   (차거천애기일환)

莫唱咸關舊時曲   (막창함관구시곡)

至今雲雨暗靑山   (지금운우암청산)

 

서로 말없이 바라보며 그윽한 난초를 주노라

지금 하늘 끝으로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으랴?

함관령의 옛노래를 부르지 말라

지금은 구름과 비가 청산을 어둡게 하는구나.

 

최경창이 죽은 후에 홍랑은 스스로 얼굴을 칼로 그어 훼손하고 파주에서 묘살이를 했다.

임진왜란이 났을 때는 고죽의 시고를 홀로 짊어지고 병화를 면하게 했다.

죽어서는 고죽의 묘 아래 묻혔다.

 

이 사랑 이야기가 너무 절절하여 가슴을 아프게 한다.

본 부인도 아닌 기생의 몸으로 사랑하는 이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사모하다니, 그저 먹먹할 뿐이다.

최경창의 후손들이 이 소식을 듣고 홍량의 뜻을 기렸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묘지가 파주 지역 어느 곳에 있다는데 찾아가서 술 한 잔 따르고 싶다.

 

최경창: 조선 중기의 문인. 晩唐風의 시를 써서 삼당시인이라 불렸다. 三唐시인이란 백광훈, 이달. 최경창 3분이다.

雲雨之情: 은택을 비유. 남녀의 交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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