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抄)

甘冥堂 2012. 3. 13. 08:06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抄) / 류시화

 

◐희랍의 철학자 제논이 상인이었던 시절. 어느 날 제논이 화가 나서 노예의 뺨을 때리자 노예는 평온한 목소리로 제논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 순간에 주인님에게 뺨을 맞도록 되어 있었고, 주인님은 또 제 뺨을 때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두 사람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충실히 제 역할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제논은 훗날 스토아학파의 대철학자가 되었는데, 이 노예에게 영향을 받은 듯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흔들림 없는 현실수용’이 그의 주된 사상이었다.

 

한편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세계를 소유하더라도 당신은 불행할 것이다.”

 

◐세 가지 만트라

첫째,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는 말라. 그러면 누구도 당신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 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임을 잊지 말게. 그대만이 그대를 구속할 수 있고 또 그대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유를 찾는 거야. 그대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게.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이야. 먼저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결코 어떤 것으로 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내 잘못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내 잘못을 갖고 자신까지도 잘못된 감정에 휘말리는 군요. 그건 어리석은 일 아닌가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보다 더 나쁜 건 감정에 휘말려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우리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서둘러 어딘가로 가려고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버스는 떠날 시간이 되면 정확히 떠날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한다 해도 신이 정해 놓은 순서를 뒤바꿀 순 없습니다.

여기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마구 화를 내든지,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을 평화롭게 갖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왜 어리석게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쪽을 택하겠습니까?“

 

◐로마의 대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라. 그때 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에픽테투스는 원래 노예였다고 한다. 그의 주인은 늘 그를 학대했는데, 어느 날 주인이 심심풀이로 에픽테투스의 다리를 비틀기 시작했다. 에픽테투스는 조용히 말했다.

“계속 그렇게 비틀면 제 다리가 부러집니다.”

주인은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계속해서 다리를 비틀었고, 마침내 다리가 부러졌다. 그러자 에픽테투스은 평온하게 주인을 향해 말했다고 한다.

“거 보십시오. 부러지지 않았습니까.?”

 

이 지구상에 동식물 중에서 미루는 것’을 발명한 것은 인간뿐이다. 어떤 나무도, 동물도 미루지 않는다. 인간만이 미룬다.

폴란드의 한 유대인 마을에서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성지순례가 꿈이었으나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었다.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으면..”

“신고 갈 구두가 없어서..”

“멋진 노래를 부르며 가야하는데, 기타 줄이 끊어져서..“

그러던 중 독일군이 쳐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발가벗겨진 채 가스실로 향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미 때는 늦었어!”

 

어떤 사나이가 내 쪽으로 오더니 내 배낭을 뒤져 화장지를 둘둘 말아 가져가는 것이었다. 내 물건인데 왜 함부로 가져가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그 인도 남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게 왜 네 꺼냐? 네가 잠시 갖고 있는 것이지.”

 

38시간이나 가야하는 장거리 버스에서 세 명이 앉는 자리에 7명이 껴 앉는 것이었다. 버스 좌석표를 꺼내 보여주며 여기는 내 자린데 당신들은 다른 자리로 가시오. 그러자 평범한 한 남자가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넌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 자리를 네 자리라고 주장하는가? 이 자린 네가 잠시 앉았다가 떠날 자리 아닌가? 넌 영원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인가?”

 

수공예품 파는 청년이 “1천 루피”하고 터무니없는 값을 불렀다. 실랑이 끝에 70루피에 샀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아 유 해피?” 물건을 그렇게 싸게 사서 넌 행복한가? 행복하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그리고 그 행복은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그런 뜻이었다. 그럴 왜 묻냐 하니, 그가 말했다. “당신이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하다. 하지만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문제다.” 인도인 청년은 말을 마치고 나를 똑 바로 쳐다보았다.

 

늙은 여인숙 주인은 낮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면 묻곤 했다. “오늘은 무얼 배웠소?”

뭘 구경 했소?가 아니라 항상 뭘 배웠소? 그렇게 물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오늘은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그 대답을 무척 신기해하며, 심부름하는 아이까지 불러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손님이 오늘,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것을 배웠다는구나.” 그러면 아이도 덩달아 “그래요? 그런 걸 배웠대요?”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다음날 또 물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오늘은 인도에 거지가 많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인도에 쓸데없는 걸 묻는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오늘은 무얼 배웠소?” 며칠을 계속 묻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내방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주인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저 손님이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는 구나.”

그렇게 일주일을 지났을 때는 여인숙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뭘 배웠지?”

 

여인숙 맞은편 골목 음료수 가게 주인이 물었다. “나마스카, 오늘은 어딜 갑니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서 하루 일정을 설명하곤 했다. “거 좋은 생각이오. 역시 여행을 제대로 하는 군요” 이튿날 또 만났다. 또 설명해 주었다. “대단히 훌륭하십니다. 역시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서 다르군요”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이렇게 묻고 대답했다.

닷새가 지나고, 그 다음날 또다시 골목에서 그 가게주인과 마주쳤다. “나마스카, 오늘은 또 어딜 갈 겁니까?” 나는 입술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너무 돌아다녀서 입술이 다 부르텄어요. 이젠 볼만한 다 보았으니 오늘은 그냥 인도문 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구경할래요.” 그러자 가게 주인이 말했다. “이제야 정말로 여행하는 법을 터득했군요. 좋습니다. 나도 함께 갑시다.”

 

그렇게 해서 그날 나는 그 가게 주인과 저녁때까지 해변가에 걸터앉아 행인들을 구경했다.

이튿날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는 내게 그 가게 주인이 말했다. “어디로 가든지 너무 자신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 마시오. 한 장소에 앉아서도 많은걸 볼 수 있으니까요. 좋은 여행이 되길 빌겠소. 그럼 잘 가시오. 나마스카!”

나마스카는 인도인들의 인사말로’ 당신속의 신에게 절을 한다.‘ 는 뜻이다.

 

인도의 거지들은 돈을 줘도 절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선행을 베풂으로써 자신의 악업을 씻었으니,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이 거지들의 관점이다. 그리고 가난은 극복해야할 불행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업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떠나지만 1년도 안되어 다시 찾게 되는 나라!

자신과 다른 이들을 개선하고자 나라를 떠나는 자는 철학자지만, 호기심이라 불리는 無目의 충동에 의해 이 나라 저 나라를 찾는 자는 방랑자에 불과하다고 고울드는 말했다.

나는 그런 방랑자가 되고자 노력했다. 인더스강 가에서 탁발승들이 오네스크리토스에게 반문했듯이. ‘타인이 누구인가를 묻기 전에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반문해보는 장소가 나에게는 다름 아닌 인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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