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畜猫說 (휵묘설)

甘冥堂 2015. 10. 24. 08:43

 畜猫說 / 權好文

 家本貧, 箱庫無儲, 우리 집은 본디 가난하여 창고에 쌓아놓은 곡식이 없기 때문에
不患有物之害.      쥐로부터 해를 당할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而西成揫穀,         그런데 가을에 추수를 마치고 곡식을 쌓아놓자,
則羣鼠忽集,         뭇 쥐들이 갑자기 모여들어서는
穿其壁, 窺其戶,    벽을 뚫고 문틈을 엿보았다.

或鬧於樑,           들보 위에서 시끄럽게 돌아다니거나
或跳於床,           혹 침상에서 뛰어다니기도 하였으며,
嚙衣百孔,           옷을 쏠아 구멍을 뚫어놓기도 하고,
竊穀千穴,           곡식을 훔쳐서 자신들의 소굴로 가져가기도 하여,
害莫極焉.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除之無術,          그런데 이놈들을 제거할 길이 없었다. 
乃丐鄰家小猫,    이에 이웃집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 와서
慈以育之.          잘 보살펴 주면서 길렀다.

踰數月,             기른 지 몇 달이 지나자
有摶殺碩鼠之謀, 고양이는 ‘석서(碩鼠)’를 잡는 꾀가 생겨났다. 
朝傍墻竇,          아침나절에는 담장에 있는 쥐구멍을 엿보고,
夕伺甕間,          저녁나절에는 장독 사이에서 쥐를 노려보다가,
必食盡其肉,       반드시 석서를 잡아 다 뜯어 먹은
然後爲足.          다음에야 흡족해하였다. 

  <中略>

嗚呼,                 아,
食肉於國者,        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받아먹으면서 ‘고양이’의 역할을 해야 할 자들이, 
苟不除城狐社鼠,  나쁜 짓을 하여 백성들에게 폐해를 끼치는 ‘쥐새끼’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則將焉用彼相哉? 그런 녹만 축내는 쓸모없는 고관을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大率獸身而人心者有之, 대개 짐승의 몸을 하고서도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도 있으며,
人面而獸心者亦有之.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도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도 있는 법이다. 
世之人而鼠者多矣.      이 세상에는 사람으로서도 쥐새끼 같은 짓을 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惜乎,                       참으로 슬픈 일이다.
衣君衣食君食,           나라에서 주는 옷을 입고 나라에서 주는 곡식을 먹으면서도
不修其職者,              자신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자들이여, 
寧無愧於吾猫乎.        어찌 우리 집의 고양이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쥐같은 위정자들이 많다.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부정을 저질러 놓고도 손사래치며, 치부를 하고서도 청렴한 체 한다.

이런 자들이 아직도 활개를 치며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나라 꼴이 우습다.

 

정치를 한다는 국회의원들 다수가 이런 류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말로는 大國인 미국도 원조한다.

이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나라꼴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저희들 밥그릇 챙기기에 열중인 의원들, 게다가 의원수를 더 늘리려 갖은 궤설을 늘어놓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고양이는 누구인가?

누가 있어 이 쥐새끼들을 노려보다가 반드시 다 잡아 먹을까?

 

朝傍墻竇,          아침나절에는 담장에 있는 쥐구멍을 엿보고,
夕伺甕間,          저녁나절에는 장독 사이에서 쥐를 노려보다가,
必食盡其肉,       반드시 석서를 잡아 다 뜯어 먹은
然後爲足.          다음에야 흡족해하였다. 

고양이 역은 국민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노려는 보지만 쥐새끼인 저들을 잡아먹을 수는 없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처리한다 해도 사후약방문이기 일쑤다.

 

 


  이 글을 지은 송암(松巖)은 경상도 안동(安東) 출신으로, 이황(李滉)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같은 문하생인 류성룡(柳成龍)ㆍ김성일(金誠一) 등과도 교분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송암은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채 자연에 묻혀 살면서 학덕(學德)을 닦았다. 
이 때문에 이황은 송암에 대해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평하였고, 
류성룡은 ‘강호고사(江湖高士)’라고 칭하였다.

  송암의 이 글에 나오는 ‘석서(碩鼠)’라는 말은, 생쥐와 같은 작은 쥐들보다 훨씬 더 큰 쥐를 말한다. 
이 단어는 본디 『시경(詩經)』 「위풍(衛風) 석서」에 나오는 시의 제목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시에,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말라. 삼 년이나 서로 알고 지냈는데, 나를 돌보아주지 않는구나. 
[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라고 하였다. 
이 시로 인하여 후대에 이 석서라는 단어는 ‘난폭하여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위정자(爲政者)’나 ‘탐욕스러워서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치는 범죄자(犯罪者)’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 권호문(權好文:1532∼1587), 「고양이를 기르는 데 대한 설[畜猫說]」, 『송암집(松巖集』

(손종흠교수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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