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사군자

草書歌行(초서가행)/李白(701~762)

甘冥堂 2025. 11. 9. 20:03

草書歌行(초서가행)/李白(701~762)
<초서의 노래>

少年上人號懷素(소년상인호회소)
젊은 스님이 호를 회소라 했는데

草書天下稱獨步(초서천하칭독보)
초서 쓰는 솜씨가 천하에서 독보적이라 하네

墨池飛出北溟魚(묵지비출북명어)
먹물이 이룬 못에서는 북해(北海)의 큰 고기도 튀어나올 정도이고

筆鋒殺盡中山兎(필봉살진중산토)
붓털 하도 닳아서 중산(中山)의 토끼를 다 잡아 없애게 할 정도네

八月九月天氣涼(팔월구월천기량)
8,9월 달 날씨 시원할 때

酒徒詞客滿高堂(주도사객만고당)
술꾼과 문인이 큰 집 대청에 가득 찼네

牋麻素絹排數廂(전마소견배수상)
삼베 종이 흰 비단 여러 방에 벌려놓고

宣州石硯墨色光(선주석연묵색광)
선주(宣州)의 돌벼루에는 먹물 빛이 넘치네

吾師醉後倚繩牀(오사취후의승상)
우리 스님 취한 뒤 의자에 기대앉아

須臾掃盡數千張(수유소진수천장)
잠깐 사이에 수천 장을 다 써버리네

飄風驟雨驚颯颯(표풍취우경삽삽)
회오리바람 일며 소낙비 쏴 하고 내리듯 놀라게 하고

落花飛雪何茫茫(낙화비설하망망)
꽃잎 떨어지고 눈 날리듯 얼마나 엄청난가?

起來向壁不停手(기래향벽부정수)
일어서서는 벽을 향해 손 멈추지 않고 써내니

一行數字大如斗(일행수자대여두)
한 줄이 네댓 자요 한 자 크기가 한 말 정도이네

怳怳如聞神鬼驚(황황여문신귀경)
정신 아찔한 사이 귀신도 놀라는 소리 들리는 듯하고

時時只見蛟龍走(시시지견교룡주)
때때로 오직 교룡(蛟龍)이 달리는 것만이 보이는듯 하네

左盤右蹙如驚電(좌반우척여경전)
왼편으로 구부리고 오른편으로 끌어당기고 하는 것이 번개치는 듯하고

狀同楚漢相攻戰(상동초한상공전)
모습이 마치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공격하며 전쟁하는 듯하네

湖南七郡凡幾家(호남칠군범기가)
호남의 일곱 군(郡)에는 거의 모든 집에

家家屛障書題遍(가가병장서제변)
집집마다 그분 글씨 담긴 병풍이나 액자가 두루 퍼져 있다네

王逸少, 張伯英(왕일소, 장백영)
왕희지(王羲之)나 장지(張芝)같은 사람들은

古來幾許浪得名(고래기허낭득명)
옛부터 얼마나 부질없이 명성을 얻었는가?

張顚老死不足數(장전노사부족수)
장욱(張旭)은 늙어 죽었으니 따질 것도 없고

我師此義不師古(아사차의불사고)
우리 스님의 이러한 서법은 옛분을 스승 삼은 것도 아닐세

古來萬事貴天生(고래만사귀천생)
옛날부터 모든 일은 타고난 것이 소중하니

何必要公孫大娘渾脫舞(하필요공손대낭혼탈무)
어찌 반드시 공손대랑의 혼탈무가 있어야만 하겠는가?



▶ 獨步(독보): 비교가 되지 않다. 유일하다.
▶ 墨池(묵지): 벼루. 붓과 벼루를 씻은 연못.
▶ 北溟(북명): 북쪽에 있는 바다. ‘北冥’으로도 쓴다. 《장자莊子》 소요유편逍遙游篇에서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북쪽 바다에 고기가 있어 이름을 곤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 中山(중산): 산중山中
▶ 牋麻素絹(전마소견): 종이와 흰 비단. 왕기王琦는 주를 달아 ‘牋麻皆紙也(牋과 麻는 모두 종이이다)’라고 했다.
▶ 廂(상): 본채 옆에 붙어있던 곁채
▶ 繩牀(승상): 좌구坐具. 등받이가 있는 의자. 
호상胡床, 교상交床, 교의交椅라고도 한다.
▶ 怳怳(황황): 정신이 없는 모양. 불안해하는 모양. 미친 듯한 모양.

