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서정일
현대도시문명의 우두머리 현대문명은 도시문명이다. 2018년 기준으로, 세계인구의 55.3 퍼센트가 도시에 있다. 백 년 전에는 세계인구 열 명 중에 두 명만이 도시에 살았지만, 지금은 열에 다 섯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1) 이미 세계에는 인구 백만 명이 넘는 도시가 548개, 인구 30만이 넘는 도시가 1,860개가 있다. 앞으로 도시 수는 더 많아질 전망이다. 도시들은 교통과 통신망으 로 서로 더 잘 연결되고 있고 사람, 물자, 정보의 이동은 더 늘고 있다. 글로벌 도 시체계가 발달되어 있는 것이다. 현대경제를 성장시키는 주된 동력이자 허브도 도시다. 세계 GDP의 80퍼센트가 도시에서 나오며, 세계 GDP의 20퍼센트는 열 개의 대도시에서 나온다. 특히 대도시들은 글로벌경제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 나머지 도시들의 흥망을 좌우하고 있다. 대도시들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인재, 기업,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글로벌차원에서 경쟁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 중의 도시, 우두머리 도시는 어느 도시일까? 모든 도시들이 선망 하고 모방하려는 도시, 세계정치경제의 심장이 되는 도시는 어디일까? 여러 후보들 이 있겠지만, 글로벌 도시들의 경쟁력을 비교평가하여 발표한 각종 지수들에서 1위를 차지하는 도시는 바로 뉴욕이다2)[표 1].
뉴욕(이 글에서는 뉴욕주와 구분하여 뉴욕시를 가리킨다)은 지역과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뉴욕의 이미지들과 상징들, 즉,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브루클린 다리, 국제연합본부, 그리고 “아이러브뉴욕, I♡NY”의 장소와 이미지들은 세계인들에게 익숙하다. 세계인을 경악 시킨 2001년 9월 11일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은 뉴욕과 뉴욕의 고층건물 이 세계자본주의를 잘 상징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911 사건 뒤에도 뉴욕은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현재 뉴욕은 미국 최고기업들의 목록인 포춘 500 기업들의 본사들이 북미에서 가장 많이 입지해 있는 도시다. 즉, 미국 최대 투자은행들인 JP모건 체이스와 시티그룹을 포함하여,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스, 메트라이프생명, 파이저, 골드먼 삭스 그룹, 모건 스탠리, AIG, 뉴욕생명보험, 아메리컨 익스프레스 등의 본사가 맨해튼에 있다. 이 기업 건물들은 뉴욕의 경관을 지배하며 함께 뉴욕의 경제력을 상징한다. 록펠러 센터의 전망데크에 올라보자(1933년에 완공되어 비록 지금은 뉴욕시에서 28번 째로 높은 건물로 순위가 밀려났지만). 남쪽으로 맨해튼 미드타운과 멀리 다운타운 까지 고층건물들로 빼곡이 채워진 맨해튼 땅 덩어리 전체가 마치 항해하는 듯하다 [그림 1]. 이 경관에서 우리는 글로벌 기업들의 본사 건물들을 드문드문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길 위에서는 고층건물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협곡들이 경관이 있다. 이 두 가지 뉴욕의 대표적 경관이 뉴욕의 핵심을 드러낸다. 지금도 이 경관은 21세기 초 경제성장과 도시개발 함께 바뀌고 있다.
