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名句經典 217

問君能有幾多愁,恰是一江春水向東流

甘冥堂 2019. 2. 18. 11:20

6.問君能有幾多愁恰是一江春水向東流

당신에게 묻노니, 얼마나 더 그리워해야 되나?

마치 하염없이 동으로 흘러가는 봄날 강물과 같구나

 

虞美人·春花秋月何時了 /李煜 (朝代五代)

 

風回小院庭蕪綠  작은 뜰에 바람 불어 풀들 무성한데

柳眼春相續。     버들 꽃망울이 봄을 이어가네.

憑闌半日獨無言 반나절 난간에 기대어 홀로 말이 없는데

依舊竹聲新月似當年대나무 소리 초승달은 여전히 그때와 같구나

笙歌未散尊前在  술잔 앞에 생황 노랫소리 아직도 아련히 들리는 듯한데

池面冰初解。     연못에 얼음이 비로소 녹기 시작하는구나.

燭明香暗畵樓深  촛불 밝히고 향내 은은한데 화려한 누각에 밤은 깊어가고

萬鬓清霜殘雪思難任서리 같은 백발이 눈 내리듯 하였으니 아, 생각조차 감당하기 어렵구나.

 

春花秋月何時了 꽃 피는 봄과 달뜨는 가을은 언제쯤 끝나리오?

往事知多少。    지나간 세월은 얼마나 되었는지

小樓昨夜又東風 작은 누각에는 어젯밤 또 동풍이 불었는데

故國不堪回首月明中달 밝은 밤에는 차마 고개 돌려 고국을 바라보지 못한다.

雕欄玉砌應猶在      내집은 아직도 여전히 찬란하겠지만

只是朱顔改。          다만 내 얼굴은 주름이 늘었다

問君能有幾多愁     당신에게 묻노니, 얼마나 더 그리워해야 되나?

恰似一江春水向東流(내 그리움은) 마치 하염없이 동으로 흘러가는 봄날 강물과 같구나

    

 

(雕欄 通)

[우미인]은 원래 제목이 아니었으나 이 사의 소재인 초패왕 항우(項羽)의 애첩 우미인(虞美人)에서 이름을 빌어 온 것이다.

이 사는 대략 이욱이 송으로 잡혀온 뒤 3년째 쯤에 지어졌다.

속에는 망국의 회한이 아주 진솔하게 담겨 있는데, 그것 때문에 송 태종의 미움을 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때문에 이 사는 이욱의 마지막 작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李煜 (朝代五代)

미술적 안목과 문학적 재능에다 음악적 감각까지 곁들인 사람이 바로

5대 시대의 남당(南唐) 황제 이욱(李煜, 리위, 937-978)이다.

흔히 이 사람은 남당이 멸망한 뒤에도 송에 볼모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이후주(李後主)로 불린다.

 

이욱은 901년 제위에 올랐으나, 그가 황제가 되었을 때 남당은 이미 멸망해가고 있었고

점차 강성해지는 송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였다.

그렇지만 이런 편안(偏安: 불안한 평화)의 시기에도 황실의 삶은 온갖 호사로 가득했다.

975년 마침내 송군이 금릉(金陵)에 쳐들어오자 그는 송에 맥없이 굴복하고 말았다.

비록 그에게 송의 작위가 봉해지기는 했지만 멸국의 황제는 졸지에 알거지 포로의 신세로 전락된다.

3년 뒤 그는 세상을 뜨게 되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송의 태종(太宗)에 의해 독살되었다고도 한다.

 

비련의 황제 이욱은 궁정에서의 호사스런 생활에 걸맞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시문에 조예가 깊고 서화와 음률에 정통했으며, 그가 지은 사()5대 시대의 으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