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매월당 김시습 시

甘冥堂 2024. 2. 20. 20:26

야심 夜深

夜深山室月明初(야심산실월명초)
: 깊은 밤, 산실에 달 밝은 때
靜坐挑燈讀隱書(정좌도등독은서)
: 고요히 앉아 등불 돋워 은서를 읽는다
虎豹亡曹相怒吼(호표망조상노후)
: 무리 잃은 호랑이와 표범들 어르렁거리고
鴟梟失伴競呵呼(치효실반경가호)
: 소리개 올빼미 짝을 잃고 다투어 부르짖는다
頤生爭似安吾分(이생쟁사안오분)
: 편안한 삶 다툼이 어찌 내 분수에 편안만 하리오
却老無如避世居(각로무여피세거)
: 도리어 늙어서는 세상 피하여 사는 것만 못하리라
欲學鍊丹神妙術(욕학련단신묘술)
: 오래 사는 범을 배우려 하시려면
請來泉石學慵疏(청래천석학용소)
: 자연을 찾아 한가하고 소탈한 것이나 배워보시오



주의 晝意

庭花陰轉日如年(정화음전일여년)
: 뜰에 핀 꽃 그늘 돌아 하루가 일년 같은데
一枕淸風直萬錢(일침청풍치만전)
: 베개로 불어드는 맑은 바람 만금의 값나가네
人世幾回芭鹿夢(인세기회파록몽)
: 사람은 몇 번이나 득실을 헤아리는 꿈을 꾸는가
想應終不到林川(상응종부도임천)
: 그러나 생각은 끝내 자연의 삶에 이르지 못하리라



월야우제 月夜偶題

滿庭秋月白森森(만정추월백삼삼)
: 뜰에 가득한 가을달 흰빛 창창하고
人靜孤燈夜已深(인정고등야이심)
: 외로운 불빛, 사람은 말이 없고 밤은 깊어간다
風淡霜淸不成夢(풍담상청불성몽)
: 살랑거리는 바람, 맑은 서리에 잠은 오지 않고
紙窓簾影動禪心(지창염영동선심)
: 종이 창의 발 그림자에 부처마음 이는구나



월야月夜

絡緯織床下(낙위직상하)
: 여치는 평상 아래에서 베짜듯 울고
月白淸夜永(월백청야영)
: 밝은 달빛, 맑은 밤은 길기도하여라
靈臺淡如水(영대담여수)
: 마음은 물 같이 담담하고
萬像森復靜(만상삼부정)
: 만물은 가득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風動鳥搖夢(풍동조요몽)
: 바람 불어 새는 꿈에서 깨고
露滴鶴竦驚(노적학송경)
: 이슬방울에 학은 놀라 움추리는구나
物累不相侵(물루불상침)
: 만물의 질서는 서로 침해하지 않으니
箇是招提境(개시초제경)
: 그것이 바로 부처님 나라의 경지이로다



중추야신월1中秋夜新月

半輪新月上林梢(반륜신월상림초)
: 둥그레한 초승달 나무가지 끝에 뜨면
山寺昏鐘第一鼓(산사혼종제일고)
: 산사의 저녁종이 처음으로 울려온다
淸影漸移風露下(청영점이풍로하)
: 맑은 그림자 옮아오고 바람과 이슬이 내리는데
一庭凉氣透窓凹(일정량기투창요)
: 온 뜰에 서늘한 기운 창틈을 스며든다



중추야신월2中秋夜新月

白露溥溥秋月娟(백로부부추월연)
: 흰 이슬 방울지고 가을달빛 고운데
夜虫喞喞近床前(야충즐즐근상전)
: 밤 벌레소리 시꺼럽게 침상에 앞에 들려오네
如何撼我閒田地(여하감아한전지)
: 나의 한가한 마음 흔들어 놓으니 나는 어찌하랴
起讀九辯詞一篇(기독구변사일편)
: 일어나 구변의 노래 한 편을 읽고있도다