그림 1. 록펠러센터 전망데크에서 맨해튼 남쪽을 본 모습. 전망대 바로 앞으로 미드타운 사우스가 펼쳐져 있다. (1) 왼쪽 앞으로 JP모건 체이스 본사(8각형 건물평면)와 메트라이프가 보인다. 메트라이프 너머로는 크라이슬러 빌딩의 뾰족하고 장식적인 꼭대기가 보인다). JP모건 체이스는 현재 사용중인 파크 애브뉴 270번지 건물을 철거하고 건물을 신축할 예정이다. (2) 오른쪽으로 각진 꼭대기를 한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보인다. 그 뒤로 녹색 외관의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즈가 보인다. 맨 오른쪽에 타임스퀘어와 모건 스탠리 본사가 있다. (3) 한가운데로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보이고, 그 뒤로 황금색 피라미드 꼭대기의 뉴욕생명보험 본사가 보인다.(이 건물은 울워스 빌딩(Woolworth Building)을 설계한 카스 길버트(Cass Gilbert)가 설계하여 1926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4) 멀리 로어 맨해튼의 원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보인다(서반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맨해튼은 사방이 강으로 한정되어 있고 높은 곳에서 조망하면 부분적으로는 한 눈에 들어오는 도시로 읽힌다. 하지만 정작 맨해튼은 주변의 버로우들과 긴밀히 묶여 있고, 또한 뉴욕은 주변 지역의 도시들과 묶여 초거대 대도시군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통근교통을 포함하여 뉴욕경제활동이 긴밀히 펼쳐지는 도시규모는 뉴욕시 행정경계를 넘어 뉴아크, 저지시티를 비롯하여 인근 주의 일부 카운티들을 포함한다. 미국정부의 통계목적으로 정의된 뉴욕 중심의 대도시 통계 지구의 면적은 11,880제곱킬로미터로서 이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도시권역이다. 또한 그 인구는 미국에서 가장 많다(2017년 기준으로 2030만 명)[그림 6].3) 지구상에는 인구 천만 명이 넘는 메가시티(중국에서는 이를 ‘초대도시’라고 부른 다)가 모두 서른 세 개가 있고 그 중 북미에 두 개의 메가시티가 있다. 그 하나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메가시티이고, 다른 하나는 서부연안의 로스앤젤레스-롱비치산타아나(Los Angeles-Long Beach-Santa Ana) 메가시티다.4)
뉴욕의 대도시화는 그 중심에 있는 맨해튼을 초고밀 환경으로 만들었다. 맨해튼 버로우의 인구밀도는 59.1제곱킬로미터 면적에 2018년 기준으로 인구 약 160만 명으로서, 1제곱킬로미터당 27,826명에 이른다.5) 이것은 서울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자치구들보다 더 높은 밀도다. 20세기 초 루이스 멈퍼드는 뉴욕의 고밀화가 진행되는 것을 이미 심각하게 경고 했다.6) 그가 볼 때, 고층건물들을 지어서 뉴욕 미드타운의 밀도를 높이는 것은 혼돈을 영속시키는 것에 다름없었다. 그는 “지가 하락과 인구 유출, 그리고 대도시구조 전체를 완전히 새로 저밀도로 건설하는 것을 포함시키지 않고서는 진정한 처방은 없다”고 진단했다. 대도시로서 뉴욕의 과밀상태는 피하기 힘든 반경제요소이며 뉴욕의 경제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제해야할 문제로 남아있다.7) 뉴욕의 경제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개괄해 보자. 2015년 기준 뉴욕의 총생산은 약 8천50억 달러로서, 세계 20위 정도의 사우디아라비아나 스위스의 국가총생산보다 도 많다.8) 뉴욕이 포함된 대도시 통계 지구(New York-Newark-Jersey City,
민국의 총생산을 능가하는 규모다. 뉴욕의 인구는 850만 명, 일자리 467만 개에 달 한다.
10) 인구는 늘고 있어 2040년에 9백만 명이 될 전망이며, 뉴욕시민들 중 240만 명이 대학학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고학력 인구다. 뉴욕의 경제규모는 분명 도시규모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물론 세계의 개발도 상국들의 대도시들에서 보듯이 크고 고밀하다고 해서 반드시 경쟁력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뉴욕의 막대한 도시규모는 적절한 인프라와 제도, 사회문화적 성격, 인력자원, 친환경성 같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뒷받침되어11) 경제활동에서 막강한 시너 지효과들을 낳았다.
