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甘冥堂 2009. 12. 12. 21:56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뜩선뜩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 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을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지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구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안 도현님의 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