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詩 100

城南感懷呈永叔

甘冥堂 2018. 3. 17. 09:01

026.城南感懷呈永叔

蘇舜欽

 

春陽泛野動 (춘양범야동) 봄볕이 들판에 퍼져 생동하는데

春陰與天低 (춘음여천저) 봄 그늘은 하늘에 맞닿아 있다.

遠林氣藹藹 (원림기애애) 먼 숲의 기운 희미하고

長道風依依 (장도풍의의) 길게 뻗은 도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듯.

覽物雖暫適 (람물수잠적) 만물을 바라보며 점차 적응하는데

感懷翻然移 (감회번연이) 감회가 불연 듯 일어난다.

所見旣可駭 (소견기가해) 본 바는 이미 놀랄만하고

所聞良可悲 (소문양가비) 들은 바는 매우 서글프다.

去年水后旱 (거년수후한) 지난해 홍수 후에 가물어

田畝不及(전묘불급리) 전답을 갈지도 못했다.

冬溫晩得雪 (동온만득설) 겨울이 따뜻하고 늦게 눈이 와

宿麥生者稀 (술백생자희) 지난해 뿌린 보리 싹 드문드문 났다.

前去固無望 (전거고무망) 지난 것은 진실로 희망이 없었고

卽日已苦飢 (즉일이고기) 지금 당장도 이미 고통스럽게 굶주리네.

老稚滿田野 (노치만전야) 노인네 어린아이 들판에 가득히 모여

斫掘尋鳧茈 (작굴심부자) 베고 파면서 올방개를 찾네.

此物近亦盡 (차물근역진) 이런 물건들 가까이에 또한 없어

卷耳共所資 (권이공소자) 도꼬마리(먹을 수 있는 풀)에 의지하고 있네.

昔云能驅風 (석운능구풍) 옛말에 (이것들은)풍사를 쫒을 수 있고

充腹理不疑 (충복리불의) 배를 채웠다는 것 의심할 바 없는데

今乃有毒厲 (금내유독려) 지금은 독해가 있어

腸胃生瘡痍 (장위생창이) 뱃속에 상처만 생겼다.

十月七八死 (십월칠팔사) 시월에 칠팔 명이 죽어

當路橫其尸 (당로횡기시) 길가에 그 시체가 가로 놓였다.

犬彘咋其骨 (견체색기골) 개돼지가 그 뼈를 씹고

烏鳶啄其皮 (조연탁기피) 까마귀 솔개가 그 가죽을 쫀다.

胡爲殘良民 (호위잔양민) 어찌하여 양민을 해쳐

令此鳥獸肥 (영차조수비) 이 새와 짐승들을 살찌게 하는가

天豈意如此 (천기의여차) 하늘의 뜻은 어찌 이와 같은가

泱蕩莫可知 (앙탕막가지) 그 깊고 광대함을 알 수 없도다

高位厭梁肉 (고위염양육) 높은 사람은 좋은 집과 고기에 싫증이 나서

坐論攙云霓 (좌론참운애) 앉아서 구름 무지개를 뚫는 고담준론을 하네.

豈無富人术 (기무부인술) 어찌 부자들은 아무 기술도 없이

使之長熙熙 (사지장희희) 그들은 오래 화목한가

我今飢伶俜 (아금기영빙) 나는 지금 굶주려 외로운데

憫此復自思 (민차복자사) 이를 다시 생각하니 비참하다

自濟旣不暇 (자제기불가) 스스로 구제하려니 이미 쉴 틈이 없는데

將復奈爾爲 (장복과이위) 장차 다시 너를 어이할 거나

愁憤徒滿胸 (수분도만흉) 근심 분노만 부질없이 마음속에 가득하니

嶸?不能齊 (영굉불능제) 심사가 분하고 험하여 마음이 편안할 수 없네.

 

 

註釋

永叔欧阳修字永叔.

春日阳光和煦原野一派生机四面云霭漠漠与天相连

藹藹: 애애 .(초목(草木))무성(茂盛)한 모양  ②(달빛이)희미(稀微)한 모양  

: 놀랄 해. : 벨 작. : 팔 굴, 뚫을 궐, 서투를 졸. : 오리 부.

斫掘挖掘凫茈: (부자) 올방개. 凫茈fúcí荸荠 (발제)

卷耳一种葡科植物其嫩叶可食依靠

昔云过去说驱风驱除风邪理应按理

 

: 갈 려, 갈 여, 나환자 라. 1. 갈다 2. 괴롭다 3. 힘쓰다瘡痍: 창이. 부스럼. 상처.

: 잠깐 사, 들렐 책, 씹을 색

: 깊을 앙, 구름 일 영 1. 깊다 2. 넓다 a. 구름이 일다(겉으로 부풀거나 위로 솟아오르다) ()

  : 방탕할 탕 1. 방탕하다(放蕩--) 2. 방종하다(放縱--)

: 찌를 참 1. 찌르다 2. 날카롭다. : 무지개 예, 무지개 역

: 차조 출. 차조. 伶俜 [língpīng]: 영빙. 고독하다. 외롭다.

熙熙: (희희) 화목(和睦)한 모양(模樣)

: (rónghóng)가파를 영. 峥嵘山势高峻的样子这里形容心情愁愤难平

 

 

蘇舜欽 (1008~ 1048)

북송 면주(綿州) 염천(鹽泉) 사람. 자는 자미(子美), 호는 창랑옹(滄浪翁)이다. 소순원(蘇舜元)의 동생이다.

인종(仁宗) 경우(景祐) 원년(1034) 진사에 합격했다.

젊어서부터 큰 뜻을 품어 천성(天聖) 중에 학자들이 글을 쓰면서 대우(對偶)에 얽매이는 병폐를 보였는데,

홀로 목수(穆修)와 함께 고문시가(古文詩歌)를 즐겨 지으면서 당시 호걸들과 많이 교유했다.

 

악부(岳父) 두연(杜衍)과 범중엄이 신정(新政)을 주도하자 자주 모함을 받았는데,

옛 지전(紙錢)을 팔아 기악(妓樂)을 불러 빈객과 연회를 열다가 제명되었다.

이후 소주(蘇州)에 은거하면서 창랑정(滄浪亭)을 짓고 시와 술로 시름을 달랬다.

서곤체(西昆體)의 화려한 문풍에 반대하고 고문운동을 제창했다.

풍격은 호방하고 박실(朴實)했다. 나중에 호주장사(湖州長史)로 있다가 죽었다.

저서에 소학사집(蘇學士集)이 있고, 매요신(梅堯臣)과 함께 소매(蘇梅)’로 불렸다.

(중국역대인명사전,이회문화사)

 

 

 


'宋詩 1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暑中雜詠  (0) 2018.03.19
慶州敗  (0) 2018.03.19
畫眉鳥  (0) 2018.03.16
晩泊岳陽  (0) 2018.03.16
啼鳥  (0) 2018.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