식민정착지로부터 글로벌 대도시까지 이토록 크고 과밀한 대도시의 물리적, 건축적 실체도 설명하기 어렵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그 실체에 접근할 때, 이 대도시가 무엇보다도 힘을 추구하는 도시이고 그 도시의 목표와 활동들이 경제활동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도시의 물리적 실체가 변형되는 핵심 원인이 그 경제활동을 떠받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뉴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대도시로 성장했는가? 약 4백 년 전 식민정착지로 세워진 뒤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뉴욕의 역사는 경제와 공간의 상호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던 그 땅이 유럽인들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지금부터 약 5백 년 전인 1524년이다. 당시 프랑스는 신대륙으로 가 는 항로를 개척하고자 스페인, 포르투갈과 경쟁에 나섰고 프랑수아 1세가 피렌체공화국 출신의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차노(Giovanni da Verrazano)를 보냈다. 이 항해에서 베라차노는 “돌고래호(La Dauphine)”를 타고 북미 대서양 연안을 탐사했고 뉴욕만을 발견했다.(오늘날 그의 이름은 1964년에 개통된 라차노-내로우즈 현수교 에 남아 있다. 이 교량은 어퍼 뉴욕만과 로어 뉴욕만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닷길인 내로우즈(the Narrows)에 놓여 브루클린과 스태튼 아일랜드를 연결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이 아닌 네덜란드인들이 뉴욕의 기초를 닦는다. 즉, 네덜란드 상인들의 후원을 받아 1609년에 헨리 허드슨이 신항로를 탐사하면서 맨해튼 서쪽 의 강을 따라 북상하며 이 강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 바로 허드슨 강이다.12) 17 세기 초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는 지금의 뉴욕 땅을 포함한 뉴네덜란드 영토를 지배 하게 된다. 네덜란드인들은 모피무역을 보호하고자 맨해튼 섬 남단에 요새와 정착지를 짓고 뉴암스테르담(Nieuw Amsterdam)이라고 명명했다. 그들은 영국인들의 침공을 막기 위해 장벽을 쌓았고 이로 인해 훗날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남게 된다. [그림 2]. 네덜란드인들은 영국인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게 된다. 1664년 9월 8일, 영국인들 이 이곳을 함락시켜 뉴욕(“New Yorke upon the Island of the Manhatoes”)으로 개칭했고 당시 인구는 1,500명이었다. 광물과 노예를 포함하여 무역이 성장했고 정착지도 함께 커졌다. 1760년에는 인구 1만 8천명으로 보스턴 인구를 능가했다. 뉴 욕은 1785년에서 1790년까지 미합중국의 수도였고, 1789년에 뉴욕에서 조지 워싱턴은 취임식을 했다. 미국독립 후인 1800년에 미국 최대의 도시는 인구 7만의 필라델피아였는데, 맨해튼 인구는 6만에 육박했다.
뉴욕이 급성장하면서 18세기 말에는 체계적인 도시계획이 필요했고, 19세기 초에 향후 맨해튼의 공간발전의 틀을 마련한다. 즉, 뉴욕주의회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맨해튼 전체의 블록과 길에 대한 계획을 작성하게 했다. 그 위원으로는 미국독립선언 서명자인 거버너 모리스(Gouverneur Morris), 변호사이자 전 상원의원 존 러더퍼드(John Rutherfurd), 뉴욕주의 측량관(Surveyor General) 사이먼 드 위트(Simeon De Witt)가 임명되었다. 위원회가 1811년에 제출한 계획은 하우스턴 스트리트 (Houston Street) 북쪽으로 155번 스트리트 남쪽까지 100피트 폭의 12개 애비뉴와 50피트 폭의 155개의 스트리트들을 격자모양으로 설정했다.(브로드웨이가 사선으로 나 있을 뿐인데, 이것은 원래 인디언들이 지나다니던 블루밍데일 로드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당시 위원들은 자신들의 계획에서 “아름다움, 질서, 편의”가 결합 되었다고 발표했다[그림 3]. 맨해튼의 길과 블록을 지금까지 결정하는 이 질서정연한 혹은 경직된 체계 위에, 1830년대에 최초의 대규모 이민이 들어와 맨해튼 인구가 크게 늘어, 1860년에는 인구 백만에 이르고, 1900년에는 맨해튼 인구가 185만까지 늘어난다. 19기말 뉴욕은 맨해튼과 인근 지역을 실질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병합했다. 20세기에도 브루클린이나 브롱스의 뉴요커들이 맨해튼을 갈 때 “도시(the City)”에 간다고 하는 습관이 붙어 있을 정도였다. 1898년, 맨해튼, 브롱스, 브루클린, 퀸즈, 스태튼 아일랜드는 독립된 타운이나 카운티 정부의 지위를 폐지하고, 뉴욕도시정부에 다섯 버로우로 통합되었다.
