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체 낮술은 하지 않는다.
몇 달 전 치욕을 당한 후 부턴, 아예 낮술 근처에도 안 간다.
오늘 농장에 나가 뒷일을 마무리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빗방울이 비닐하우스에 떨어지는 소리가 자연의 음악이기도 하고,
파도가 밀려왔다 멀어지는 소리같기도 하다.
점심시간이 되었어도 아무도 오지 않고.
삶은 계란 두어 개로 점심을 때우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제 동생이 마시다 남은 소주가 있다.
삶은 계란에 소주?
이거 먹을까 말까.
계란에 목이 메어 물을 마실까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소주를 한 모금 마신다.
싸~ 하니 식도가 짜리하다.
마침 파리가 날아와 윙윙거린다.
전자 파리채를 흔들어도 날랜 파리는 요리조리 잘도 피한다.
그러다가 그만 식탁 위에 술잔을 치고 말았다. 바닥에 엎어진 소주.
아깝다. 마저 마셔버릴 걸. 다음 순간
"이건 하늘의 뜻일 거야".
낮술 마시고 운전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 모금 마신 게 후회가 된다.
그렇게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야 뭘 할꼬?
에라, 음악이나 듣자.
대한민국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라디오를 듣다 깜빡 잠이 들었다.
서늘한 느낌이 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오후 3시.
귀가하는 길
일산 백마교를 넘는데 그 일대에 노란 우비를 입은 순경들이 쫙 깔려있다.
아, 음주 단속?
소주 한 모금에, 그리고 한숨 잤으니 음주단속에 걸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긴장된다.
다행히 다른 길로 접어들어 단속 지점을 통과하진 않았다.
파리채 휘둘다가 엎어버린 소주잔.
여기에 감히 '하늘'을 들먹여도 될 지 모르겠다.
나를 보우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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