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석 당시삼백수

085. 杜少府之任蜀州 / 王勃

甘冥堂 2023. 3. 6. 06:25

085. 杜少府之任蜀州 / 王勃

        촉주로 부임하는 두소부를 전송하며

 

城闕輔三秦 (성궐보삼진) 삼진에 둘러싸인 장안성에서

風煙望五津 (풍연망오진) 바람 연기 이는 오진을 바라본다.

與君離别意 (여군이별의) 그대와 이별하는 이 마음

同是宦遊人 (동시환유인) 나 또한 외지로 떠도는 벼슬아치 신세다.

海内存知巳 (해내존지기) 이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이 있으면

天涯若比隣 (천애약비린) 하늘가 멀리 있어도 이웃에 있는 듯하니

無為在岐路 (무위재기로) 헤어지는 길목에서

兒女共沾巾 (아녀공첨건) 아녀자처럼 손수건 적시지는 말게나.

 

 

杜少府(두소부)누구인지 불명하다. 少府(소부)현위를 통칭하며 도적을 잡는 임무다.

之任(지임)부임.

蜀州(촉주)사천성 숭경현. 城闕(성궐)도성인 장안. ()지키다. 호위하다.

三秦(삼진)초패왕 항우가 진을 멸망시킨 후, 그곳을 () () (오랑캐 적) 삼국으로 나누었다.

이를 삼진이라 칭했다. 이 지역은 지금의 섬서 일대다.

五津(오진)蜀州(촉주) 일대.

宦遊人(환유인)외지 관리. 벼슬의 이동에 따라 여기저기로 떠돌다.

比隣(비린)근린. 옛날에는 5'라 하고 여덟 가구를 ’()이라 했다.

無為(무위)不要. 沾巾(첨건): 눈물 흘리다.

 

 

[작자]

王勃(650~676)은 강주 용문 사람으로, 건봉 원년(666)에 급제하여, 조산랑, 패왕부 전독, 괵주참군 등을 역임했다.

675년 부친을 뵙고 오던 중, 바다를 건너다 익사하였다.

왕발(649~676) 지금의 산서성 하진현 사람으로 자가 子安이다. 나라 말의 유학자 王通의 손자다.

14세 때 유소과에 급제하여 朝散郞에 임명되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鬪鷄에 대하여 장난삼아 쓴 글이 高宗의 노여움을 사 중앙관직에서 쫓겨났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배에서 떨어져 익사했으나 그의 나이 겨우 28세였다.

어려서 부터 총명하여 일찍이 文名을 얻었으며 楊炯(양형). 盧照隣(노조린). 駱賓王(낙빈왕)과 함께 初唐四傑이라 불린다. 특히 오언율시의 성취가 뛰어나 唐代 오언율시의 발전에 기여했다.

 

 

해설

이 시는 촉 지방으로 부임해 가는 두소부를 전송하면서 지은 작품으로 송별시의 명작이다.

우정이 깊고 두터워 강과 산도 막기 어렵다"는 정경이다.

 

첫 두 구절만 경물 묘사이고 나머지는 모두 떠나가는 친구에 대한 위로와 당부의 말이다.

전반적으로 이별의 슬픔은 꾹 눌러놓은 채 씩씩하고 밝은 표정을 지음으로써

진정으로 친구를 위로하고 싶어하는 시인의 진실한 우정이 담겨 있다.

 

왕발은 初唐四傑(초당사걸)의 한 사람으로 근체시의 격률을 확립하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거니와,

평측, 압운, 對仗(대장) 등의 여러 방면에서 대체로 근체시의 격률에 합치되는 이 작품을 통해

초당 시기에 오언율시가 점차 성숙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