구우久雨

茅簷連日雨(모첨연일우)
: 초가에 연일 비 내려
且喜滴庭際(차희적정제)
: 처마에 물방울지니 우선은 기쁘구나
底事消淸晝(저사소청주)
: 무슨 숨겨진 일로 깨끗한 하루 보낼꺼나
窮愁著隱書(궁수저은서)
: 궁색하고 근심스러우니 은서나 지어볼리라



소우(疏雨)-김시습(金時習)

疏雨蕭蕭閉院門(소우소소폐원문)
: 소슬한 가랑비에 문을 닫고
野棠花落擁籬根(야당화락옹리근)
: 해당화 뜰어져 울타리밑에 쌓였구나
無端一夜芝莖長(무단일야지경장)
: 까닭없이 밤새도록 지초 줄기 자라나
溪上淸風屬綺園(계상청풍속기원)
: 개울 위로 불어오는 맑은 바람 기원과 같아라



우중민극(雨中悶極)-김시습(金時習)

連空細雨織如絲(연공세우직여사)
: 베를 짜는 양 가랑비 하늘에 가득하고
獨坐寥寥有所思(독좌요요유소사)
: 적적히 홀로 앉으니 생각나는 바가 많구나
窮達縱云天賦與(궁달종운천부여)
: 궁하고 달하는 것 하늘이 준 것이라 하지만
行藏只在我先知(행장지재아선지)
: 가고 머물고는 내게 있음을 알고 있다네
霏霏麥隴秋聲急(비비맥롱추성급)
: 부슬부슬 비 내리는 보리밭에 가을소리 급하고
漠漠稻田晩色遲(막막도전만색지)
: 막막한 벼밭엔 저녁빛이 늦어 드는구나
老大頤生何事好(노대이생하사호)
: 늙어서 편안한 삶에는 어떤 일이 좋은가
竹床凉簟乍支頤(죽상량점사지이)
: 대나무 평상에 서늘한 돗자리에서 턱이나 괴는 것이네



산거山居

山勢周遭去(산세주조거)
: 산세는 주변을 둘러싸고
江流縹妙廻(강류표묘회)
: 강물은 흘러 옥빛처럼 흘러간다
一鳩鳴白晝(일구명백주)
: 비둘기 한 마리 한낮을 울어대고
雙鶴啄靑苔(쌍학탁청태)
: 한 쌍의 학은 푸른 이끼 쪼아댄다
拄笏看雲度(주홀간운도)
: 홀을 잡고 흘러가는 구름 바라본다
吟詩逼雨催(음시핍우최)
: 시 읊으며 비를 재촉하노라
我如陶然靖(아여도연정)
: 나는 도연명과 같아서
守拙碧雲堆(수졸벽운퇴)
: 푸른 구름 더미에 쌓여 졸함을 지켜사노라



유거幽居)

幽居臥小林(유거와소림)
: 숲 속에 누워 그윽히 사니
靜室一煙氣(정실일연기)
: 고요한 방안에 한 줄기 향기오른다
夜雨林花爛(야우임화란)
: 밤비에 숲 속 꽃이 찬란하고
梅天風氣凉(매천풍기량)
: 육칠 월 날씨에 바람은 서늘하구나
葉濃禽語警(엽농금어경)
: 나뭇잎 짙고 새들은 지저귀고
泥濕燕飛忙(니습연비망)
: 진흙에 질퍽하고 제비는 바삐 날아다닌다
何以消長日(하이소장일)
: 긴 날을 어찌 보낼 것인가
新詩寫數行(신시사수행)
: 새로운 시나 몇 줄 지어볼까나



