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사기로부터 배우는 인간학 5 - 楚莊王

甘冥堂 2013. 2. 4. 08:36

 

네 번째 패자 楚莊王

초나라는 장강 유역이다.

초 장왕(?~BC 591)은 재위에 오르자 3년 가까이 정사를 돌보지 아니하고 술과 여자만 즐겼다. 신하들이 와서 바른 소리로 간하면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아 신하들이 두려워했다. 이때 伍擧(오자서의 할아버지)라는 신하가 수수께끼를 가지고 장왕을 찾아갔다. 오거가 수수께끼 문제를 냈다. 不飛不鳴이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새입니다. 무슨 새일까요? 장왕이 답했다. 그 새는 한번 날면 천지를 뒤엎고, 한번 울면 천하를 깜짝 놀라게 할 새다. 오거는 장왕을 뜻을 알았다. 蘇綜이라는 신하는 막 바로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오거와 소종은 나중에 크게 중용되었다. 장왕은 일부러 진정한 인재를 찾기 위해, 그리고 각종 정보를 얻기 위해 거짓 행동을 한 것이었다. 식견이란 학식과 견문이다. 식견을 높이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초장왕은 앞의 제환공, 진문공. 진목공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장왕은 陣나라를 정벌하고 싶었다. 염탐꾼을 보내 陣나라를 염탐하게 했다. 돌아와 보고하기를 陣나라는 성이 높고 강이 깊어 튼튼하며 식량과 물자를 많이 비축하여 공격하면 안 됩니다.라고 보고했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은 바로 결정해 버린다. 그렇다면 공격해 볼만하다. 작은 나라가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하고 물자를 비축했다면, 백성들을 얼마나 혹사시켰을 것이며, 세금을 얼마나 많이 걷었겠느냐. 백성을 심하게 다루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공격하여 정벌해버리고 말았다. 대단한 관찰력이며 식견인 것이다. 한때 陳나라를 멸망시켰으나 명신 신숙시의 간언을 듣고 독립시켜주었다.

 

또 다른 일화. 권력자가 되면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과대망상에 걸리는 것이다. 魏나라에 武侯가 있었다. 그는 조정에서 중신들과 토론이 있는 날이면 항상 우쭐하여 기분이 좋았다. 자기가 확실한 논리를 폈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다. 魏武侯에게는 吳起라는 개혁 전문가가 있었다. 오기는 위무후의 이런 행동을 크게 걱정하며, 얼마 안 가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크게 걱정했다. 무후에게 이렇게 간했다. 초장왕은 조정에서 자기논리를 꺾지 못하는 신하가 있으면 돌아와서 밥을 먹지도 않고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지도자의 자기맹신을 비판한 것이다. 위무후가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는지는 모른다.

 

또 다른 일화. 장왕이 정권을 잡은 후의 일이다. 두월초가 반란을 일으켰다. 두월초는 활을 잘 쏘는 명궁이었다. 전쟁 중에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르게 장왕이 탄 수레에 화살이 박혔다 모두들 크게 놀라마지 않았다. 다시 공격해 들어가려는데 또 다시 화살이 날아와 수레를 맞추는 것이었다. 이를 본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흔들렸다. 밤이 되었다. 장왕은 몰래 장교를 불러 지시했다. 옛날 문왕 때 신비의 화살 3개가 있었는데 두 개를 잃어버렸다. 두월초가 훔쳐간 것이다. 오늘 그 화살 두 개를 나를 향해 쏘았으니 더 이상 신비의 화살은 없다. 이렇게 소문을 내라고 명했다. 이 말을 들은 군사들은 크게 사기가 올라 다음날 전투에서 크게 이겼다.

 

초장왕은 경청을 잘했다. 남의 충고를 잘 들었다. 그는 말을 지나치게 좋아했다.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쳤다. 말에게 배추를 먹이고, 비단옷에 침대에 자게 했다. 말이 그만 비만증에 걸려 죽고 말았다. 장왕은 죽은 말에게 관을 짜주고자 했다. 신하들이 모두 반대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이때 優孟이라는 樂工이 있었다. 그는 사기의 골계열전에도 나오는 배우였다. 우맹이 조정 회의에 뛰어 들어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말이 죽었으니 관뿐만 아니라 곽도 만들어야합니다. 아름답게 치장하고 무덤도 크게 만들고 제후국의 국빈도 장례에 초청해야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보다 말을 더 아낀다는 것을 세상에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말을 그냥 묻어 버렸음은 물론이다. 이런 언로가 막히지 않은, 누구라도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군주가 있는 그런 분위기가 부러운 것이다.

