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에스테라 Estella

甘冥堂 2018. 8. 26. 21:58

 

 

 

 

 

 

 

 

걷기 6일째

 

6시 이전에 출발했음에도, 먼저 걷는 순례자들이 있다.

앞에서 걸어가는 47년생이라는 할머니(?)는 이 길이 두 번째라 한다.

 

성경.찬송가.영문시구. 심지어 장자 논어까지 들먹인다.

무식한 나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아는 거 없어 맨땅의 자갈만 발로 차고가는데,

나와의 대화가 재미가 없는지 먼저 가라 한다.

어휴. 다행이다.

 

언덕 위의 아주 조그만 마을에서

알베르게 겸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젊은 한국 여인을 발견하곤 너무 깜짝 놀랐다.

아니 이 구석에 한국인이 있다니...

 

스페인 현지인과 결혼하여 이곳에서 장사한 지가 2년이 넘었다한다.

예쁘고 상냥하니 외국인에게는 좀 아깝단 생각도 든다.

신랑의 얼굴을 살펴보니 성실한 사람같아 보여서 그나마 안심했다.

"이국땅에서 잘 살게."

악수하며 헤어지는데 얼마나 가슴이 짠 한지...

 

그 장면이 눈에 계속 밟혀서 그런지,

걷는 내내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리고 아파서 걸을 수가 없다.

오늘은 21km 정도여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곳 순례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늙은이들.

체구가 아주 작은 할머니가 짐을 잔뜩 지고, 할아버지는 맨몸으로도 헉헉대며 따라간다.

식당에서도 할아버지는 그림같이 앉아 있고 할머니가 열심히 해다 바친다.

그야말로 지극정성이다.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있는 장면을 이곳 스페인에서 보다니...

혹자는 말한다. 부부가 아니라 부녀간일지도 몰라.

무슨 관계가 되었던 그 할머니 대단하신 분이다.

 

82세 된 할아버지는 이 길이 6번째라 하고,

아무 곳에서나 키스를 하며 끌어안는 노부부도 70대 후반이다.

그밖에 새벽에 출발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나이가 많은 분들로 보였다.

뒤쳐지지 않으려는 노인의 지혜다.

 

 

숙소앞 카페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맑게 흐르는 개울물에 유유히 노니는 물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덧없이 보낸 백수시절을 회상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젊은 시절 김우중씨가 한 이 말이,

어찌하여 새삼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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