이차대전 이전에 뉴욕이 얼마나 성장해 있었는지, 뉴욕 토박이였던 도시학자 루이스 멈퍼드의 말을 들어보자. 1934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북전쟁 전, 뉴욕은 보스턴과 지적 탁월함을 공유했고, 필라델피아와 산업적 우위를 공유했고, 볼티모어와 뉴올리언즈와 상업적 우세를 공유했다. 이리 운하 덕분에 북미대륙의 입까지는 되었으나 아직 목구멍까지는 못 되었다. 남북전쟁 뒤, 시카고가 활기차 게 일어섰지만 뉴욕은 제국의 대도시가 되었고, 부와 잔해를 자신의 소용돌이에 빨아들였다. 미국의 나머지 것도, 바다 건너 것도.”13) 그가 언급한 지식, 산업, 교역이라는 산업근대도시의 세 가지 핵심기능들에서 뉴욕은 19세기 중반 미국 최고수준에 이르렀다. 나아가 20세기 초 미국은 제국에 준 하는 지위를, 뉴욕주는 엠파이어스테이트(Empire State)라는 이름을, 뉴욕은 제국 의 수도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제국’을 표방한 뉴욕의 건물들 중 가장 유명하기로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다. 이 건물은 1931년에 맨해튼 33-34번 스트리트에 세워졌고 한 동안 맨해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명성을 확립했다. 이로부터 뉴욕의 상징을 넘어 미국의 문화적 아이콘까지 되었으며, 2007년 미국건축가협회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건축”을 회원들과 대중들에게 조사한 결과, 1위에 선정되었 다.14) 이 목록에는 뉴욕의 여러 다른 건물들도 뽑혔는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1874년 완공), 브루클린 다리(1883년 완공), 세인트 레지스 호텔(1904년 완공), 성 패트릭 성당(1910년 완공), 그랜드센트럴 터미널(1913년 완공), 크라이슬러 빌딩(1930년 완공) 같은 주요 근대건축물들이 20위 안에 선정되었다. 이 건축물들은 대개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뉴욕의 성장기에 지어져 도시가 품격과 지명도를 갖추는 데 크게 기여한 건물들이다.
뉴욕의 산업과 공간의 공진화 뉴욕은 그저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도시내부의 산업구조와 체질, 도시의 공간이 함께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한 뉴욕의 이러한 변화는 다른 글로벌 도시의 변화에 중요한 참조가 된다. 뉴욕이 성장하는데 애초에 기반이 되었던 산업은 유럽과 미국내륙을 잇는 무역업이다. 항구도시로서 뉴욕의 DNA는 항공시대가 찾아온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간과할 수 없다. 지금도 뉴욕은 북미대륙의 대서양연안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항구 도시다. 뉴욕 하버 즉 어퍼 뉴욕만은 허드슨 강 입구에 자리 잡고 있어, 뉴욕․뉴저지 항(Port of New York and New Jersey)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그림 7, 8].
뉴욕시가 항만사업으로부터 얻은 경제성과는 2017년 기준으로 직접고용 17,420명, 도시 내 고용 35,860명, 개인소득 36억 달러, 사업소득 84억 달러 이상에 이른다.15)
하지만, 항만 교역 말고도 여러 산업들이 뉴욕에서 차례로 일어나고 물러났다. 제조업들은 19세기 중반 맨해튼으로부터 빠져 나갔다. 철강·화학이 브루클린으로 옮겨졌고, 브루클린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설탕제조장이기도 했다. 맨해튼에는 주로 수공업산업들만 남게 되었다. 그 중 의류산업은 중요한 뉴욕의 특색산업 중 하나였다. 미국 최대의 직물창고였던 뉴욕에서는 19세기 중반, 1828-1858년 사이에, 재봉틀이 발명되어 의류산업이 급성장했다. 재봉틀을 발명한 아이작 M. 싱어는 맨해튼 최고 갑부가 되었다[그림 9]. 