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이 크게 취해 자신을 찬미했다.
저만을 위함은 楊朱(양주)와 비슷하고,
남을 같이 사랑하기는 墨翟(묵적)과 같구나.
뒤주가 자주 비기는 顔淵(안연)과 같고,
꼼짝 않고 지내기는 老子와 한가질세.
광달함은 莊子인가 싶고,
참선하기는 釋迦(석가)인 듯하다.
공손치 않기는 柳下惠(유하혜)와 진배없고,
술 마심은 劉伶(유령)과 흡사해라.
밥을 빌어 먹기는 韓信과 비슷하고,
잠을 잘 자기는 陳博(진박)과 같은 것을.
거문고를 연주함은 子桑戶(자상호)와 방불하고,
책을 저술함은 揚雄(양웅)과 한가지라.
스스로를 견주기는 諸葛亮(제갈량)과 비슷하니,
내가 거의 聖人인 게로구나.
다만 키는 曺交(조교)만 못하고,
청렴함은 於陵仲子(오릉중자)에게 양보해야 하니
부끄럽구나! 부끄럽구나! (酬素玩亭夏夜訪友記)
楊朱(양주): 爲我 나 자신을 위해 산다. 이기주의 대명사로 유교사회에서 비난 받았던 인물.
墨翟(묵적): 兼愛. 똑같이 사랑하라. 널리 사랑하고 현인을 받들며 귀신을 잘 삼기고 숙명론을 부정했다.
顔淵(안연): 공자의 애제자. 가난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老子: 無爲를 주장. 내가 무위하니 백성을 저절로 교화되고, 내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자하니 백성은 스스로 소박해진다.
莊子: 사물의 변화는 자유와 초월. 작은 지혜에서 더 큰 지혜를 얻는 것.
釋迦(석가): 석가모니
柳下惠(유하혜):노나라 현자. 三公의 높은 지위로도 그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 사사가 되었다가 세 번 쫒겨났다.
劉伶(유령):서진 시대 시인. 죽림칠현 중 가장 술을 즐겼으며 신장에 140cm로 작았다.
韓信(한신): 한나라 유방의 장수. 젊을 때 무척 가난했다. 항상 칼을 차고 다녔어도 사람들은 그를 비렁뱅이에 무능력자로 취급했다.
陳博(진박):도술이 높기로 이름난 오대(五代) 송(宋)나라 초기 사람으로 별호는 희이(希夷)이다. 진박이 어렸을 때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의 품에 안겨 젖을 먹은 뒤에 도술을 깨달아 무당산(武當山), 화산(華山) 운대관(雲臺觀), 소화(小華) 석실(石室) 등지에서 은거하였는데, 한번 잠들면 100여 일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한다. 《宋史 卷457 陳摶列傳》
子桑戶(자상호):. 춘추 시대 때 사람. 맹자반(孟子反), 자금장(子琴張)과 서로 친했는데, 세 사람이 서로 보며 웃어도 마음에 거슬릴 게 없었다.
孔子가 방외(方外)에 노니는 사람이라 칭송하면서, 자신[공자(孔子)]은 방내(方內)를 노니는 사람이라 말했다.
揚雄(양웅):전한 말기 사상가이며 문장가. 말을 더듬었기에 서적만을 탐독하며 사색하였다.
諸葛亮(제갈량): 삼국지 유비의 책사
曺交(조교):문왕은 신장이 10척이요, 탕왕은 9척이라 하는데, 그런데 지금 교는 9척 4촌으로 자랐으되 조밥만 먹을 줄 알 뿐이니, 어떻게 하면 요순같이 되겠습니까?" (맹자)
於陵仲子(오릉중자):3일동안 굶어 귀와 눈이 보이지 않자 우물가로 기어가서 벌레먹은 복숭아를 세번 삼킨 뒤에야 귀와 눈이 떠졌다.(맹자)
약간은 장난기어린 이 취중언사는 연암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과연 그는 그렇게 살았다.
사랑하고, 가난하고, 고요히 머무르고, 술을 마시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서,
양주도 되었다가, 안연도 되었다가 유령도 되었다가 양웅도 되었다.
그 무엇도 될 수 있었지만, 그 무엇도 아닌 존재. 연암 박지원이다.
남자가 술에 취하면 이런 정도 구라는 풀어야 한다.
맨날 태극기가 어떠니, 촛불이 어떠니 헛소리나 하고
강남좌파가 어떠니 진보부패가 어떠니 비판이나 한다.
그도 아니면,
잘 나가는 놈 질투나 하고, 구두쇠 동창놈 욕이나 해쌓는다.
마누라 자랑, 자식 자랑 八不出에, 왕년에 껌 좀 씹었다는 헷소리나 하는게
우리네 술자리다.
여기에 대고 爲我가 어쩌니 兼愛가 어떠니 해 봐야
"니 잘났다." 조롱만 당할 뿐,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아닌자' Nobody 일 뿐이다.
우리도 이젠 구라의 품격을 조금 높여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