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中鋒直筆

甘冥堂 2016. 10. 13. 05:39

중봉직필 (中鋒直筆)

 

중봉은 붓끝 뾰족한 부분이 어느 방향이든 모든 획의 정중앙을 지나야 하고,

직필은 붓대가 지면과 직각을 이뤄야 한다는 말이다.


손목이나 손가락으로 재주를 부릴 수 없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필관을 야물게 잡아야 중봉직필이 된다.

반대로 측필편봉(側筆偏鋒)은 붓을 좌우로 흔들어 붓끝을 필획의 측면으로 쓸며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눈을 놀라게 하는 획이 나오겠지만 정공법은 아니다.

 

상유현(尙有鉉·1844~1923)'추사방현기(秋史訪見記)'에 중국 사람 탕상헌(湯爽軒)이 추사의 글씨를 평한 대목이 있다.

중국 사람이 추사의 글씨를 값을 안 따지고 다투어 사가는데, 예서만 찾지 행서나 초서는 편획(偏劃)이 있어 높이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서는 고기(古氣)가 넘치고 법식에 맞아 참으로 동방의 대가가 되나, 행초의 획은 편획이 많아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썼다.

 

진계유(陳繼儒)'진주선(眞珠船)' 중 다음 짧은 글이 인상적이다.

 

"강남의 서현(徐鉉)은 소전(小篆)체의 글씨를 잘 썼다.

햇빛에 비춰 살펴보면 글자마다 한 줄기 진한 먹이 모든 획의 정중앙을 지나고 있었다.

굽거나 꺾이는 획에서도 한편으로 쏠리는 일이 없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작은 전서체를 쓰면서도 중봉직필(中鋒直筆)을 잃지 않았더라는 말이다.


세설신어에 나오는 글이다.




오늘 서실에서

秋史백파스님 비문을 보았다.

전면의 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와 뒷면으로

비록 탁본이지만 추사체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이 추사의 글씨를 값을 안 따지고 다투어 사갔다는데, 과연 그렇겠구나 짐작할 뿐이다.



내 자신 서실에 다니는지가 여러해 되었으나, 초보 딱지를 뗄 날은 아직도 멀었다.

스스로 글 쓰는 자세를 보면 중봉은 어림도 없고 직필도 되지 않는다.

답답할 때가 많다. 측필편봉(側筆偏鋒)의 재주도 나에겐 머나먼 뒷날의 얘기일 수 밖에 없다.


연습한 글씨를 집안 벽면에 걸어놓고 스스로 품평도 하고 반성도 한다.

그러나 일주일에 하루, 그것도 2시간 정도 연습해 가지고는 죽을 때까지 초보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일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첩경이련만, 애꿎은 시간타령만 하고 있으니 어느 세월에 초보 딱지를 떼랴.

不知何歲月이다.

그렇더라도 안진경 추사...등 대가의 글씨를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니 무얼 더 바라겠나.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막과 心善淵 1  (0) 2016.10.15
소(牛)보다는 일찍 일어나야지  (0) 2016.10.14
바둑판에 우연히 쓴 글   (0) 2016.10.11
맹자집주 해설  (0) 2016.10.08
기록은 모두 역사다  (0) 2016.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