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목마와 숙녀 /박인환

甘冥堂 2025. 12. 21. 08:00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셔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참고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는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다.
그녀의 글은 사건보다 의식, 줄거리보다 마음의 파문을 따라 흐른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파도처럼 출렁이고, 인물의 생각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핵심 특징
의식의 흐름 기법: 인간 내면의 미세한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포착
시간의 해체: 과거·현재·미래가 한 순간에 겹쳐짐
여성의 목소리: 침묵당하던 여성의 사유와 삶을 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림

대표 작품
《댈러웨이 부인》: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펼쳐지는 인간 의식의 우주
《등대로》: 가족, 상실, 기억, 시간에 대한 가장 섬세한 소설
《자기만의 방》: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문학사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주의 에세이

한 문장으로 말하면
버지니아 울프는 인간의 마음이 흘러가는 방식을 문장으로 증명한 작가다.


2. 페시미즘
세계나 인생을 불행하고 비참한 것으로 보며, 개혁이나 진보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경향이나 태도.

동의어로 염세주의(비관주의),
반대말은 낙관주의(옵티미즘)다.



작가 박인환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現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에서
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아버지 박광선(朴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 사이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제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가 부친과 함께 상경하여
경성덕수공립소학교(現 서울덕수초등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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