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첩섭이어(呫囁耳語)

甘冥堂 2025. 1. 9. 17:57

첩섭이어(呫囁耳語)
-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리며 하는 귓속말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도록 두 사람만 귀를 가까이 소곤거리는 귓속말은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한다는 것은 남의 장단점을 함부로 떠벌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면 바로 조선 초기 黃喜(황희) 정승을 떠올린다.
길가다 소 두 마리로 밭을 가는 농부에게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는지 묻자
다가와 귀엣말로 했다는 附耳細語(부이세어)가 그것이다.
 짐승이라도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 기분 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희가 좋다, 나쁘다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아 好好先生(호호선생)이 됐다.

반면 자신은 따돌리고 앞에서 두 사람이 소곤거리며(呫囁)
귀에다 대고 말을 한다면(耳語) 기분 좋을 수가 없다.
 하기 쉬운 귓속말이 이처럼 어려운 성어로 나오는 곳은 ‘史記(사기)’에서다.

魏其武安侯(위기무안후) 열전에서
後漢(후한)의 장군 灌夫(관부)가 속삭이는 상대를 보고 호통 칠 때 사용됐다.

관부는 강직하고 아첨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6대 황제 景帝(경제)의 외척인 竇嬰(두영, 竇는 구멍 두)이
吳楚(오초)의 난을 진압할 때 큰 공을 세우고 이후 부자처럼 가까이 지냈다.
경제의 처족으로 이복이라 미천했던 田蚡(전분, 蚡은 두더지 분)은
처음 두영을 섬기다 7대 武帝(무제)가 즉위한 뒤 권력이 집중됐다.

세력을 잃었다고 두영에 함부로 대하는 것을
관부가 좋게 볼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사달이 벌어졌다.
전분이 권세가의 딸을 맞아 연회를 베풀었을 때
두영의 강권으로 관부도 내키지 않았지만 참석했다.

술을 좋아하는 관부가 안하무인의 전분에게 잔을 올렸을 때
주법에 어긋나게 반만 채우라고 말했다.
관부는 화가 나 씩씩거리다
옆 자리의 친척 조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폭발했다.
 
‘오늘 어른의 축배를 권하는데도(今日長者爲壽/ 금일장자위수),
그대는 계집애처럼 소곤대고만 있는가(乃效女兒呫囁耳語/ 내효녀아첨섭이어).’
술자리에 참가한 고관들은 엉망이 된 분위기에 하나둘씩 떠나버렸다.

魏其侯(위기후)는 두영이, 武安侯 (무안후)는 전분이 후일 봉해진 이름이다.
 
소곤거린다고 엉뚱한데 화를 냈던 관부는 그렇지 않아도 전분의 눈 밖에 나 있었는데
잔치를 망치고 성할 수가 없었다.
관부를 구하려 노력한 두영과 함께 전분이 누명을 씌워 처형시켰다.
관부가 분에 못 이겨 일부러 한 일이긴 해도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서 귓속말을 하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남의 험담은 물론 안 하는 것이 좋고 없는 자리서는 더욱 피할 일이다.
비밀을 지킨다고 약속한 말일수록 더욱 빨리 퍼진다고 주의시킨 말이 많다.

牆有耳(장유이)는 ‘벽에도 귀가 있다’,
晝語鳥聽 夜語鼠聽(주어조청 야어서청)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대로다.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현달  (0) 2025.01.10
고양∼의정부 연결 교외선 21년만에 다시 달린다  (1) 2025.01.09
兵法 苦肉計  (0) 2025.01.09
밥은 먹었니?  (0) 2025.01.09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  (0) 202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