제소림암題小林菴

禪房無塵地(선방무진지)
: 선방 티끌없는 그곳에
逢僧話葛藤(봉승화갈등)
: 스님을 만나 얽힌 이야기 나눈다
身如千里鶴(신여천리학)
: 몸은 천 리를 나는 학 같고
心似九秋鷹(심사구추응)
: 마음은 가을 철 매 같도다
石逕尋雲到(석경심운도)
: 돌길에 구름 찾아 여기에 와
松窓獨自凭(송창독자빙)
: 소나무 창가에 홀로 기대어본다
無端更回首(무단갱회수)
: 까닭없이 다시 머리 돌려보니
山色碧崚嶒(산색벽릉증)
: 산빛은 푸르고 험하기만 하구나



춘유산사春遊山寺

春風偶入新耘寺(춘풍우입신운사)
: 봄바람 불어 우연히 신운사에 들러보니
房閉僧無苔滿庭(방폐승무태만정)
: 스님도 없는 승방, 뜰에 이끼만 가득하다
林鳥亦知遊客意(임조역지유객의)
: 숲 속의 새들도 나그네 마음 알고
隔花啼送兩二聲(격화제송양이성)
: 꽃 넘어 저곳, 새는 두세 울음 울어 보내네



수파령水波嶺

小巘周遭水亂回(소헌주조수난회)
: 작은 봉우리를 둘러 물이 어지러이 휘돌고
千章喬木蔭巖隈(천장교목음암외)
: 일천 그루 높은 나무 바위 가에 그늘지운다
山深不見人蹤迹(산심불견인종적)
: 산 깊어 사람의 자취 보이지 않고
幽鳥孤猿時往來(유조고원시왕래)
: 깊은 산에 외로운 원숭이만 때때로 오고간다



우중서회雨中書懷

滿溪風浪夜來多(만계풍랑야래다)
: 개울 가득한 풍랑 밤새 많아지니
茅屋蓬扉奈若何(모옥봉비내약하)
: 초가집 사립문은 어찌 해야하는가
亂滴小簷聲可數(난적소첨성가수)
: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 헤아릴 수도 있으니
塊然身在碧雲窩(괴연신재벽운와)
: 외롭도다, 이내 몸은 푸른 구름 속에 있는 듯하여라



설효1雪曉

滿庭雪色白暟暟(만정설색백개개)
: 뜰에 가득한 눈빛은 희고 아름다워라
瓊樹銀花次第開(경수은화차제개)
: 옥나무 은빛 눈꽃이 차례로 피어나는구나
向曉推窓頻著眼(향효추창빈저안)
: 새벽 되어 창문 열고 자주 눈을 돌리니
千峰秀處玉崔嵬(천봉수처옥최외)
: 일천 봉우리 빼어난 곳에 옥이 높게도 쌓였구나



설효2雪曉

我似袁安臥雪時(아사원안와설시)
: 내가 원안처럼, 눈에 누워있어
小庭慵掃捲簾遲(소정용소권렴지)
: 조그마한 뜰도 쓸기 싫고, 발마저 늦게 걷는다
晩來風日茅簷暖(만래풍일모첨난)
: 늦어 부는 바람과 해, 초가집 처마 따뜻해져
閒看前山落粉枝(한간전산락분지)
: 한가히 앞산을 보니, 나무가지에서 떡가루가 떨어진다



설효3雪曉

東籬金菊褪寒枝(동리금국퇴한지)
: 동쪽 울타리에 금국화의 퇴색된 울타리
霜襯千枝个个垂(상친천지개개수)
: 서리 내의 천 가지에 하나하나 널어 놓았다
想得夜來重壓雪(상득야래중압설)
: 생각건데, 밤동안에 무겁게 눌린 눈
從今不入和陶詩(종금불입화도시)
: 이제부터 도연명의 화운시에도 들지 못한다