뉴욕의 의류제조업자들은 남북전쟁 때(1861-1865) 필요한 제복을 정부로부터 대량 주문받았다.16) 19세기 말에는 동유럽으로부터 이민 온 유대인 숙련노동자들이 이 산업을 지탱했다. 작업은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의 빈민가 테너먼트 하우스의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작업환경 개선의 의도로 가먼트 로프트들(garment lofts)에서 의류제조업의 장소가 옮겨졌다. 1910년, 뉴욕시 산업인구의 46퍼센트가 의류산업에 종사할 정도였다. 하지만 1911년 트라이앵클 블라우스 공장 화재사건 같은 참사가 있었다. 이후 의류제조업은 맨해튼의 의류지구(가먼트 디스트릭트)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1950년 전성기 종사자수의 5 퍼센트만 남아 있다. 부동산개발압력에 현 뉴욕시장과 시의회는 뉴욕의 의류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의류산업의 역사에 기반하여 뉴욕은 글로벌 패션의 중심지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날 뉴욕 경제를 말할 때 우리는 뉴욕의 금융업을 말할 수밖에 없고, 또한 맨해튼의 금융지구(파이낸셜 디스트릭트)와 월스트리트를 말할 수밖에 없다. 뉴욕은 금융중심지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의 금융중심지들의 경쟁력을 비교평가하는 지수인 ‘글로벌 금융중심 지수(Global Financial Centres Index, GFCI)’에 따르면,17) 2019년 기준으로 뉴욕이 1위를 차지하고 그 뒤를 런던,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도쿄, 베이징이 따르고 있다(서울은 36 위). 이 지수는 사업환경, 인적자본, 인프라, 금융분야발전, 평판 등의 세부항목을 평가하는데, 전 분야에서 뉴욕이 1위를 차지했다[표 3]. 세계적인 금융중심이 되는 데 필요한 사업환경과 평판을 뉴욕은 역사를 통해 갖추어 왔다. 이미 20세기 초에 은행, 보험, 주식 같은 금융업은 뉴욕시의 지배적인 산업이 되었다. 뉴욕은 도시의 물리적 인프라에서 경쟁력이 높다. 즉, 세계적 금융 중심지가 되려면 공항과 공공교통의 접근이 편리해야 하고 도시기반시설도 잘 갖추어져야 하는데 뉴욕은 이 점에서도 탁월한 것이다.
이곳에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미국증권거래소(NYSE American), 연방준비은행은 물론이거니와, 세계최대의 선물거래소인 뉴욕상업거래소(New York Mercantile Exchange), 나스닥, 뉴욕상품선물거래소(New York Board of Trade) 등 주요 금융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다[그림 10, 11]. 월스트리트는 브로드웨이에서 이스트 리버까지 1킬로미터가 못 되는 길이다. 이 길은 17세기 뉴암스테르담의 북쪽 경계에 있던 “월(Wall)”의 안쪽 길이었다. 이 길에 들어서 있는 고전주의 석조외관의 건축물들은 주로 19세기 중반부터 대공황 직전까지 지어진 것들이다. 그중에서 월스트리트 26번지 건물은 세관건물이었다가 재무성 분국(分局)이었다가 현재는 페더럴홀 국립기념관이 되었다(현재의 건물은 1842년에 완공되었다). 바로 근처의 뉴욕증권거래소는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뉴욕증권거래 소는 1792년에 24명의 브로커와 상인들이 맨해튼의 버튼우드 나무 밑에 모여 합의하여 설립되었고, 2백 여 년이 지난 지금 상장회사 시가총액 약 30조 달러에 이르는 세계최대 증권거래소로 성장했다.(한국거래소는 세계 14위로, 1.5조 달러 규모다) 월스트리트 11번지 건물은 1903년에 지어졌고, 증권거래소의 트레이딩룸이 있다. 건물의 양식은 이른바 신고전주의로서, 건물 정면에는 높은 기단과 코린토스 포 티코를 두고 당당하게 표현하려 했다. “금융의 신전”으로 표현되었다고 간주할 사람도 있겠다. 오늘날 뉴욕의 금융직종 종사자 33만 명 중 90퍼센트가 맨해튼에 모여 있고, 이들의 평균임금은 뉴욕 평균임금의 네 배에 이른다. 금융업의 지위는 글로벌화와 더불어 더욱 강화되어 왔다.
