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신화 - 반고(盘古)
세계 4대 문명을 포함하여 고대 문명이 발전하였던 지역에서는 대부분 신화가 존재하였고, 상응하는 종교와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황하지역에서 문명이 시작되어 발전하였던 중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신화에 대한 종교적 특징은 비록 존재하지만
서양의 경우(그리스, 로마 등)와 같이 신을 형상화한 조각이나 독자적인 신전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이 발휘되지 않았으며,
관련 연구도 상대적으로 미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신화는 창조신화가 존재하는데, 천지창조, 인간창조로 나뉘어진다.
중국에서의 천지창조 신화는 시대가 어느 정도 지난 후에 성립하게 된다.
중국의 천지창조에 관한 최초의 내용은 굴원의 『초사(楚辭)』「천문」에 보이는데,
천지의 개벽과 우주의 생성, 그리고 절대적인 존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러나 문제제기만 하고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중국 고대 사상가 장자(莊子)의 저서
『장자(莊子)』「우언」에서 천지창조는 남쪽에 숙(倏),북쪽에는 홀(忽), 그리고 중앙에는 혼돈(混沌)이 있었는데,
숙과 홀은 혼돈을 자주 찾아왔다. 숙과 홀은 눈, 코, 입, 귀, 입 등 7 개의 이목구비가 있었는데,
혼돈은 아무 것도 없어서 보고 듣고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숙과 홀은 자신들처럼 이목구비가 없는 혼돈에게 매일 1개의 구멍을 뚫어주려고 하였고,
결국 7일 동안 이목구비 7개의 구멍을 만들 수 있었는데, 혼돈은 구멍을 뚫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숙, 홀은 신속한 시간을 가리키고, 혼돈은 공간을 의미하는데, 혼돈이라는 공간은 이미 죽었지만,
시간(숙, 홀)에 의해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한다.
이밖에 중국의 신화에서 천지창조에 관련된 존재가 출현하는데, 『회남자(淮南子)』의 내용에 의하면,
태초에 천지가 생기기 이전의 혼돈의 세상에서 음신(陰神)과 양신(陽神)이 나타났고, 이들이 천지를 만들면서 음양이 갈라지게 되었으며,
그 후에 8방의 위치도 정해지게 되었고, 양신은 하늘, 음신은 땅을 각각 통치하면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양신과 음신과 달리 천지개벽의 능력을 갖춘 존재들이 전설에서 나타나는데,
간단히 소개하면 『회남자』의 거령(巨靈), 『산해경』의 박부(樸父)와 촉룡(燭龍), 『 이기(述異記)』귀모(鬼母) 등이 있다.
거령은 원래 하신(河神: 물의 신)이었는데, 산천을 만들고 물길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하는데,
거령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황하를 가로막고 있던 화산(華山)을 두 동강내었고, 그 사이로 황하가 흐르게 되었다고 한다.
박부의 이야기는 홍수와 관련이 있다. 천지가 나뉘어졌을 때 홍수가 발생하였는데,
이를 걱정한 하늘의 신은 박부와 그의 아내에게 홍수를 다스리게 하였다.
박부와 그 아내의 키는 천 리에 달할 만큼 거대한 존재였는데,
홍수를 다스리는 일을 대강 처리하여 대지의 하천은 계속 홍수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화가 난 하늘의 신은 이 부부에게 황하의 물이 맑아질 때까지 거친 광야에서 이슬만 먹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촉룡은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가진 존재로 그 크기는 천 리에 달했는데, 촉룡이 눈을 뜨면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되었다고 하며
숨을 크게 쉬면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고, 입김을 불면 더운 바람이 부는 여름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입에는 촛대를 물고 있는데, 이 촛대는 북방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있다고 하여 촉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귀모는 호랑이 얼굴에 용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 하늘과 땅, 그리고 귀신을 만들었는데,
아침에 귀신을 낳고 저녁에 그 낳은 귀신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거령, 박부, 촉룡, 귀모에 대해서는 신화와 전설의 관련 연구자들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들에 대해 모르고 있다.
