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史記에서 배우는 인간학 6 - 伍子胥

甘冥堂 2013. 2. 4. 08:45

 

사기에서 배우는 인간학 -伍子胥의 등장

 

남이 가진 부가 나의 10배를 넘으면 그 사람을 험담하고, 100배가 넘으면 그를 두려워하고, 천배가 넘으면 그를 위해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넘으면 그의 노예가 된다.

초나라 영왕의 뒤를 이어 평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 평왕의 이름은 미기질인데 그는 영왕을 죽이고, 둘째 형을 왕으로 내세우고 큰형은 재상으로 삼고, 자신은 군권을 잡은 후에 나중에 두 형제를 모함하여 죽게 하고는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평왕 자신도 떳떳하게 왕위를 오른 사람이 아닌 것이다.

평왕에게는 비무기(극)이란 간신이 있었다. 평왕의 아들이 나이가 들어, 진나라 여자를 데려와 태자 건과 혼인을 시키려했다. 그러나 이 진나라 여인을 보고 난 비무극은 마음을 바꾸어 그 여인을 태자 건이 아닌 그 아버지 평왕에게 시집을 보내고야 말았다. 그 여인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며느리감을 시아버지가 차지한 것이다. 비무기는 진나라 여자 일로 인하여 평왕에게 환심을 산 후에 태자 建을 변방으로 보내 버렸다. 비무기가 교묘하게 왕의 심리를 아용하여 껄끄러운 두 사람의 관계를 이간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왕는 이 진나라 여인을 끔찍히 총애하여 아들軫을 낳게 하였다. 奪嫡(탈적)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때 태자 건의 스승은 伍奢였고 그 少傅가 費無忌였다. 비무기는 오사를 계속 모함하여 결국은 오사를 하옥시켰다. 이도 부족하여 오사의 두 아들인 伍尙과 오자서도 한꺼번에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려고 했다. 오사를 겁박하여 자식들을 오게 하였으나 큰아들인 오상은 올 것이나 작은아들 오자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오사는 말한다. 결국 오상만 왔다. 부자는 바로 처형당하고야 말았다. 비무기와 오자서 집안의 악연이 시작된 것이다. 오자서는 망명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평왕은 그 아들 태자 建도 죽이려고 하였다. 처음에는 건을 외지로 보내면서 奮揚이라는 신하를 딸려 보내며 내 아들을 내 몸처럼 대하라고 부탁을 하였다. 아들의 여자를 빼앗은 일말의 양심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비무기의 간언을 좆아 태자 건을 죽이라고 분양에게 명령하였다. 분양은 이 사실을 건에게 미리 알려주고 도망치게 하였다. 왕의 명령을 어긴 분양이 잡혀와 평왕에게 말했다. 왕께서 태자를 내 몸처럼 돌보라 하지 않았느냐. 나는 그 말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하니, 할 수 없이 그를 살려둘 수밖에 없었다.

 

오자서는 태자 建과 함께 망명길에 올랐다. 오자서의 도망 경로를 보면, 초나라에서 송으로, 송에서 정으로, 정에서 진으로 진에서 다시 정으로, 다시 정에서 오나라로 망명길을 걸었다. 이를 오자서의 出關이라 한다. 이 와중에 鄭나라에서 태자 건은 그만 살해를 당하게 된다.

 

오자서의 망명길에는 이러한 일화가 있다.

첫 번째.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진 가운데, 어떻게 하면 발각되지 않고 국경을 넘을까 밤새 고민하다보니 머리털이 그만 하얗게 세어버렸다. 별도의 변장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두 번째는 국경을 넘으려 할 때 관문의 병사가 오자서를 알아보고 붙잡았다. 이때 오자서는 기지를 발휘했다. 내가 왜 초나라에서 수배를 당했는지 아는가? 초나라의 보배를 훔쳤기 때문이다. 네가 만일 나를 잡아 넘긴다면, 그 보석을 네가 다 가져갔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면 너는 바로 죽을 거야. 이 말을 들은 병사는 제풀에 겁이나 오자서를 풀어주고 말았다.

또 한번은 어부와 어부의 딸이 그를 보호해 주었다. 오자서가 떠난 후, 어부와 그의 딸은 만약에 관가에서 알게 되어 붙잡혀 고문이라도 당하게 되면 실토를 할 게 뻔하니, 그리되면 오자서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자결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은 백성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었다.

 

BC 529년 오자서는 드디어 오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나라의 시조는 오태백이고 오태백의 19대가 수몽이다. 수몽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제번, 여채, 이말, 계자찰이었다. 수몽이 막내 아들 계자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하였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으니 큰아들 제번이 왕을 맡게 되었다. 제번에 이어 여채가, 여채에 이어 셋째인 이말에게까지 왕위가 이어졌다. 이말이 다시 계자찰에게 양위하려하였으나 계자찰이 다시 사양을 하니 왕위는 셋째인 이말의 아들 僚에게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큰아들 제번의 아들 光이 불만을 품게 되었다. 계자찰이 왕위를 계승하지 않으면 당연히 큰아들 嫡系인 자기가 맡아야 되는 게 당연한데 어째서 이말의 아들 僚가 왕위를 계승하느냐? 光은 억울해 마지않았다. 이 과정에 오자서가 등장을 하는 것이다.

 

오자서가 오나라에 들어온 후 그는 거지 행색을 하고 저자거리에서 미치광이로 분장하고 피리와 노래를 부르며 문전걸식을 하였다. 그러나 주머니의 송곳처럼 그 비범한 모습들이 소문에 소문을 타고 공자 光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오자서를 만나본 光은 바로 오자서를 맞아들였다. 이어 왕인 僚에게 소개 시켰다. 오자서는 하루빨리 초나라에 원수를 갚고 싶어 했다. 공자 光을 전쟁터로 내보내라고 료를 충동 했다. 초나라에 개인적 원한이 많은 것을 알게 된 료는 오자서를 멀리하기 시작하여, 결국 오자서는 시골로 운둔하게 된다.

오자서는 은둔하기 전 專諸라는 사람을 光에게 소개시킨다. 전제가 시내에서 깡패들과 싸우려는 중 “너, 이놈!” 하는 소리에 그만 질겁을 하고 무릎을 꿇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전제는 효자였다. 전제는 후에 요왕을 암살하고 공자 光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한 사람으로 사기 刺客列傳에 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런 전제 뒤에 오자서가 있었던 것이다.

 

공자 光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춘추오패의 마지막 패자인 오나라 합려다.

그리고 闔閭의 아들 夫差와 월나라 윤상의 아들 句踐이 臥薪嘗膽의 주인공이다.

중국인의 恩怨觀은 매우 끈질긴 것이다. 중국인들은 좀체로 싸우지 않는다. 그 이유가 바로 은원관 때문이다. 한번 싸우면 그 원한은 대를 물려가며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자서의 복수의 일념과 오 월간의 싸움이,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50년간의 오월춘추 시대다. 이 시대에 刺客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자객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분명한 뜻을 가지고 일을 맡긴 사람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그들 중 한 사람인 예양이 말했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