뉴욕시는 1969년에 인구정점을 찍었으나, 그 뒤 1970년대 말까지 침체를 겪다가 1980년대 초에 재성장을 시작했다. 그 뒤로도 많은 산업들이 도시 밖으로 빠져 나가면서 도시산업구조가 바뀌었는데, 그 와중에도 금융활동과 생산자 서비스는 맨해튼에 계속 남게 되었다. 그 까닭은 이 사업분야들이 크고, 유동적이고, 국제적인 도시의 집적경제의 효과를 단단히 보기 때문이다. 글로벌경제는 도시산업구조의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도시연구자들은 도시를 세계경제와 직결시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저명한 도시이론가 존 프리드먼은 1986년에 세계도시 가설을 처음으로 제시한다.[그림 12] 글로벌경제에서는 금융자본의 역할이 커져 금융분야가 성장한다. 글로벌경제는 생산자 서비스업도 키웠다. 많은 기업들이 몰려 있는 도시로서 뉴욕은 생산자 서비스업의 수요가 크고, 기업규제완화로 이해 생산자 서비스업에 새로운 기회와 시장이 생겨났다.19)
사람과 물자가 한 곳에 모이는 집적현상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모두 낳는다. 긍정적 효과로는 이른바 규모경제 효과가 있다. 글로벌경제가 발전하면서 뉴욕에 세계자본이 축적되었고, 세계적인 사업엘리트들 이 중요한 결정을 위해 이곳에 와서 만난다. 생산자 서비스업, 즉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재정, 금융, 광고, 컨설팅, 법률, 시장조사 등 지식집약적 서비스도 뉴욕의 핵심 산업이다. 경영자, 은행가, 브로커, 회계사, 법률회사, 그 밖의 관련자들이 거래를 위해 모여 있다. 이 사업분야에서 반복되는 업무는 뉴욕에서 일어나지 않지만, 이런 물리적 근접효과는 인터넷 시대에도 중요하다. 금융업과 생산자 서비스업의 호황에 편승해서 성장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뉴욕의 핵심사업은 부동산 사업이다. 맨해튼의 땅값은 얼마나 비쌀까? 한 연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맨해튼의 개발가능용지는 1.74조 달러다. 이는 세계 10대 경제규모인 캐나다의 GDP만큼 된다.20) 맨해튼의 주요 업무지구(미드타운, 미드타운 사우스, 로어 맨해튼)에 있는 업무공간의 총면적은 약 42제곱킬로미터(1천2백만 평이 넘는다)에 이른다. 이것은 미국 전역의 업무공간의 총계의 4분의 1이 넘는 면적이다. 이렇게 많은 업무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업 분야에서는 향후 더 많은 업무공간 수요를 예상하고 개발하고 있다. 미래의 업무방식에 맞추어 과거의 업무공간을 바꾸는 것도 중요한 변화로 일어나고 있다. 오픈 레이아웃, 공유공간, 어메니티를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시도 늘어나는 업무공간 수요를 충당할 목적으로 2017년에 이스트 미드타운의 조닝규제를 바꾸었다. 금융업보다는 수익이 떨어지지만 문화, 정보, 관광, 고등교육, 의료서비스업 등도 뉴욕의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산업이다.
21세기를 위한 준비 2000년 이후, 뉴욕의 일자리는 2003-2008년 기간에 늘었다가 2007-2009년의 세계금융위기와 대침체를 겪고 2009년에는 약 10만 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하지만 그 뒤 2009-2018년간에 2차 대전 이후 가장 오랫동안 일자리가 늘고 있다. 이 기간에 82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 2018년 기준 뉴욕의 일자리는 사상 최대로 총 455만 개다21)[그림 13]. 회계, 법률 같은 생산자 서비스업 분야가 일자리 수도 가장 많고 가장 많이 늘었다. 2018년 기준으로 일자리가 762,000개다.
그림 13. 뉴욕시의 전체 일자리 수. 뉴욕의 일자리는 다른 미국도시들에 비해 다양하지 못하다[그림 14]. 이는 증권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증권업 일자리가 장기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반면(2000년의 최고치에 비해 11퍼센트 이상 낮아졌다), 비증권업 분야의 일자 리가 늘면서 일자리의 다양성이 조금 늘고 있다. 도시의 직업이 다양해지면 경기변동에 더 안정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최근 뉴욕시장들은 일자리의 다양성을 도모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뉴욕의 일자리 다양성이 미국경기와 세계경기에 영향에 얼마나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목할 사실은, 테크 일자리 수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분야의 일자리는 2009년 79,400명에서 10년 뒤 142,600명으로 늘었다.22) 뉴욕은 실리콘밸리(샌프란시스코)를 제치고 IT 선도도시의 지위를 노리고 있다. 테크 분야의 젊은 창업가들과 기술자들을 끌어들이는데 뉴욕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인가? 뉴욕이 지닌 금융과 생산자 서비스도 도움이 되겠지만, 주거생활비가 너무 높아서는 안 되고 매력있는 삶의 환경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뉴욕은 젊은 창업가들을 끌어들일 잠재력이 있고 또한 정책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되어 부동산개발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 마스터플랜을 통해 개발된 허드슨 야드가 대표적이다23)[그림 15, 16]. 맨해튼 서쪽에 위치하여 10번 애비뉴를 따라 건설되는 허드슨 야드는 하이라인처럼 한때 철도차량기지가 있던 산업유산이었다. 