▶반고.
반면에 일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천지창조의 존재는 바로 "반고(盤固)”신화이다.
"반고”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삼국시대(220-280)의 오나라 서정(徐整)의 『삼오력기(三五歷記)』에서 보이지만,
그러나 이 서적은 이미 사라졌고, 후대의 『태평어람(太平御覽)』와 『예문유취(藝文類聚)』에서 일부의 내용만 찾아볼 수 있다.
"반고”신화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천지가 생성되기 이전의 세상은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은 혼돈의 세상이었는데, 이 혼돈의 세상은 거대한 알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알 속에는 반고가 잠들어 있었는데, 18,000년이 지난 후 반고는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반고는 주위에서 어떠한 것도 알 수 없었기에 손짓을 하게 되었고, 결국 반고를 둘러싼 알은 깨지게 되었다.
알이 깨지면서 가볍고 맑은 기운은 위로 올라가면서 하늘이 되었고, 무겁고 혼탁한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되었다.
광둥(广东)성에 위치한 반고 벽화
『술이기(述異記)』에서는 『삼오력기』의 반고 이야기가 계속 되고 있다.
즉 반고는 하늘과 땅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손을 들어 하늘을 받치고 발로는 땅을 눌렀다.
이 과정에서 반고는 매일 1장(丈: 대략 3미터)씩 자랐는데, 18000년 동안 하늘과 땅 사이를 지탱하면서 그 거리가 9만리가 되어
하늘과 땅이 더 이상 하나의 혼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 반고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 목소리는 천둥, 눈빛은 번개, 눈물은 강물, 왼쪽 눈은 태양, 오른쪽 눈은 달, 반고의 몸은 산과 땅,
피는 강물, 핏줄은 길, 살은 논과 밭, 머리카락과 수염은 벼, 피부와 털은 풀과 나무, 이빨과 뼈는 돌과 금속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천지창조 외에
반고가 죽은 후에 그의 몸에서 생겨난 벌레가 바람을 만나 인간이 되었다는 인간창조의 신화까지 포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화의 연구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신화를 통해 그 사회의 다양한 사고방식은 물론 생활형태까지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 신화의 연구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서양에서의 신화에 대한 연구와는 달리 현재까지 그렇게 체계적이지는 않다.
그 주요 원인으로는 고대 중국의 수많은 문헌에 신화에 관한 내용이 산발적으로 단편적인 내용이 약간씩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여러 문헌에서도 중복되는 이름이 있지만, 실제로 그 내용은 차이가 있어 체계화 시킨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둘째, 신화의 내용은 사회발전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신화는 후대로 계승될수록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 4대 문명을 포함한 고대 문명들은 기본적으로 황하문명을 제외하고는 이미 단절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고대 문명들의 신화 내용 역시 후대에 더 이상 변화하고 있지 않는데,
반면에 중국의 경우에는 황하문명이 후대로 계속 계승되면서 사회발전의 연속성으로 신화의 내용 역시 계속적인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중국의 신화는 시대적인 변화에 많은 발전, 특히 유사하거나 관련되는 내용이 첨삭되면서
신화가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이 비록 존재하지만, 중국의 창조신화에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반영된 혼돈,
인체를 소우주로 보는 우주관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북경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구자원 교수]
중국의 창조신화| 신지학, 오컬트문화
중국의 창조신화와 상고삼대(上古三代) ① : 반고신화(盘古神话)와 삼황오제(三皇五帝), 그리고 하(夏)나라 걸왕
[오제(五帝)]
우리는 지금까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그리스 문명에 이르기까지 약 2600여 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오리엔트와 서양의 중요한 고대 전쟁사를 살펴봤습니다. 이제 우리는 잠시 동양으로 눈길을 돌려보겠습니다.
