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詩 100

懷澠池寄子瞻兄

甘冥堂 2018. 4. 1. 17:24

051.懷澠池寄子瞻兄

蘇轍


민지에서 소식 형님을 생각하며 부치다.

 

相攜話別鄭原上 (상휴화별정원상) 서로 손 맞잡고 鄭州 들판에서 이별하며

共道長途怕雪泥 (공도장도파설니) 먼 길에 눈 진창이 걱정된다 함께 말했지요.

歸騎還尋大梁陌 (귀기환심대양맥) 돌아올 때 말 타고 大梁 길을 다시 찾았으나

行人已度古崤西 (행인이도고효서) 가는 이는 이미 고효 서쪽으로 떠난 뒤겠지요.


曾爲縣吏民知否 (증위현리민지부) 일찍이 현리였음을 백성들은 알아볼까?

舊宿僧房壁共題 (구숙승방벽공제) 옛날 묵었던 승방 벽에 함께 시를 썼었지요.

遙想獨游佳味少 (요상독유가미소) 멀리 생각하니 홀로 가는 길 재미는 없겠지만

無方騅馬但鳴嘶 (무방추마단명시) 오추마 다만 울기만 한다고 하지는 마시지요.

 

 

註釋

澠池(면지): 지금의 하남성 면지현(澠池縣) 서쪽

: 이끌 휴 1. 이끌다 2. 끌다. : 산 이름 효, 산 이름 호

騅馬: 추마. 흰 바탕에 흑색짙은 갈색(褐色)짙은 적색 등()의 털이 섞여 난 말

: 울 시. 1. 울다 2. 말이 울다 3. 흐느끼다

 

 

註解

는 형제간의 우애가 깊이 묻어있다.

鳳翔까지 가는 험난한 행로를 걱정하는 아우(소철,蘇轍)의 마음이 이 의 출발점이 된다.

大梁은 춘추전국시대 의 수도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북송의 수도 開封이기도 하였다.

崤山澠池縣에 걸쳐 있는 산으로, 험준하여 대대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澠池鄭州鳳翔 사이에 있는 현이다.

두 지명은 형제간의 물리적 거리를 나타내며, (蘇軾)의 험난한 여정을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난다.

 

蘇轍의 술회에 의하면, 4년 전인 嘉祐 2(1057) 主簿에 제수되었으나, 제수된 직후에 진사과에 합격하여 부임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보다 1년 전에는 과거를 보러 開封으로 가던 도중에 澠池에 있는, 奉閑이라는 노승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형제가 함께 벽에 를 쓴 추억을 회상하였다.

 

형이 崤山 근처에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 것은 澠池와의 인연과 수년 전의 추억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아우는 형에게함께 올 때는 지치고 힘들었어도 추억은 있었으나,

혼자 갈 때는 재미없는 길이 될지언정 조심해서 잘 가시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동생의 시를 받은 소식은 화운시를 지어 보냈다.

세상살이 어찌 될지 알 수 있는가?(人生到處知何似, 인생도처지하사)’라는 반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더구나 소식은 동생의 雪泥를 받아와서 雪泥鴻爪라는 비유를 창작해 낸 것 같다.

철학이 있는 명사들이 지어낸 단어가 경탄스럽다.

[출처] 면지를 회상하며 형님(蘇軾)|작성자 홍곡

 

 

蘇轍: (1039~ 1112) 북송 미주(眉州) 미산(眉山) 사람. 자는 자유(子由) 또는 동숙(同叔)이고, 호는 난성(欒城) 또는 영빈유로(潁濱遺老).

소순(蘇洵)의 아들이고, 소식(蘇軾)의 동생이다.

인종(仁宗) 가우(嘉祐) 2(1057) 19살 때 형 소식과 함께 진사시험에 급제하고 다시 제과(制科)에도 합격했다.

처음에 상주군사추관(商州軍事推官)이 되었다.

신종(神宗) 희녕(熙寧) 연간에 청묘법(靑苗法)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며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하남추관(河南推官)으로 나갔다.

진주교관(陳州敎官)과 응천부첨서판관(應天府簽書判官) 등을 지냈다.

원풍(元豊) 중에 형 소식이 시 때문에 죄를 얻자 감균주염주세(監筠州鹽酒稅)로 폄적되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며, 소순, 소식과 함께 삼소(三蘇)’로 불린다.

시문 외에도 많은 고전의 주석서를 남겼다.

저서에 난성집(欒城集)84권과 난성응조집(欒城應詔集), 춘추집해(春秋集解), 고사(古史)등이 있다.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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