허드슨 야드는 2026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배터리 파크 사업과 비교되는데, 1960년대 중반 세계무역센터가 건설되던 무렵, 한때 청과물 선착장 부두가 있던 맨해튼 서쪽의 37헥타르의 산업시설이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로 개발되었고, 2011년에야 45년 만에 최종적으로 완공되었다. 이제 허드슨 야드, 그리니치 빌리지 같이 미드맨해튼에서 로어맨해튼에 이르는 허드슨 강변이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 같은 테크 자이언트들의 테크 코리도가 되고 있다[그림 17]. 이 기업들이 이곳에 모이는 까닭으로서, 예술 문화 미디어 상업 시설에 접근가능하여 동종업종 종사자들로만 이루어진 곳에서 탈출하려는 기술직 종사자들에게 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뉴욕은 세계금융수도의 지위에 더해서 테크산업의 혁신생태계까지 구축하면서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만큼이나 뉴욕의 미래도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뉴욕이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는 뉴욕의 계획으로부터 그나마 손에 잡을 수 있다. 즉, 우리는 뉴욕 이 어떤 도전을 인식하고 어떤 비전을 세우고 있는지는 뉴욕의 도시전략을 통해 예상할 수 있다. 현재의 뉴욕시장인 드블라지오 시장이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는 “하나의 뉴욕(One New York) 2050”이 그것이다. 이 도시전략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틀 안에서 수립되었다. 뉴욕의 지속가능발전 정도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지수로는, 미국에서 가장 큰 105개 도시들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얼마나 잘 실현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2019년 미국도시 지속가능발전 보고서』가 있다. 이에 따르면 뉴욕 메트로폴리스 통계 지구의 지수 점수는 총 57.3점으로서 순위 17위다24)
(1위는 총 지수 점수 69.7점의 샌프란시스코 대도시 권[San Francisco-Oakland-Hayward, CA]이다). 뉴욕은 SDG 항목들 중에서 특히 10번 불평등감소와 11번 지속가능한 도시환경에서 저조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뉴욕은 지금까지 막강한 금융수도의 지위를 지키고 있고 그 위에 혁신경제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표적으로 기후변화와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결과를 낳았다. 이에 “하나의 뉴욕”은 (1)민주주의, (2)포용경제, (3) 공동체, (4)건강, (5)교육, (6)기후, (7)모빌리티, (8)인프라스트럭처의 8개 분야에서 8개 목표와 30개 이니셔티브를 세워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뉴욕은 2050년을 기점으로 다음의 미래상을 수립했다. Ÿ 2050년에 뉴욕시는 인구 9백만 명을 넘는 도시다. Ÿ 2050년에 뉴욕시는 기후변화에 대비하여 화석연료 사용을 멈춘다. Ÿ 2050년에 뉴욕시민들은 더 이상 자동차에 의존하지 않는다. Ÿ 2050년에 뉴욕시민들은 가정과 이웃에서 안전하다. Ÿ 2050년에 뉴욕시의 튼튼한 경제는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Ÿ 2050년에 보건은 모든 시민들의 권리다. Ÿ 2050년에 뉴욕시의 모든 어린이는 뛰어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Ÿ 2050년에 뉴욕시의 인프라는 현대적이고 신뢰할 만하다. Ÿ 2050년에 뉴욕시민들은 민주주의에 활발히 참여한다. 2050년까지 제로 온실가스 배출을 목표로 삼는 동시에 안전하고 민주적이고 평 등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은 과감하고도 결코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다. 뉴욕의 이러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지, 또한 어떻게 달성할지 우리는 관심을 가 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의 변화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반세기 동안 개 별도시의 성격이 바뀌고 새로운 도시체제가 시작된다면 이것은 인간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될 것이다.25) 뉴욕의 발전과정은 세계대도시들이 세계의 도시체제에서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를 보여줄 것이고, 이는 곧 현대문명이 어디로 나아갈 지 방향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학술.논문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의 도시 - 서안과 낙양 (0) | 2020.06.10 |
---|---|
건강과 건강 불평등 (0) | 2020.05.10 |
세계의 음식 요점 정리 (0) | 2020.05.02 |
플라톤의 사상과 교육-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교육론 (0) | 2020.03.22 |
행복에 이르는 지혜 (0) | 202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