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詩 100

戱答元珍

甘冥堂 2018. 3. 13. 07:25

020.戱答元珍

歐陽修

 

春風疑不到天涯 (춘풍의부도천애) 봄바람은 아직 하늘가에 이르지 않았는지

二月山城未見花 (이월산성미견화) 이월의 산성에는 꽃이 보이지 않네.

殘雪壓枝猶有桔 (잔설염지유유길) 잔설이 가지를 눌러도 아직 귤이 달려있고

凍雷驚筍欲抽芽 (동뢰경순욕추아) 겨울 우레에 죽순이 놀라 싹이 트려한다.


夜聞歸雁生鄕思 (야문귀안생향사) 밤에 기러기 돌아가는 소리에 고향생각 나는데

病入新年感物華 (병입신년감물화) 병이 들어도 새로운 해의 자연 현상을 느낀다.

曾是洛陽花下客 (증시낙양화하객) 일찍이 낙양성 꽃 속의 나그네였거늘

野芳雖晩不須嗟 (야방수만불수차) 들꽃 비록 늦게 핀다 해도 탄식하지 않는다.

 

 

註釋

: 도라지 길. 도라지. ‘()’의 속자.

物華: 물화. 물건(物件)의 빛. 산과 물 따위의 자연계(自然界)의 아름다운 현상.

野芳: 야방. 들에 피는 꽃

 

 

歐陽修(1007 ~ 1072)

길주(吉州) 영풍(永豐) 사람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육일거사(六一居士)이다.

북송(北宋)시대 정치가이자 문학가로 활동했고, 벼슬은 한림학사(翰林學士), 추밀부사(樞密副使),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했다.

시호가 문충(文忠)이라 세인들은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이라고 부른다.

 

그는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소식(蘇軾)과 더불어 천고문장사대가(千古文章四大家)’라고 일컫고,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소식(蘇軾), 소순(蘇洵), 소철(蘇轍), 왕안석(王安石), 증공(曾鞏)과 더불어

당송산문팔대가(唐宋散文八大家)’라 부른다.

그는 일찍이 신당서(新唐書)편수에 참여했고, 신오대사(新五代史)집고록(集古錄)을 편집했다.

저서로 구양문충집(歐陽文忠集)이 있다.

 

그는 또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다

처음 윤수에게 배웠고, 매요신·소순흠 등과 함께 고문을 제창하여 문장은 뜻이 분명하고 실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창작을 통해 종래의 서곤체를 비평함으로써 시문 혁신운동의 기수가 되었다.

그의 시문은 힘이 있으면서도 맑고 신선했으며, 산문은 조화로우면서도 깊이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학에서의 성취도 탁월하여 송기(宋祁, 998~1061)와 함께 신당서를 편찬했고, 그 자신이 신오대사를 편찬하기도 했다.

 

구양수는 형식화되고 번거로워지는 당시 문장을 비판하면서 의미가 분명하고 실제적인 고문 사용을 주장하여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비교적 깨어있고 청렴한 지식인이었다.[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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