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세월이 가면

甘冥堂 2016. 2. 19. 22:10

세월이 가면 (박인환 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님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술자리에서 문득 이 싯구가 생각 나. 한 소절을 읊조린다.

그 눈동자 입술 내 가슴에 있어....

안습. 술에 취했나 아련해 진다. 

친구의 눈에도 희미하게 안개가 서리는 듯. 안경이 뿌예지는 것 같다.

어느 불로그에 이런 글이 있다.

시인의 면모를 연상할 수 있는 것 같아 옮겨왔다.


 주모, 술 좀 가져와.”

또 외상?”

갚으면 되잖아.”

꽃 피기 전 죽으면 어떡하노?”

 

마담은 눈을 흘기면서 시인 박인환 앞에 술 주전자를 새로 채워 식탁에 탁 놓았다.

그러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를 손가락에 낀 채 명동 동방 살롱 문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1956년 이른 봄, 서울 명동 한 복판. 동방 살롱 맞는 편에 허름한 빈대떡 집의 깨진 유리창 너머로

세월이 가면노래가 애잔하게 흘러나온다.

상고머리의 박인환이 작사를, 이진섭이 작곡을 하고 임민섭이 노래를 부른다.

 

불후의 명곡, 명동의 샹송 세월이 가면이 만들어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 곳은 첫 발표회나 다름없는 빈대떡 집이었다.

텁텁한 막걸리 잔이 식탁 위에 악보와 함께 어지러이 널려져 있다.

애처로운 노래에 감흥을 못 이긴 박인환은 막걸리를 들이 키고 우렁찬 성량의 임만섭이 목청을 가다듬는다.

길 가던 사람들이 깨진 유리창 너머로 힐끗힐끗 이들을 보며 지난다.

 

천재시인 박인환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쓰고 나서 한동안 흥분하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

부지런히 원고도 써서 몇 푼 원고료를 받지만 집에 떨어진 쌀을 살만큼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명동 백작으로 불리던 이봉구와 신라의 달밤을 잘 부르는 임궁재 등과 함께 하염없이 쓸쓸한 얼굴로

명동거리를 거닐며 국수 한 그릇에 술잔을 비우곤 했다.

 

불후의 명곡 세월이 가면이 완성되던 날.

이진섭과 함께 어디서 그렇게 낮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불콰했다.

 

당시 단성사에서 상영 중인 롯사노 브릿지와 캐서리 헵번 주연의 <여정>을 보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못 가고

세월이 가면을 술집에 앉아 애처롭게 불렀다.

 

그리고 사흘 후 친구인 김훈한테 자장면 한 그릇을 얻어먹은 박인환은 술에 만취되어 집에 와 잠을 자다가

31세의 아까운 인생을 마감했다.

 

세탁소에 맡긴 봄 외투도 돈이 없어 못 찾고 두꺼운 겨울 외투를 그대로 입은 채 였다.

박인환은 무슨 이유에선지 눈을 감지 못하였다.

부음을 듣고 맨 먼저 달려 온 친구 송지영이 감겨 주었다.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못 사주었다면서 김은성이 조니워커 한 병을 체온이 싸늘하게 식은

박인환의 입에 주르륵 부어대자 다들 울었다.

 

그의 상여 뒤로 수많은 선후배들이 따랐다.

공동묘지까지 따라 온 친구 정영교가 담배와 조니워커를 그의 관 위에 부어 주었다.

모윤숙 시인이 고인의 시를 낭송 하였고 친구인 조병화 시인이 조시를 읽었다.

 

인환이 너 가는구나

대답이 없이 가는구나

 

너는 누구보다도 멋있게 살았고

멋있는 시를 쓰고

.

.

 

박인환의 또 다른 이야기

 

19563월 하순의 어느 날 초저녁, 명동 뒷골목 목로주점

 경상도집에 시인 박인환, 작곡가 이진섭, 가수 겸 영화배우 나애심 등이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거리 곳곳은 물론 목로주점 안에도 625전쟁의 매캐한 상흔이 어지러이 남아 있었다.

 

술이 거나해지자 이진섭이 나애심에게 노래 한 곡 불러보라고 지분거렸지만 나애심은 딴청만 부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거나 말거나, 박인환은 주모에게서 받은 누런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흐릿한 시선으로 박인환의 손길을 이윽히 건너다보던 이진섭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종이를 낚아챘다.

 

박인환의 대표 시세월이 가면이었다.

시를 빨아들일 듯 몇 번을 곱씹어 읽은 이진섭은 즉석에서 곡을 붙여

나애심에게 한 번 불러보기를 청했다.

 

삶의 고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애심은 악보를 보며 성의 없이 노래를

한 번 불러보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불멸의 대표곡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린 것이다.

 

잠시 뒤 성악가 임만섭과 소설가 이봉구가 왁자지껄 주점으로 들어섰다.

박인환과 이진섭은 분주하게 두 후래자後來者와 인사를 나누고 찌그러진

양은술잔에 거푸 막걸리 석 잔씩을 권한 뒤 이진섭이 임만섭에게 악보를 건네주었다.

 

두세 차례 악보를 찬찬히 읽은 임만섭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렁찬 테너로 세월이 가면을 열창했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명동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우르르 경상도집앞으로 몰려들었다. 청중들의 열렬한 앵콜 요청에

임만섭은 다시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켜더니 세월이 가면을 재창再唱했다.

 

노래는 금세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래서세월이 가면은 드물게 성악곡으로 보급되었는데, 세인들에게는명동엘레지로 널리 알려졌다.

훗날 애잔한 음색의 대중가수 박인희가 원제인 세월이 가면으로 리바이벌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경상도집에서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10년 전에 타계한 첫사랑 여인의 기일을 맞아 망우리 공동묘지를 다녀왔다.

세월이 가면은 피를 토하듯 그 첫사랑에 얽힌 애절한 추억을 한 올 한 올 반추한 정한情恨이었다.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가랑잎이 나뒹구는 옛 연인의 헐벗은 묘지를 바라보던 젊은 시인의 적막한 심경이

시공을 건너와 가슴을 엔다.

 

그러나 사람은 가더라도 두 연인의 절절한 사랑이 사라질 리야 있겠는가.

그 처연한 심사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을.

 

이 시를 마지막으로 박인환은 며칠 뒤인

1956329,

자택에서 잠들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사인은 과음에 의한 심장마비.

(요절이 애통하기는 하지만 이 얼마나 부러운 죽음인가!)

이 땅에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세계를 펼친 열정적 시인이 만 30세의 너무나 아쉬운 나이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춥고 배고픈 시절임에도 언제나 깔끔한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명동을 누볐던

명동신사박인환은 동료 문인들의 청을 받아들인 미망인의 양해 아래 망우리 공동묘지  옛 연인의 묘 옆에 묻혔다.

 

……참으로 너는 정들다 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가는구나

 

조병화 시인이 동료시인 박인환의 발인 때 낭독한 조시弔詩의 마지막 구절이다.

조병화 역시 명동의 여러 목로주점을 단골로 드나들던 '명동시민'의 한 사람이었다.

 

정들다 만 애인’-이보다 더 진한 아쉬움이 어디 있으랴.

마도로스파이프로 유명했던 조병화 시인도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떠났다.

(어느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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