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있었으며 인근의 중심이 되던 고을이었다.
읍성으로 고창읍성과 더불어 가장 잘 보존되어 온 성 중의 하나이다.
해미(海美)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기를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
두 현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태종 14년(1413)에 병마절도사의 병영을 덕산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성종 22년(1491)에 성벽이 완성되었다.
병영이 효종 2년(1651)에 청주로 옮겨가기까지 서해안 방어의 군사요충지였다.
1578년에는 이순신이 이곳에서 병사영의 군관으로 열 달 동안 근무하기도 했다.
폐성된 지 오래되어 성곽이 일부 허물어지고, 성 안의 건물이 철거되어
그 자리에 해미초등학교와 우체국 ·민가 등이 들어서는 등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1973년부터 읍성의 복원사업을 했다
그러나 민가 및 관공서가 철거되어 읍성 분위기가 썰렁하고 휑한 느낌이 든다.
옛 모습 그대로 보전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