이번에 살펴볼 곳은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이자 시간 순으로 막내 문명에 속하는 황하 문명의 발생지인 중국입니다.
저는 중국 전쟁사의 시작을 BC 8세기부터 BC 3세기까지의 춘추전국시대로 잡았는데, 춘추전국시대를 시작하기에 앞서,
중국의 창조신화와 상고삼대(上古三代)로 일컫는 하(夏)나라, 상(商)나라(또는 은나라), 주(周)나라(서주시대)의 이야기를 해줘야
흐름이 매끄럽고 춘추전국시대의 이해가 용이할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반고 신화를 시작으로 삼황오제 설화, 하·상·주나라의 간략한 역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 중국의 창조신화 : 반고 신화(盘古神话)
중국의 창조신화는 ‘산해경(山海經)’, ‘회남자(淮南子)’, ‘장자(莊子)’ 등에 산발적으로 실려있습니다.
흔히 중국의 창조신화를 반고의 신화(盘古神话)라 부르지요. 억겁의 과거의 시간 속 어느 어둠뿐인 공간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알 안에 잠들어 있던 반고(盘古)라는 신은 1만 8천년이 지나 깨어나 손에 쥔 도끼로 알을 깨고 나옵니다.
어둠뿐인 공간에서 반고는 매일 1장(약 3미터)씩 기운을 키워서 공간을 둘로 나누기 시작하는데,
이때 양(陽)의 기운은 하늘이 되고, 음(陰)의 기운은 땅이 됩니다.
이렇게 다시 1만 8천년이 지나니 하늘과 땅이 지극히 높아지고 깊어져 하늘은 땅에서 9만리나 떨어졌습니다.
하늘과 땅을 가르고 나자, 반고는 죽음을 맞이하는데, 머리칼은 별들이 되고, 왼쪽 눈은 태양이,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고,
흘러나온 피는 강과 바다가 되었습니다. 입김은 바람과 구름이 되고, 목소리는 천둥이 되었으며,
몸은 산이 되고, 피부는 초목이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했습니다.
2. 삼황오제(三皇五帝)
반고 신화 다음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설화가 등장합니다.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을 말하는데,
중국 고대 역사가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史記)에서 본기(本記)를 오제(五帝)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앞선 삼황(三皇)의 설화는 사마천의 후대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사마천이 오제본기(五帝本紀)로 사기를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가 삼황의 전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삼황은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여와씨(女媧氏),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를 말합니다.
여와씨는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해서 인황(人皇), 수인씨(燧人氏) 또는 축융씨(祝融氏)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 복희씨는 인간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줬으며, 신농씨는 농사짓는 법을 전해 주었습니다.
사마천이 사기의 오제본기를 통해 전한 오제는 황제헌원(黃帝軒轅),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방훈(帝堯放勳),
제순중화(帝舜重華) 다섯 제왕을 말합니다.
이중에서 황제헌원은 수레를 처음으로 만든 제왕인데, 중국인들은 삼황의 신농씨와 더불어 황제를 조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고문헌에 기록된 황제와 관련된 고사로는 치우와 벌인 탁록(涿鹿)전투와 북방 훈죽(葷粥,흉노족의 일파)과의 전투 등이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것이 치우를 몰아낸 탁록전투인데,
전한시대의 역사가 유량이 집필한 ‘전국책(戰國策)’(사마천이 사기 집필 시 1차 사료로 사용했던 역사서)에서
다른 후대의 중요 전적(戰積)과 함께 언급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사마천은 사기의 오제본기에서 “황제가 북으로 훈족을 내쫓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제왕 전욱 고양은 황제의 자손으로, 백성들과 정사를 잘 다스리는데 중점을 두었고 농업발전위해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제왕 제곡 고신은 전욱의 조카로서 전욱에 이어 라이벌이었던 공공씨와의 세력 다툼에서 최종 승리하기도 했으며,
시간과 천문의 운행을 잘 살피고 기운을 잘 다스려 농업생산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합니다.
