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1984-조지 오웰

甘冥堂 2020. 4. 25. 11:58

자유는 도전적이다.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통찰은 선명하다.

자유가 무엇인가를 뜻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다.”



1984 악몽은 역사와 언어 개조다.

오웰은 말과 정치의 관계를 추적했다.

정치 혼란은 언어의 쇠퇴와 결부돼 있다(정치와 영어).”

지도력의 위축은 말의 빈곤 탓이다.


오웰은 좌파 사회주의자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거기서 혁명의 배신을 경험한다.

그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유사성을 간파했다.

그의 소설 1984는 냉혹한 상상력의 절정이다.

 

코로나19 방역 전선은 강력한 통제 리더십을 요구한다.

그 속에 깔린 빅 브러더(Big Brother)’의 그림자는 불길하다.

올해가 오웰 서거 70주년이다.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 가상 국가다. 그곳의 1984년은 암울하다.

국민 지배·감시 시스템은 섬뜩하다.

빅 브러더(대형)가 너를 지켜본다!”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Thought Police)’이 동원된다.

 

권력 장악·통제 수단은 교묘하다. 역사와 언어의 변조·재편이다.

기억은 조작된다. ‘가짜 과거의 등장이다.

구호는 그 의도를 압축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이 과거를 지배한다.”


슬로건은 대칭적 역설이다.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노예다. 무식함은 힘이다.”

신어(newspeak)는 언어구조를 단순화한다.

이중사고(double think)’는 말의 감각을 제거한다.

()체제 어휘는 소멸한다.


가상의 미래 1984는 디스토피아적 절망이다.

북한 세습독재는 그 장면들을 떠올린다.


1984는 묵시론, 그런 일 없도록 하라


자유 질서가 언어를 풍요롭게 한다.

역사 개조의 유혹은 1984의 음모만이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있다.

한국 현대사 논쟁도 마찬가지다.

이승만의 나라 만들기, 박정희의 산업화는 상처투성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꾼다.

자유와 개방은 시련 속이다.


중국 방역체제는 거대 국가의 통제·디지털 감시·정보 독점이다.

중국식 ‘IT 전체주의논쟁은 빅 브러더를 소환한다.


오웰의 감수성은 정치와 미학의 융합이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political bias)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나는 왜 쓰는가).”

정치는 말로 작동한다. 리더십 언어는 대중을 격발시킨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시절의 메시지 운용은 한심했다.

그것이 4·15 총선 참패의 핵심요인이다.

그는 매력적인 구호를 내놓지 못했다.


오웰의 문체는 명료하다.

명확한 언어의 거대한 적은 위선(insincerity)이다.”

그는 장황함을 배제한다.

단어를 자를 수 있다면 항상 잘라내라(정치와 영어).”

그 솜씨는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의 단문 기법과 유사하다,


1984는 악몽의 묵시론(黙示論)이다. 그 속에 대응의 해법이 암시된다.

그것은 불편한 진실과의 대담한 마주하기다.

1984의 출판 때다. 그의 직설은 유언처럼 기억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 그것은 당신에게 달렸다

(Don’t let it happen. It depends on you).”

 

 

  출처:  중앙SUNDAY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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