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漁父詞 / 張志和

甘冥堂 2015. 10. 29. 00:34

漁父詞(어부사) - 張志和(장지화)

 

 - 일명 <어가자(漁歌子)>라고도 하는 당대 교방곡(敎坊曲)의 하나이다.

 

 

西塞山前白鷺飛  (서새산전백로비)     서새산 앞으로 백로가 날고

桃花流水鱖魚肥  (도화유수궐어비)     복사꽃 흐르는 물에는 쏘가리 살쪘구나

靑箬笠, 綠簑衣  (청약립, 녹사의)       푸른 댓잎 삿갓에 초록 도롱이 두르고

斜風細雨不須歸  (사풍세우불수귀)     바람에 흩날리는 보슬비에도 돌아 갈 줄 모른다.

 

 

  鹭:  해오라기.백로.    鳜鱼 쏘가리 .   青箬笠    대나무로 만든 삿갓 .    绿蓑衣    도롱이 .   

 斜风     비스듬히 부는 바람.     细雨    가랑비.     반드시     ~하여야 한다.

 

 

장지화(張志和)는 당()나라 때 은사(隱士)로 초명(初名)은 장구령(張龜齡),

'지화'는 나중에 숙종(肅宗) 임금이 내린 이름이다.

16세에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숙종 때 좌금오위녹사참군(左金吾衛錄事參軍)에 제수되었고, 뒤에 남포위(南浦尉)로 좌천되었다가 사면되었으나 벼슬하지 않고 강호(江湖)에 은둔하며 스스로 연파조도(煙波釣徒)라 했다.  그는《현진자(玄眞子)》와 《대역(大易)》15권을 썼고, 영원히 역사책에 남을 천고의 절창 “어가자(漁歌子)” 또는 “어부사(漁父詞)”를 지어 이에 의거하여 세부조항까지 절묘하게 그린 전무후무한 어부화권(漁父畵卷)을 그려, 세상에서 고아한 그림의 전형이 되었다.

 

그는 신선술을 익혀 술을 서말(三斗)이나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눈위에 누워서도 추위를 몰랐다 한다.

늘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미끼를 달지 않았으니 그 뜻이 물고기에 있지 않았다(每垂釣 不設餌 志不在魚也). 사람들은 그를

연파조수(煙波釣叟)라 불렀다.

 

그는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다.

명나라 화가 동기창(董其昌)은 그의 문집畵旨(화지)에서 "옛 사람들은 일품(逸品)을 신품(神品)보다 위인 맨 꼭대기에 놓았으니

역대로 오직 장지화(張志和)만이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昔人以逸品置神品至上歷代唯張志和可無愧色)라고 했다.

 

그는 태호(太湖)와 오흥(吳興)의 초계(苕溪)와 삽계(霅溪)를 오가며 고기잡이하며 은거했다. 그가 이곳에 이르러 "물 위에 둥실 뜬 집을 지어

초계와 삽계 사이를 오가기를 바란다"(願爲浮家泛宅 往來苕霅之間)고 했다는 고사(故事)는 유명하다. 초계(苕溪)와 삽계(霅溪)는 절강(浙江)

오흥현 남쪽에 있는 강이다.

 

임포(林逋)가 서호(西湖) 고산(孤山)에서 매화(梅花)를 아내로, ()을 자식으로 삼아(梅妻鶴子) 은거했다면, 장지화(張志和)가 나무꾼을 계집종으로 삼고, 어부를 사내종으로 삼아 은둔생활을 했다. 이로부터 초비어노(樵婢漁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