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석 당시삼백수

120. 歲暮歸南山 / 孟浩然

甘冥堂 2024. 6. 19. 22:05

120. 歲暮歸南山 / 孟浩然

세모에 남산으로 돌아와서

 

北闕休上書 (북궐휴상서) 궁궐에 글 올리기를 그만두고

南山歸敝廬 (남산귀폐려) 남산에 있는 누추한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不才明主棄 (부재명주기) 재주가 없어 황제가 버리시니

多病故人疎 (다병고인소) 병은 많고 친구들 소원하네.

白髮催年老 (백발최년로) 흰 머리는 늙음을 재촉하고

青陽逼歲除 (청양핍세제) 봄볕은 가는 해를 다그친다.

永懐愁不寐 (영회수불매) 가슴 가득한 시름에 잠 못 이루는데

松月夜窻虛 (송월야창허) 소나무에 걸린 달은 창문에 공허하다.

 

 

南山여기서는 현산을 말한다. 양양성 남쪽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칭한다.

맹호연이 은거하는 오두막집이 부근에 있다. 개원16(728),

당시 맹호연은 서울로 가서 진사시에 응시하였으나 낙방 하였다.

北闕(북궐)황제의 거처. 궁전은 북쪽에 자리 잡고, 조정은 남쪽에 있기 때문이다. 또 황제로 대칭 된다.

 

敝廬(폐려)허름하고 누추한 집. 자기가 사는 집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明主(명주)지금의 황제.

青陽(청양)봄철. 청춘.

歲除(세제)음력 섣달 30, 북을 쳐 역병을 물리치는 풍속이 있었다. 후에 년 말일을 세제라고 했다.

이 구절은 봄이 오고 세모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라는 뜻이다.

 

 

해설현종 개원16(728) 시인이 장안에 도착하여 응시하였으나 낙제하여, 심정이 매우 고민스러웠다.

그는 자기의 문장이 좋다는 긍지가 있었고 또 왕유, 장구령의 명예에 이어,

자못 명성이 있어 벼슬길이 창달하리라 여겼다. 뜻하지 않게 낙제하여 그로 하여금 크게 고민하게 하였고,

어쩔 수 없이 돌아가 은거하게 했다.

 

<新唐書. 孟浩然傳>에는 王維(왕유)가 일찍이 맹호연을 초청하여 內署(내서)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현종이 들어왔다. 맹호연을 상아래 숨기고 왕유가 이실직고 하였다.

황제가 그를 나오게 하여 그 시를 물으니 맹호연이 스스로 지은 것을 읊었다.

不才明主棄 句에 이르러 현종이 말하기를, 경이 벼슬을 구하지 않고 짐이 일찍이 그대를 버리지 않았다.

어찌 나를 원망하는가. 그리고는 돌려보냈다.

 

이 시는 시인이 돌아와 은거하는 작품으로, 시 중에 일종의 원망과 비감함이 나타나 있으며

벼슬에 나아가는 것을 멈추고 남산으로 은거하는 것을 서술했다.

3. 4 구에서는 회재불우한 감개를 토로했고, 마지막 두 구절은 적막하고 공허한 심정을 명백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