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과연 孔子는 고대사를 왜곡했나?

甘冥堂 2015. 12. 29. 12:55

孔子의 고대사 왜곡1

 

은허의 발굴과 동이족

 

1899. 산동성 안양현에 위치한 은허의 발굴.

갑골문-고대 문헌상에만 존재하던 나라 은 분명히 실재했었고

출토된 수천 개의 人骨-해골로 본 은허의 주인공들은 천만뜻밖에도 한족이 아닌 동이족이었다.

 

漢字- 안호상이 문교부장관 재직시절 한글전용이냐, 한문혼용이냐 시끄러울 때 중국의 대문호 임어당을 만났다.

임 선생, 당신네 중국인들이 한자를 만들어 나를 골치 아프게 한다.”

임어당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한자는 당신네 한국인들의 조상인 동이족이 만든 것인데 아직도 그걸 모른단 말이오?”

 

한자의 기원은 한족이 아닌 동이족- 근거는 은허의 발굴, 즉 고고학에서 찾고 있다.

은허의 묘는 석관묘였다. 석관묘는 동이족의 묘, 한족은 목관묘가 대표적 장묘방식이다.

BC1500년경 은나라를 건국하여 500년간 이어지다, 주나라에게 멸망당하자 자신들의 고향인 동북쪽으로 되돌아갔다는

동이의 건국설은 지금에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공자의 역사왜곡

 

공자는 본래 은나라 유민의 후예다

공자가 은나라를 한족이 아닌 동이족의 나라로 보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두 마디의 고백을 보면 그가 . 사이에서 겪었던 정체성의 고뇌를 짐작할 수 있다.

 

予始殷人也나는 본래 은나라 사람이다.2

吾從周나는 주나라를 따르련다.3

 

무왕의 아버지 문왕을 최고의 군자로 보고 주나라를 좋아했던 공자에게 한족의 나라 나라 보다

이민족의 나라 나라가 500년이나 앞서 건국되었다는 사실에 당혹했다.

나라의 창건을 하늘의 뜻으로 본 공자는 국가의 권위와 정당성을 오래된 것에서 찾았는데,

대륙에 최초로 만들어진 나라가 동이족이라는 사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공자는 를 같은 종족으로 합치는 길을 택해

동이족의 나라 나라와 혈통이 같은 나라, 즉 한족의 나라로 둔갑시켰다.

 

그가 편찬한 <서경>華夏蠻貊 罔不率俾,4

주나라 문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니 한족 동이족 할 것 없이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라고 기록해 버렸다.

비유하자면 왜가 조선을 치니 왜인 조선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기뻐하며 따랐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니,

과연 왜곡의 정점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또 이전까지 아무도 손대지 않은 고대사를 자의적으로 편집하여 <서경><춘추>등 역사서를 남겼다.

그는 확고한 자기의 시각에 따라 사건을 배열하거나 만들어내기조차 했다5.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을 무한 존경하면서도 스승의 역사기록을 믿지 않았다.

 

子貢은 은나라 주왕이 그리 폭군이 아니었던 듯하다고 했으며6

孟子<書經>을 믿느니 차라리 없음만 못하다고 공자의 역사 왜곡을 비난했다.7

 

공자님 제자들 조차도 믿지 않는 역사서를 후대의 우리들이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공자님의 말 몇마디로 그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전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논어 술이편 1)

공자는 <詩><書>를 다듬고 禮 樂을 정하였으며 <周易>을 찬술하고 <春秋>를 편수하여 모두 선왕의 옛것을 전술하셨고

일찍이 창작한 것이 있지 않았다고 주희가 주석을 달았다.

 

다만 전술했을 뿐 창작하지 않았다고 하셨으니,

그것으로 미루어 고대사 왜곡이라는 엄청난 누명(?)을 씌우기가 저어되기도 한다.

  1. 김진명의 대한민국7대 미스터리에 실린 글중에서 발췌한 것임. [본문으로]
  2. 공자 세가’에 따르면 공자가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제자 子貢에게 이렇게 말했다.“하夏나라 사람은 동쪽 계단에 빈소를 차렸고, 주周나라 사람은 서쪽 계단에 빈소를 차렸며, 은殷나라 사람은 양쪽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렸다. 지난밤에 나는 꿈에서 양쪽의 기둥 사이에 앉아 제사를 받았다. 나는 은殷나라 사람에서 비롯되었다(予始殷人也 여시은인야).향년(享年) 일흔 셋(73세)에 세상을 떠난 공자의 유언은 ‘나는 은殷나라 사람의 후예(予始殷人也 여시은인야).’라는 것이다. [본문으로]
  3.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공자 가라사대 주나라에서 2대(하나라와 은나라)를 거울삼아 살펴보니 성대한 문채가 나는지라.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노라. 논어 제3 八佾(팔일)편 14장 [본문으로]
  4. 공자의 書經 무성편(武成篇)予小子 旣獲仁人 나 소자는 이미 어진 사람을 얻고 敢祗承上宰 以遏亂略 상제를 공경히 받들어서 어지러운 꾀를 막으니 華夏蠻貊 罔不率俾 화하만맥에 따르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나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태상공 여상을 앞세워 주나라 선제의 제사를 충실히 모셔 은나라 군사가 펼치는 온갖 계략을 다 막아..(은나라 주왕을 멸하니)화하[한족]와 남만,맥족[동이] 모두 기뻐하며 나 주나라 무왕을 따랐다. [본문으로]
  5. 盡信書則不如無書에 대해 程子가 주해하기를 일을 기재한 내용에는 혹 지나치게 칭하여 그 실제보다 넘은 것이 있으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그 義를 알 뿐이다. [본문으로]
  6. 論語 子張 第19장 20.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자공이 말했다. 주왕의 불선이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본문으로]
  7. 孟子盡心章句下3. 孟子曰 盡信書則不如無書 서경의 내용을 모두 믿는다면 서경이 없는 것만 못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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