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時中

甘冥堂 2019. 12. 18. 05:51

時中

 

공자가 말했다.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군자는 중용을 행하고, 소인은 반대로 행동한다.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군자가 중용을 행한다는 것은 때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小人反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소인이 반대로 한다는 것은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공자가 소인의 기탄없음(無忌憚,무기탄)’과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 군자의 중용, “시중(時中)”이다.

시중(時中)”이란 말의 뜻은 시()에 따라 중()을 취한다는 말이지만,

()이 무엇을 말하는지 공자나 자사가 명확하게 개념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가 개입되기 때문에, ()이라는 것은 딱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정자(程子)는 중()치우치지 않음이라고 주석했는데, 글자의 뜻에 충실한 주석인 듯하다.

주자(朱子)는 정자의 주석에 ()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를 추가했고,

그 주석에 대한 근거는 다음 문장으로 보인다.

 

공자가 말했다.

 

道之不行也, 我知之矣

중용의 도가 행해지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다.

 

知者過之, 愚者不及也

지혜로운 자는 하찮게 여겨 행하지 않고,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여 행하지 못한다.

 

道之不明也, 我知之矣

중용의 도가 밝혀지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賢者過之, 不肖者不及也.”

능력 있는 자는 중용의 도를 더 이상 밝힐게 없다고 생각하고, 부족한 사람은 제대로 알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공자는 지혜로운 자, 능력 있는 자는 모두 과()한 것이 있어서 중용을 못하고,

어리석은 자나 부족한자는 모자라기 때문에 중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자나 주자는 치우치지 않음이라든지, 치우치지 않고 과불급도 없는 것이라고 중()을 개념 정의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중()의 의미를 한정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공자와 자사가 ()~이다라고 개념화하지 않은 것은,

()에 따라 달라지는 중()을 특정한 무엇으로 한정짓지 않으려했기 때문인 듯하다"

 

지혜로운 자와 능력 있는 자가 과하기 때문에 중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해가 뜨는 시간과 해가 지는 시간은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촌부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쉰다.

이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시계를 맞춰놓고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고,

오후 6시에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고 촌부의 리듬을 무시할 것이다.

능력 있는 자는 마치 제논처럼 의기양양하게 대단한 말재주로

 날아가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고 하면서 변화는 가짜라고 하거나,

혹은 반대로 변화만이 진짜라고 할 것이다.

 

 

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

사람은 누구나 매일 먹고 마시지만 그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시중(時中)”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촌부가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집에 와서 쉬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이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아는 자는 드물다.

만물은 시()에 따라 변화한다. 그렇기에 불변의 원칙을 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변화를 관리하는 방법이 꼭 불변의 원칙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치 않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에 따라 칙()을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러가듯이 이미 하고 있는 시중(時中)을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분명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출처:[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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