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사기에서 배우는 인간학 7- 자객

甘冥堂 2013. 2. 7. 08:14

 

5명의 자객이 있다.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荊軻가 있고, 오나라 僚王를 암살한 전제가 있다. 專諸는 오자서가 발탁하여 공자 광에게 천거한 인물이다. 공자 광이 말한다. 내가 왕이 되어야겠다. 즉 요왕을 암살하라는 말이었다. 전제는 요가 무었을 좋아하는지 조사했다. 요왕은 생선 요리를 무척 좋아했다. 이 소리를 들은 전제는 太湖 지방으로 가서 수개월에 걸쳐 생선 요리방법을 배웠다. 마침 요의 군대가 출정을 가게 되어 궁성이 비어있을 때다. 공자 광이 요왕을 초대했다. 좋은 물고기가 있다고. 요왕이 초대에 응하려고 문을 나서자 요왕의 어머니가 말렸다. 갑옷 3벌을 껴입고, 삼엄한 경계 속에 초대에 응했다. 왕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벌벌 기어오게 하였다. 專諸는 그가 만든 생선 요리에 공자 광으로부터 받은 보검을 물고기 뱃속에 감추어 들고 벌벌 기어 왕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요리를 올리면서 물고기 뱃속에 든 칼을 꺼내 僚王을 찔러 죽였다.

魚腹藏劒이란 고사성어가 생긴 것이다. 물론 전제도 호위병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또 한사람의 자객, 한나라 俠累(협루)를 살해한 攝政이 있다. 그는 협루를 암살한 후에 자기 얼굴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들어낸 후에 죽었다. 자기의 신원이 파악되어 어머니와 누이가 피해를 당할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누이 섭영이, 죽은 그의 시체를 알아보고 말했다. 엄중자가 내 동생을 알아주었구나. 하고는 그의 신분을 떳떳이 밝히고 함께 자결하였다.

 

曺沫은 盧나라 사람으로 가장 큰 성과를 올린 자객이었다. 제나라 환공을 위협해 제나라에 빼앗긴 노나라 땅을 되찾았다. 비수로 제환공을 위협하여 땅을 되찾으며 말했다. 10步 안에 있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제환공이 억울하여 땅을 돌려주지 않으려하자 관중이 설득했다. 군주가 한 말이니 약속대로 돌려주십시오.

 

가장 슬픈 자객으로 要離가 있다. 그도 오자서가 발탁한 인물이다. 오나라 공자 광이 요왕을 암살하고 왕이 되어 합려라 하였다. 합려에게는 커다란 고민이 있었다. 암살하여 죽인 요왕에게 慶忌라는 아들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는 위나라로 도망가서 호시탐탐 오나라를 노리고 있었다. 당시의 세상의 여론도 요왕을 암살하고 왕이 된 합려를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였으니 합려의 고민이 컸을 수밖에 없다. 이때 요리가 등장한다. 요리는 마르고 조그마하고 볼품없는 용모였다. 합려는 실망했다. 오자서와 要離는 비밀리에 계획을 세웠다.

 

궁중에서 검술 연습을 하다가 합려의 손등을 살짝 다치게 했다. 이에 화가 난 합려가 요리의 한쪽 팔을 잘라버렸다. 요리는 분개하여 위나라에 망명중인 慶忌를 찾아가게 된다. 이에 더욱 화가 난 합려는 요리의 가족을 모두 죽여, 불에 태워 거리에 뿌렸다. 요리를 맞은 경기는 要離와 침식을 같이 할 정도로 대우했다. 요리가 경기를 부추겼다. 오왕 합려가 포악하니 당신이 제거하십시오. 이윽고 경기가 오를 정벌하러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세찬 바람이 크게 불었다. 이 순간, 요리는 강력한 뒷바람을 타고 몸을 날려 경기를 깊숙이 찔렀다. 천하장사인 경기가 바로 한 손으로 요리를 잡아 강물에 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요리가 죽을 지경이 되자 뱃전에 내 팽개쳤다. 부하들이 요리를 죽이려하였으나, 경기가 제지했다. "용기 있는 사람이다. 살려 주어라". 경기는 등에 박힌 칼을 뽑자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그만 죽고 말았다.

 

오왕 합려가 要離에게 상을 주려하자 요리가 말했다. 왕의 총애를 받기위해 처자식을 죽게 하였고, 前왕의 아들을 죽였으며, 지혜롭지 못했는데 무슨 낯으로 상을 받겠소 하고는 그만 자결해 버리고 말았다. 사나이다운 기개가 아닐 수 없다.

 

오자서는 BC 522년 오나라로 망명하여. BC 510년 월나라를 공격하였고, BC 506년. 초나라를 점령하였다. 망명 16년 만의 일이다. 오자서는 무덤 속에 있는 초 평왕의 시체를 꺼내어 발로 가슴을 밟고 채찍으로 300번의 매를 쳤다. 窟墓鞭屍의 고사다. 이때 오자서와 함께 시체에 매질했던 백비가 있었다. 백비의 할아버지 백주리도 초나라 영왕에게 살해당했던 것이다. 그 복수를 한 것이다. 오자서의 친구가 비난했다. 이미 죽은 시체에 너무 심하지 않은가?. 오자서가 말했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 여기에서 日暮途遠이란 말이 생겼다.

 

BC 522년부터 BC 473년까지 오자서의 50년 복수의 세월이 그대로 오월춘추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자서도 자기가 천거하였던 백비에 의해 죽게 되자 이렇게 말했다. 내 두 눈을 뽑아 오나라 동문 위에 걸어 두어,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라. 하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과연 오나라도 BC 473년 망하고야 말았다.

 

 

 

<이 글은 EBS 김영수의 사기 강연을 나름대로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