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흔들리며 피는 꽃

甘冥堂 2026. 5. 6. 07:33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



도종환 시인이 소재로 삼은 ‘꽃’, ‘담쟁이’, ‘시래기’,

‘자작나무’, ‘강’은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젖으면서도 따뜻한 빛깔을 피워내는 꽃,
함께 손잡고 벽을 오르는 담쟁이, 험한 바위를 만날수록 아름다운 파도...

그들의 모습을 통해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고 늘 깨어 흐른다면
우리의 절망도 그리 무겁지 않으리라는
시인의 담담한 이야기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가슴을 조용히 울린다.

이처럼 도종환 시인은 자연 속에서 삶, 사랑, 희망, 행복을 읽어내

쉬우면서도 간결한 시어로 풀어낸다.
맑고 잔잔한 마음이 전해져오는 그의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온다.
무겁거나 어려운 암호가 아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풍경과 자연에서 포착한 생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시가 앵두꽃, 자두꽃, 산벚꽃, 제비꽃 같기를 바랍니다.
크고 화려한 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하고 은은한 꽃이기를 바랍니다.
목마른 이에게 건네는 맑은 물 한 잔이기를 바랍니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격려의 악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는 한 장의 엽서이기를 바랍니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다가가는 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친 이 옆에 놓여있는 빈 의자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 개정판 시인의 말 中



‘생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생의 비의’를 담은 그의 시는
어떤 이에게는 ‘위로’의 언어를,
어떤 이에게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건넨다.
시인의 말 그대로 시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성장통의 시간, 폐허를 견디는 시간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것이 바로 사람이고, 인생이다.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폐허 이후」 전문



시화선집 곳곳에 자리한 송필용 화백의 적요한 강, 바다, 하늘 위를 거니는 것은

‘사랑’의 시어들이다.
지난한 시간을 통과한 절망과 슬픔은 사랑이라는 꽃잎을 피워낸다.
고난의 길 끝에 찾아온 그 사랑을 일러 도종환 시인은
‘인간에게 늘 찾아오는 가장 절실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라 한다.
아픔은 머물다 가게 마련이고 그 아픈 소망이 아니라면
사랑도, 삶도, 시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백이 필요한 모든 이들,
간절한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소리 없이 잦아드는
세우(細雨) 같은 시의 숲을 거닐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