傲霜孤節(오상고절)
서릿발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 외로운 절개
季秋之月百草死 (계추지월백초사):
늦가을에 모든 풀이 시들었는데
庭前甘菊凌霜開 (정전감국능상개):
뜰앞에 감국이 서리를 능멸하고 피었다.
서리 내려 비 맞은 국화.
화려함은 가고
하늘을 향하던 당당함은 사라지고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不是花中偏愛菊 (불시화중편애국):
꽃 중에서 국화만을 유별나게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此花開盡更無花 (차화개진갱무화):
이 꽃이 다 피고 나면 다시 필 꽃이 없으니...
함박눈을 뒤집어 쓰고도
노란 花色은 여전하다.
국화(菊花)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하니,
이는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의 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송(宋)나라 주렴계(周濂溪)는 국화를 꽃 중의 은일(隱逸)이라 하였다.
국화가 다른 꽃들이 영화를 누리는 봄과 여름에 자신을 드러내었다면
늦가을까지 고고한 자태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국화가 늦가을에 피어 된서리와 찬바람을 이기고 온갖 화훼(花卉) 중에 홀로 우뚝한 것은
일찍 이루어져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무릇 만물은 일찍 이루어지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 되곤 하니,
빠르지 않고 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그 기운을 굳게 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서서히 천지의 기운을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억지로 정기(精氣)를 강하게 조장하지 않으면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성취되기 때문이리라.
국화는 이른 봄에 싹이 돋고 초여름에 자라고 초가을에 무성하고
늦가을에 그 고고한 향취(香臭)를 풍기니 이렇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