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석 당시삼백수

081. 哀江頭 / 杜甫

甘冥堂 2023. 2. 22. 13:46

081. 哀江頭 / 杜甫

        강가의 슬픔

 

少陵野老吞聲哭 (소릉야로탄성곡) 소릉의 늙은이 울음소리를 삼키고,

春日潛行曲江曲 (춘일잠행곡강곡) 봄날 몰래 곡강의 만곡 진 곳에 갔네.

江頭宫殿鎖千門 (강두궁전쇄천문) 강가의 궁전들 모든 문을 잠갔는데,

細栁新蒲為誰綠 (세류신포위수록) 실버들과 새 부들은 누구를 위해 푸른가.

憶昔霓旌下南苑 (억석예정하남원) 지난 날 기억하니 오색 깃발 남원에 내려오면,

苑中萬物生顔色 (원중만물생안색) 부용원의 만물은 광채를 발했네.

昭陽殿裡第一人 (소양전리제일인) 소양전 안에서 제일가는 미인이,

同輦隨君侍君側 (동연수군시군측) 수레를 같이 타고 따라와 임금 곁에 모셨네.

輦前才人帶弓箭 (연전재인대궁전) 수레 앞 재인들은 활과 화살 차고,

白馬嚼齧黄金勒 (백두작설황금늑) 백마는 황금 재갈 물었네.

翻身向天仰射雲 (번신향천앙사운) 몸을 뒤집어 하늘 우러러 구름을 향해 쏘니,

一箭正墜雙飛翼 (일전정추쌍비익) 화살 하나에 날아가는 새 한 쌍이 떨어지네.

明眸皓齒今何在 (명모호치금하재) 맑은 눈동자 새하얀 이 지금은 어디 있는가,

血汚遊魂歸不得 (혈오유혼귀부득) 피로 더럽혀진 떠도는 혼 돌아오지 못하네.

清渭東流劍閣深 (청위동류검각심) 맑은 위수는 동으로 흐르고 검각은 깊숙한데,

去住彼此無消息 (거주피차무소식) 떠난 자도 남은 자도 피차 소식이 없다.

人生有情淚霑臆 (인생유정누첨억) 사람은 정이 있어 눈물이 가슴을 적시건만,

江水江花豈終極 (강수강화기종극) 강물과 강가의 꽃이야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黄昏胡騎塵滿城 (황혼호기진만성) 해저무니 호말들로 먼지가 성안 가득한데,

欲往城南望城北 (욕왕성남망성북) 성남으로 가려다가 성북을 바라보네.

 

해설

이 시는 至德2(757)에 썼다. 哀江頭(애강두)곡강가를 가리킨다.

少陵野老(소릉야로)두보 자신. 소릉은 지금의 섬서성 장안현 동남쪽에 있고.

두보는 그의 먼 조상들이 두릉에 살았기에 두씨의 본적을 두릉이라 했다.

두보는 일찍이 소릉의 북쪽이요 두릉의 서쪽에 해당되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자칭 少陵野老라고 불렀다.

 

부들 포. 霓旌(예정)오색 깃털로 장식한 깃발. 황제의 행차를 가리킨다.

南苑(남원)곡강 동남방에 위치한 부용원. 곡강 남쪽에 있기 때문에 남원이라 했다.

昭陽殿(소양전)한 나라 成帝 때의 궁전. <漢書. 外戚傳>에 의하면 한나라 성제 때 趙飛燕(조비연)은 황후를 위하여

소양궁에 머물렀다. 그러나 후에 와서 시인들은 소양전은 조비연의 거소라고 생각했다.

第一人제일 총애를 받은 사람. 양귀비를 비유한다. 당나라 시인들은 항상 양귀비를 趙飛燕에 비유했다.

嚼齧(작설)씹다. 입에 물다. ()말 재갈.

翻身(번신)몸을 돌리다.

仰射雲(앙사운)새가 날아다니는 구름을 올려다보며 활을 쏜다는 말이다.

一箭(일전)한 대의 화살. 雙飛翼(쌍비익)쌍으로 나는 새.

明眸皓齒(명모호치)미인. 밝은 눈동자와 하얀 이. 미인을 뜻하는 표현으로 여기서는 양귀비를 가리킨다.

 

血汚遊魂(혈오유혼)피로 물든 떠도는 혼. 양귀비는 안사의 난으로 피난 가던 도중에 병사들의 압력을 받아

마외파에서 목매 죽었다. 清渭(청위)맑은 위수. 위수는 양귀비가 죽은 곳 마외파를 지나가는 바,

양귀비는 위수의 북쪽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劍閣(검각)사천성 검각현 동북쪽의 대검산과 소검산 사이에 잇는 잔도로 섬서지방과 사천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현종은 촉 땅으로 몽진 갈 때 이곳을 지나갔다.

淚霑臆(누첨억) 눈물이 가슴을 적시다. 豈終極(기종극)어찌 끝이 있겠는가.

胡騎(호기)오랑캐 기병. 여기서는 안록산의 철기를 가리킨다.

欲往城南望城北(욕왕성남망성북)두보가 창황에서 반란군을 피해 다닐 때,

방향을 잃어 성남으로 갈까 성북으로 갈까 생각했다.

 

 

해설

현종 천보15(756) 7, 안록산이 장안을 함락시켰다. 肅宗(숙종)靈武(영무)에서 즉위하여 년호를 至德으로 했다.

두보는 영무로 가는 도중 반군에게 붙잡혀 장안으로 돌아 왔다. 그 다음해에 이 시를 썼다.

시의 취지는 양귀비의 죽음을 애도한 것이다. 감히 직언은 못했지만 그해 강가에 잠행했던 것을 빌려 詩題로 삼았다.

 

시는 처음 시작에 곡강에 잠행하여 지난날 이곳의 번성를 회상하고, 지금의 영락함과,

나아가 貴妃 생전의 遊樂(유락)하던 곡강의 번화했던 일들을 추억한다.

 

이 시는 두보가 반란군에 의해 장안네 억류되어 있던 지덕 2(757) 봄에 지은 것이다.

두보는 비록 억류된 상태였으나 장안 안에서는 비교적 활동이 자유로운 편이었음으로 곡강을 찾을 수 있었다.

안사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곡강이 현종과 양귀비가 매년 찾아갈 만큼 아름다운 유람지였으나,

지금은 화려한 연회를 일삼던 양귀비는 유명을 달리했고 현종은 도성 밖을 헤매고 있으니

주인 잃은 곡강 또한 황량하기 그지없다.

 

현종과 양귀비의 불운한 종말을 다룬 작품으로 백거이의 장한가가 있는데,

이 시는 현종과 양귀비의 생사를 초월한 비극적 사랑을 부각 시켰다.

반면, 두보의 애강두는 인간적인 슬픔과 동정을 보이면서도 참혹한 현실을 씁쓸히 목도하며

두 사람이 몰고 온 사회적 파장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천보 연간에 일어난 안사의 난은 사실 양귀비가 화근이 되었으나 두보 자신이 현종을 섬겼기에

대놓고 말할 수도 없었고 또 감히 왜곡하여 숨길 수도 없었으니

이와 같은 창작 비법은 깊이가 매우 적절하다고 淸 黃生杜詩說에서 평했다.

 

'새로운 해석 당시삼백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083. 經魯祭孔子而歎之 / 唐玄宗  (0) 2023.03.02
082. 哀王孫 / 杜甫  (2) 2023.02.27
080. 麗人行 / 杜甫  (1) 2023.02.20
079. 兵車行 / 杜甫  (0) 2023.02.18
078. 將進酒 / 李白  (0) 2023.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