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寒食》
王禹稱
今年寒食在商山 (금년한식재상산) 금년 한식을 상산에서 맞으니
山里風光亦可憐 (산리풍광역가련) 산마을 풍경 또한 애틋하다.
稚子就花拈蛺蝶 (치자취화점협렵) 어린아이 꽃에 앉은 나비를 잡으려 하고
人家依樹系秋千 (인가의수계천추) 여염집 큰 나무에는 그네가 매어있다.
郊原曉綠初經雨 (교원효록초경우) 새벽 내린 비로 교외 벌판 푸르르고
巷陌春陰乍禁煙 (항맥춘음사금연) 봄 그늘 골목에 잠시 밥 짓는 연기 사라졌다.
副使官閑莫惆悵 (부사관한막추창) 부사 관직이 한가하다 낙담하지 마라.
酒錢猶有撰碑錢 (주전유유찬비전) 비문 지어 번 돈, 술값 할 게 아직 남아있으니.
註釋
拈: 집을 염. 蛺蝶: 협접. 나비. 나비목의 곤충(昆蟲) 가운데 낮에 활동하는 무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
鑑賞
한식이라 밥을 짓지 않아 연기가 끊긴 마을의 산그늘. 쓸쓸한 시절엔 아름다움이 더욱 사무치는 법인가.
신세 한탄하지 말고 얼굴 좀 펴게. 어제 동네사람 비석 세우는데 글을 써주고 받은 돈으로 술 한 잔 하면 되지 않는가.
한식인지라 더운밥은 못 먹지만, 대신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술을 먹여주니 고마운 일 아닌가.
▶王禹稱(왕우칭) (954-1001) 은 987년 8월 북송 태종 황제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가서 중서성(中書省) 소시(召詩)에 응시했다.
황제가 친히 지은「눈이 내린 것을 기뻐하며(喜雪)」라는 시에 응제시(應製詩)를 지었는데 태종(太宗)은 크게 기뻐하였다.
왕우칭에게 좌습유(左拾遺) 직사관(直史官)의 벼슬을 제수하면서 붉은 비단 관복을 하사했는데
관례에 없던 무소뿔 허리띠까지 하사할 정도였다.
다음해(988년) 태종은 신하들에게 북송(北宋)의 위급함을 구할 수 있는 계책을 직접 간언하도록 권하였는데
왕우칭 역시 간관(諫官)의 지위에 있었으므로 주의문(奏議文)을 자주 올렸다.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