遊山西村(유산서촌)- 陸游(육유)
莫笑農家臘酒渾 (막소농가랍주혼) 농가의 섣달 술이 탁하다고 비웃지 말게나
豊年留客足鷄豚 (풍년유객족계돈) 풍년이라 손님 머물면 닭고기 돼지고기 풍성하다네.
山重水複疑無路 (산중수복의무로) 산에 또 산이고 물에 또 물이라 길이 없나 했더니
柳暗花明又一村 (유암화명우일촌) 버들 우거지고 꽃 밝게 핀 저쪽에 또 마을이 보이는구려
臘酒(랍주)는 섣달 랍제를 위해 담근 술로.
막다른 곳에서도 또 다른 마을이 있으니 희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끝의 柳暗花明(유암화명)은 버들은 그윽하고 꽃은 피어 밝다는 뜻으로
자연경치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합니다.
새해에 앞날이 밝지 않고 난관이 중첩했을 때
종종 이 구절전체나 앞부분 山重水複(산중수복)만 잘라서 인용하기도 합니다.
"산은 첩첩, 물은 겹겹이라 길이 없는 듯했는데
버들잎 짙고, 꽃들 밝게 피어난 곳에 또 한 마을 있네"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어느 깊은 골짜기에서 문득 이 시구가 생각나 여행길의 피곤함이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南宋(남송) 시대의 애국시인,陸游(육유, 1125~1209)
호를 예법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방옹(放翁)이라 지어 육방옹이라 불렸던 육유는
기울어져가는 남송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열정으로 분방한 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당시 실력자인 간신 秦檜(진회)에 밉보여 말단 벼슬로 지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육유는 애국, 울분, 희망이 담긴 우국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시집 '劍南詩高/ (검남시고)'를 비롯, 수량에 있어서는 고금 제일인
모두 1만4000여 수의 시가 전해집니다.
1167년 육유가 고향인 山陰(산음)의 서쪽에 있는 마을을 찾아가 읊은
遊 山西村(유산서촌)시에는 암울한 조국의 어두운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유산서촌(遊山西村) 三山의 서쪽 마을에서 노닐며/ 放翁 陸游(방옹 육유).
莫笑農家臘酒渾
농가의 섣달에 담근 술이 탁하다고 웃지 마시게.
豊年留客足雞
풍년이라 손님 머무르게 하기에 닭과 돼지면 넉넉하네.
山重水複疑無路
산과 물로 겹겹이 둘러싸여 길이 없나 의아했더니
柳暗花明又一村
버들잎 짙고 꽃 활짝 핀 곳에 마을이 또 하나 있네.
簫鼓追隨春社近
퉁소 소리, 북소리가 서로 이어지니 봄 제삿날이 가까워진 듯한데
衣冠簡樸古風存
옷차림이 간소하고 순박해서 옛 풍속을 간직하고 있네.
從今若許閑乘月
지금부터 한가로운 달밤 나들이를 허락한다면
挂杖無時夜叩門
지팡이 짚고 아무 때나 밤에 찾아가 문을 두드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