이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제왕인 제요방훈과 제순중화의 시대를 가리켜 후대에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요순시대’라 일컫기도 합니다.
오제 중 마지막 제왕인 순왕의 지배시절, 당시 중국의 황하는 시도때도 없이 홍수가 나기 일쑤였습니다.
홍수가 한번 나면 주변의 거의 모든 백성들이 죽었기 때문에 당시 중국의 제왕들의 당면과제는 황하를 다스리는 일이었습니다.
다시말해, 황하의 치수(治水)를 이룩하는 사람이 제왕이 되는 그런 시대였죠.
순왕에게는 곤(鯀)이라는 기술자가 있었습니다. 순왕이 곤에게 이르되, “황하의 물길을 잡아서 홍수를 막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곤이 미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우(禹)가 임무를 이어받아 13년 동안 노력한 끝에 치수 사업에 성공합니다.
오제 중 마지막 제왕 순이 죽자 인망이 두터웠던 우가 제위를 계승하는데,
이때 나라 이름을 하(夏)로 고치고 안읍(安邑)을 도읍지로 정합니다.
이때부터 왕위를 세습화하여 하왕조가 시작됩니다.(BC 2070년 경)
3. 하(夏)나라 걸왕과 말희(妺喜)
하(夏)나라는 요순시대 이후 기록상 중국 최초의 고대 왕조입니다.
현재 고고학적으로 명확한 유물과 유적이 남아있는 나라는 상나라 이후부터입니다.
하지만 하나라는 그 존재 자체가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는 못했지만 전승되는 중국 최초의 왕조임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아울러 최근까지 중국은 이른바 탐원공정(探源工程)이라 하는 뿌리찾기 발굴운동을 통해 하왕조의 고고학적 입증에 열을 올리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전승과 사마천의 사기 중 '하본기(夏本記)'에 의하면 하나라는 시조인 우(禹)부터 걸(桀)왕까지 17대에 걸쳐 472년 동안 존속했습니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은 상나라의 주(紂)왕과 함께 폭군이자, 경국지색(傾國之色)에 빠져 나라를 멸망시킨 임금의 상징으로 유명합니다.
이를 이상적 군주로 추앙받는 요순(堯舜)과 대비시켜 걸주(桀紂)라고 합니다.
걸왕이 산동 유시씨(有施氏)를 정복하려 하자 유시씨가 항복하면서 자신의 딸 말희(妺喜)를 걸왕에게 헌상합니다.
그녀는 빼어난 미색과 더불어 마음은 대장부(大將夫)같아서 칼을 차고 관을 썼다고(패검대관佩劍帶冠) 전합니다.
걸왕은 그녀의 미색과 색기에 반하여 그녀를 왕비로 삼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장야궁(長夜宮)을 짓고 남녀 합환(合歡)의 유흥에 빠집니다.
연회에서는 연못에 술을 채우고 나무에는 고기를 매달아(주지육림酒池肉林) 즐겼으며,
말희가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를 좋아하여 나라안의 모든 고가의 비단을 모았다고도 합니다.
게다가 걸왕은 충신 관룡봉을 비롯하여, 이런 난행에 충언하는 수많은 신하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결국, 인근의 상(商)나라의 탕(湯)왕이 군대를 일으켜 하나라를 멸망시킵니다.
(BC 1600년 경) 걸과 말희는 사로잡혀 남소(南巢)의 산으로 추방되었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한편, 1917년 왕국유가 고대 문헌에 인용된 내용들을 모아서 편집한 '고본 죽서기년((古本竹書紀年)'에 따르면,
걸이 말희를 얻은 후에 민산(岷山)을 정벌하여 완과 염이라는 두 미녀를 얻어서 말희를 버리려 하자,
말희가 앙심을 품고 상나라의 이윤과 만나 하나라의 내분을 일으켰고,
결국 걸왕은 상나라의 탕왕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전합니다. (오비최이락/2018.05.03.)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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