 

초장왕 때인 BC597년에 필성전투에서 승리하여 4강에 들어 會盟이 되었다.

이때 역사상 최대의 스캔들이 있었다.

陣나라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하어숙의 부인은 정나라 여자 夏姬였다. 그들은 결혼하여 아들 하징서를 낳았다. 이 夏姬라는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진나라 관리 두 사람과 바람을 피웠다. 이 관리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군주까지 끌어들였다. 3남자가 놀아났다. 이를 본 하희의 아들 하징서가 주군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들은 초장왕이 개입하여 하징서를 죽였다. 당시 초장왕은 패자로서 주변국의 사건에 개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장왕이 하희를 본 순간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자 신하인 巫臣이 간곡하게 말렸다. 陣나라 문제에 개입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하희를 탐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변질된다. 그러면 대의명분에 어긋난다. 할 수없이 초장왕이 포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장왕의 아들인 側이 또 하희를 탐냈다. 그러자 무신이 말했다. 저 여자는 요물이다. 몇 명의 남자를 죽게 만들었지 않았느냐고 설득해 태자도 포기하게 했다.

장왕은 이 여자를 상처한 양노라는 신하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랬더니 양노의 아들과도 바람이 났다. 이에 장왕은 그녀를 원래의 鄭나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때 마침 초나라와 제나라가 전쟁 중이었다. 초장왕은 화해사절을 물색하니 무신이 자원했다. 그러나 무신은 화해사절로 가지 않고 정나라로 가서 하희를 데리고 살았다. BC584년의 일이다. 이 일의 시작이 BC597년 무렵이었으니 무려 장장 15년의 세월을 기다린 것이다. 무신의 기다림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무신의 나이 50세가 넘었을 때인데, 당시 나이로 거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한 여인을 위해 몸을 바쳐 사모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식을 들은 초장왕은 무신의 일가를 몰살시켰다. 무신은 오나라로 도망갔다. 오나라에게 초나라의 각종 비밀을 제공하고, 오나라로 하여금 초를 공격하게 했다.

 

중국 황제의 취미는 유별난 바 있다. 제왕의 사치는 자칫 망국의 길로 빠지는 것이다.

청나라의 서태후는 청일전쟁으로 나라가 위태로운 전쟁 중에 마침 자신의 생일잔치를 해야 했다. 특사를 일본에 보내 화의를 요청했다. 치욕적인 시노모세끼 조약이 그것이다. 생일잔치 때문에 나라를 반식민지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목욕 한 번하는데 200장의 수건을 사용하였다고도 한다.

明나라 11대 황제 周厚照는 사나운 짐승을 우리에 집어넣고 자신이 직접 우리 속에 들어가 짐승들과 싸웠다. 또 환관을 시켜 술집을 빌려 자신이 술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결국에 알콜 중독으로 죽었다.

명나라 16대 황제 周由校는 목수로 유명했다. 그가 만든 탁자는 당시 최고의 명품이었다. 움직이는 인형도 만들고, 궁궐도 설계했다. 축구에 미쳐 축구장도 설계했다. 정치는 환관들에게 맡겨버렸던 것이다.

 

다시 초나라로 돌아와서. 장왕이 죽고 영왕이 재위에 올랐다. 영왕은 소위 삼위에 탐닉했다. 여자의 허리, 가슴. 엉덩이 사이즈가 똑 같은 여자를 너무 좋아했다. 그것도 젓가락같이 마른 여자를 탐닉했다. 모든 궁중의 여자들이 총체적 다이어트를 하였으며 지나친 다이어트로 굶어죽는 사람까지 생겼다. 배가 나온 신하들도 고통을 받았다.

 

 

<이 글은 EBS 김영수의 사기 강연을 나름대로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