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思親 / 申師任堂

甘冥堂 2015. 9. 13. 23:41

思親 / 申師任堂

 

千里家山萬疊峯      천리 고향땅은 첩첩 봉우리 넘어

歸心長在夢魂中      돌아가고픈 마음 꿈속에 길게 남네.

寒松亭畔孤輪月      한송정 언덕 외로운 달

鏡浦臺前一陣風      경포대 앞 한줄기 바람.

沙上白鷺恒聚散      백사장 백로는 모였다 흩어지고

海門漁艇各西東      포구의 고기잡이 배 동서로 흩어진다.

何時重踏臨瀛路      언제 강릉길을 다시 밟아

更着斑衣膝下縫      색동옷 입고 어머니 슬하에서 바느질 할까.

 

 

[주요용어]

臨瀛: 임할 임. 바다 영. 지금의 강릉을 가리킨다.

斑衣: 색동옷. 班衣之戱라는 성어가 있다. 춘추시대 초나라 老萊子는 그의 어머니가 70이 된 자식을 보고는

아들이 이렇게 늙은 것을 보니 우리 살날이 엄마남지 않았구나.’ 탄식하는 걸 듣고,

색동옷을 지어 입고 작은 북을 두드리며 춤을 추는 등 재롱을 떨어 노모를 즐겁게 해 드렸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작품의 감상]

仄起式 東韻 칠언율시다.

강릉에서 시집으로 돌아가는 언덕길은 험한 길이다. 대관령에서 내려다보니, 고향마을은 첩첩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강릉.

그 고향땅은 아득히 먼 길이지만, 꿈에도 생시에도 돌아가고픈 마음뿐이다.

고향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송정 가에 외로이 뜬 달 그리고 경포대 앞을 스치는 한 가닥 바람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갈매기 떼는 모래밭에 모이고 흩어지고 바닷가에 고깃배 동서로 오락가락 하는데 이는 한 폭의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때나 고향 길 다시 돌아가서 색동옷 갈아입고 그리운 어머니 무릎 밑에서 바느질해볼까.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이 곳곳에 묻어난다.

 

수련에서 멀리 떨어진 고향에 대한 회상은 천리 길과 첩첩의 봉우리로 고향땅을 표현하고 있다.

천리나 되는 머나먼 고향 길과 그 길은 첩첩 수많은 산으로 둘러싸여 가고는 싶으나 갈 수가 없음을 대구로 하였으며,

頷聯 頸聯에서는 고향의 정경을 그림 그리듯 묘사하였다.

尾聯에서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픈 시인의 소망을 표현했다.

특히 미련에서 색동옷 입고 어머니 무릎 아래에서 바느질하고 싶다는 표현은, 나이 칠십에도 어머니 앞에서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어

늙으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렸다는 老萊子의 고사를 인용했다.

 

 

 

[餘滴]

오늘 처가댁 장모님 기일에 갔더니 위의 시를 쓴 병풍  아래 젯상을 모셨다.

평소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오늘 자세히 살펴보니 사임당의 글이었다.

관심이 있는 것만 눈에 들어온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보인다는 말이 실감 난다. 예사로 그냥 지나치기를 몇 년. 그 글이 오늘에야 보이다니.... 

 

 

[작가의 전기]

조선중기의 여류 서화가로 본관 평산(平山). 호 사임당(師任堂: 思任堂: 師妊堂)이다. 강원 강릉 출생. 율곡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으며 어려서부터 경문을 익히고 문장·침공(針工자수에 능했으며,

특히 시문과 그림에 뛰어나 여러 편의 한시 작품이 전해진다.

또한 안견(安堅)의 영향을 받은 화풍은 여성 특유의 섬세 정묘함을 더하여 한국 제일의 여류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山水·포도··벌레 등을 잘 그렸으며, 자녀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었다.

 

사임당은 19세에 결혼한 후에도 홀어머니를 모시고, 친정인 강릉과 서울의 시댁을 오가며 양가를 봉양했다.

신사임당의 남편 이공은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그리 출중한 실력을 가진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혼시절 신사임당은 남편의 출세를 위해 10년 별거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달 못 가서 남편은 다시 돌아왔고, 결국 사임당은 그에게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중이 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부인의 마음을 이해한 남편은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