촌등村燈

日落半江昏(일락반강혼)
: 해가 지니 강의 절반이 어둑해져
一點明遠村(일점명원촌)
: 한 점 등불 아득히 먼 고을 밝힌다
熒煌穿竹徑(형황천죽경)
: 등불의 불빛은 대나무 좁은 길을 꾾고
的歷透籬根(적력투리근)
: 또렷하게 울타리 밑을 비춰오는구나
旅館愁閒雁(여관수한안)
: 여관에 들려오는 기러기 소리 수심겹고
紗窓倦繡鴛(사창권수원)
: 비단 창가 비치는 원앙 수놓기 권태롭구나
蕭蕭秋葉雨(소소추엽우)
: 우수수 가을잎에 내리는 비
相對正銷魂(상대정소혼)
: 마주 바라보니 내 넋이 녹아버리는구나



도점陶店

兒打蜻蜓翁掇籬(아타청정옹철리)
: 아이는 잠자리 잡고, 노인은 울타리 고치는데
小溪春水浴鸕鶿(소계춘수욕로자)
: 작은 개울 흐르는 봄물에 가마우지 먹을 감는다
靑山斷處歸程遠(청산단처귀정원)
: 청산 끊어진 곳에서, 돌아 갈 길은 아득한데
橫擔烏藤一个枝(횡담오등일개지)
: 검은 등나무 덩굴 한 가지가 비스듬히 메어있다


<금오신화>

김시습 지음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 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등이며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신라 태종무열왕의 6세손인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무반 계통으로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김일성(金日省)의 아들이다.

생후 8개월에 글뜻을 알았고 3세에 능히 글을 지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질을 타고 났다.
5세에는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후일 중용하리란 약속과 함께 비단을 하사받기도 했다.
나아가 당시의 석학인 이계전(李季甸)·김반(金泮)·윤상(尹祥)에게서
수학하여 유교적 소양을 쌓기도 했다.

그의 이름인 시습(時習)도 〈논어 論語〉 학이편(學而篇) 중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과거준비로 삼각산 중흥사(三角山 中興士)에서 수학하던 21세 때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대권을 잡은 소식을 듣자 그 길로 삭발하고
중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났다(→ 생육신).

그는 관서·관동·삼남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체험했는데,
〈매월당시사유록 每月堂詩四遊錄〉에 그때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31세 되던 세조 11년 봄에 경주 남산(南山) 금오산(金鰲山)에서
성리학(性理學)과 불교에 대해서 연구하는 한편,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37세에 서울 성동(城東)에서 농사를 직접 짓고 환속하는 한편 결혼도 했다.
벼슬길로 나아갈 의도를 갖기도 했으나 현실의 모순에 불만을 품고
다시 관동지방으로 은둔, 방랑을 하다가 충청도 홍산(鴻山) 무량사(無量寺)에서
59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쳤다.
그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속에서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기구한 일생을 보냈는데,
그의 사상과 문학은 이러한 고민에서 비롯한 것이다.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얻은 생활체험은 현실을 직시하는
비판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시야를 넓게 했다.

그의 현실의 모순에 대한 비판은 불의한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과 맞닿으면서 중민(重民)에 기초한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상을 구가하는 사상으로 확립된다.

한편 당시의 사상적 혼란을 올곧게 하기 위한 노력은 유·불·도 삼교(三敎)를
원융적(圓融的) 입장에서 일치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불교적 미신은 배척하면서도 조동종(漕洞宗)의 인식론에 입각하여,
불교의 종지(宗旨)는 사랑(자비)으로 만물을 이롭게 하고
마음을 밝혀 탐욕을 없애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또 비합리적인 도교의 신선술(神仙術)을 부정하면서도
기(氣)를 다스림으로써 천명(天命)을 따르게 하는 데 가치가 있다고 한다.
즉 음양(陰陽)의 운동성을 중시하는 주기론적(主氣論的) 성리학의 입장에서 불교와 도교를 비판, 흡수하여
그의 철학을 완성시키고 있는데,
이런 철학적 깨달음은 궁극적으로는 현실생활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저(遺著)로는
〈금오신화〉·〈매월당집 梅月堂集〉·〈매월당시사유록〉 등이 있다.

- 출처 : 한암의 누리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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