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成語300則

擊楫中流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드리다

甘冥堂 2017. 6. 20. 07:23

126.擊楫中流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드리다

      (칠 격, 노 즙, 가운데 중, 흐를 류)

 

祖逖(조적)은 중국역사상 유명한 애국 장군이다.

당시, 흉노가 나라의 도성 洛陽을 함락하여, 晋懷帝(진회제)는 포로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조적은 출병하여 북벌할 것을 결정하였다.

당시 그는 琅琊王(낭야왕) 司馬睿(사마예)의 수하에서 군사고문 일을 하였는데, 조적은 바로 사마예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사마예는 자기 자신을 보전할 생각에 북벌에 출병할 뜻이 없었으나, 반대하기가 쉽지 않아,

조적을 奮威장군에 임명하고, 그로 하여금 북벌을 떠나게 했다.

 

그러나 조금도 성의가 없는 사마예는 조적에게 약간의 식량과 베 몇 필을 주었을 뿐, 그에게 군대는 주지 않았다.

러나 조적은 낙심하지도 않고, 자기 부족사람들을 데리고 북벌 원정길에 올랐다.

 

조적과 그의 동향인들이 배를 몰아 강 한가운데 이르자, 그는 도도한 강물을 바라보며, 자기의 격앙된 정서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때, 그는 참을 수 없어 노를 들어 뱃전을 두드리며, 장엄하게 맹세하며 말했다:

나 조적은 만약 중원을 수복하지 못한다면, 이 강물과 같이,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당시 장내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의 이런 정신에 감동되어, 계속해서 조적을 따를 것을 표시하고,

故土를 수복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조적이 승선하여 강을 건넌 후, 힘을 다해 방법을 강구하고, 부단히 자기의 대오를 튼튼하게 하고, 장비를 개량하였다.

후에 그는 군대를 지휘하여 북상하여, 黃河 이북의 대부분의 지역을 수복 하였다.

 

 

 

[tì] () 멀 적 1.[형용사][문어] 멀다.

[fú]1.[동사] 사로잡다. 포로로 잡다. 2.[명사] 포로.

[ruì] () 깊고 밝을 예 1.[형용사][문어] 슬기롭다. 총명하다. 지혜롭다.

不好 [bùhǎo] 1.[형용사] 나쁘다. 좋지 않다. 모자라다. 2.[형용사] 하기 쉽지 않다. 하기 어렵다.

毫无 [háowú] [동사] 조금도전혀〕 …이 없다.

气馁 [qìněi] [동사] 낙심하다. 낙담하다. 풀이 죽다. 용기를 잃다. [泄劲(xièjìn), 泄气(xièqì)][振奋(zhènfèn)]

[jiǎng] 번체 () 노 장 1.[명사] ().

船舷 [chuánxián] [명사] 뱃전. 선연(船緣).

纷纷 [fēnfēn] 1.[형용사] (····낙엽 등이) 분분하다. 어지럽게 날리다. 흩날리다. 2.[부사] (많은 사람이나 사물이) 잇달아. 연달아. 쉴새없이. 계속해서. 몇 번이고.

励精图治 [lìjīngtúzhì] [성어] 정신을 가다듬어 나라를 잘 다스릴 방법을 강구하다. 힘을 다하여 나라를 다스리다.

壮大 [zhuàngdà] 1.[동사] 강대해지다. 커지다. 2.[동사] 강대하게 하다. 3.[형용사] 강건하다. 튼튼하다. [细小(xìxiǎo), 削弱(xuēruò)]

 

 

[中流擊楫]'강의 중류에서 노를 두드리다'라는 뜻으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는 굳은 결심 또는 가슴에 품은 웅대한 뜻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진()나라 때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조적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진나라는 흉노에 중원을 빼앗기고 강남(江南)으로 옮겨 동진(東晉)을 세웠다. 조적은 뜻을 함께하는 젊은이들을 규합하여 원제(元帝사마예)에게 북벌(北伐)을 힘써 주장하였다. 원제는 북벌에 나설 의사가 없었으나, 그 뜻을 물리칠 명분도 없었으므로 조적을 분위장군(奮威將軍) 겸 예주자사(豫州刺史)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이름뿐인 직책으로, 조적에게 주어진 것은 고작 1,000명 분의 식량과 3,000필의 베에 불과하였다. 그래도 조적은 조금도 낙담하지 않고 100명을 이끌고 배를 타고 강북(江北)으로 건너갔다. 의기가 북받쳐 오른 조적은 배가 강의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노를 두드리며 맹세하여(中流擊楫而誓曰) "중원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조적의 북벌군은 각지에서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마침내 황허강[黃河] 이남의 실지(失地)를 회복하였다. 이때 흉노와 갈족이 서로 싸워 정세가 동진에 유리하게 돌아갔으나, 동진의 조정에서는 내분이 일어나 조적을 지원하지 않았다. 조적은 결국 울분에 차서 병사하고 말았다.

 

이 고사는 진서(晉書)조적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중류격즙은 나라의 실지를 회복하겠다는 굳은 결심 또는 그와 같은 웅대한 뜻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中流擊楫]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