▶ 左盤右蹙如驚電(좌반우척여경전): 왼쪽은 넙적하고 오른쪽은 줄어든 모양으로 재빠르게 붓을 놀리는 것을 가리킨다. 
흔히 용사비동龍蛇飛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驚電’번개가 번쩍하듯 신속한 것을 가리킨다.

▶ 湖南七郡(호남칠군): 동한東漢 때 형주荊州는 남양군南陽郡, 남군南郡, 강하군江夏郡, 영릉군零陵郡, 계양군桂陽郡, 무릉군武陵郡, 장사군長沙郡 등 일곱 개의 군으로 되어있었는데, 동한 말엽에 남양군과 남군을 나누어 양양군襄陽郡과 장릉군章陵郡 두 곳을 늘림으로써 나중에는 형양구군荊襄九郡이라 부르게 되었다.
▶ 屛障(병장): 병풍屛風
▶ 王逸少(왕일소): 동진東晉의 서법가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그의 자가 일소逸少였다.

▶ 張伯英(장백영): 동한東漢의 서법가 장지張芝를 가리킨다. 그의 자가 백영伯英이었다.

▶ 張顚(장전): 당조唐朝의 서법가 장욱張旭을 가리킨다. 
초서를 잘 썼는데 술에 취하면 미친 사람 같은 태도를 보여 
사람들이 ‘장전張顚’이라고 불렀다.

▶ 公孫大娘(공손대랑) : 당조唐朝 개원開元 연간(713~741)에 
교방敎坊에서 활약한 유명한 무기舞妓로, 그녀가 추는 검무를 사람들이 혼탈무渾脫舞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숙종肅宗 건원乾元 2년(759),
이백李白은 무협에서 사면을 받아 야랑夜郞에서 배를 타고 강릉江陵으로 돌아가는 중에 동정호 일대를 돌아보다가
소문을 듣고 찾아온 회소懷素를 만났다.
스물두 살 젊은 승려 회소는 이백에게 시 한 수를 청했고
이백은 그 자리에서 바로 청년명필 회소를 찬양하는 시를 한 편 지어주었다.


아침부터 난분분 눈 내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 방 안에 묵향 가득할 때까지 먹물 갈아놓은 뒤,먹물 흠뻑 적신 붓으로 
맘속에 담아둔 글 한 구절 힘차게 써 내려간 사람이 있을 법도 
하다.

 
◈ 회소懷素 [725 or 737~785?]
속성은 전씨錢氏이며 자는 장진藏眞이고 영릉零陵(지금의 영주永州) 사람이다. 장사長沙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일곱 살에 절로 들어갔다. 
언제부터 서법 수련을 시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형편이 좋지 않아 종이를 마련할 수 없었던 그는 검은색 바위와 목판 위에 물로 글씨를 쓰는 연습을 하다가 나중에는 절 뒤에 파초芭蕉를 심어 파초의 넓은 잎 위에 글씨를 썼다고 한다. 
그가 수련했던 암자의 이름이 녹천암綠天菴이 된 까닭이다. 

그가 글씨를 연습하다 버린 붓이 쌓여있던 곳이 나중에 ‘필총筆塚’으로 불렸다고 한다. 회소는 당대의 이름난 스승들을 찾아 
다니며 글씨를 배웠는데 안진경顔眞卿, 위척韋陟 등에게서도 일깨움과 격려를 받았다. 회소는 특히 초서를 좋아하여 
장욱張旭의 광초狂草를 이어받은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가미한 독특한 풍격으로 청출어람의 기세를 이루었다. 
회소는 하루에 아홉 번씩이나 술에 취한 적도 있어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취승醉僧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회소는 또 절에 회칠을 한 수십 칸의 복도를 만들어두고 술에 
취할 때마다 붓을 들어 벽에 폭풍이 몰아치듯 글씨를 써나가곤 했기 때문에 회소를 두고 ‘이광계전以狂繼顚(미친 것으로 장욱을 계승하다)’이라고도 했다.




*옛부터 이 시는 이백의 작품이 아니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았다.
懷素회소의 술 좋아하고 매인 곳 없이 행동하는 모양이 이백과
서로 통한다 하여 이 시를 이백에게 갖다 붙였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회소의 초서는 이 시를 통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唐詩選(당시선)/김학주 譯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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