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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크의 상품미학 비판 관련 달항아리의 미학적 요소

甘冥堂 2020. 11. 9. 10:15

하우크의 상품미학 비판 관련 부분을 참조하면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상품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상품에 포함되어있는 미학적 요소를 찾아본 후 이 요소가 우리에게 어떤 문화적 효과를 미치는지 분석해 보시오.

 

1.토대의 미학과 상품미학 비판

 

문화적 대중주의에 대하여 폴 윌리스(Paul Willis)는 토대의 미학이라는 것을 내세운다. 토대의 미학적 가치는 문화적 텍스트나 실천에 내재하거나 그 형태에 존재하는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감각적이고 감정적이며 인식적인 소비행위 즉 대중문화란 사용가치에 기반을 두고 소비되는 것이지, 고급 지배문화에서 보듯 생산물의 내재적이고 탈역사적인 가치에 기반을 두고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대중문화에 대한 토대의 미학에서는 적절하게 사용되는 중에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다. 그에 반해 고급 지배문화에서의 의미는 항상 결정된 것으로 미학적 숙고를 거치면 정확한 해석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로서 상품문화, 소비문화의 사회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미적인 현상에 대한 논의를 순수예술에만 한정시킬 수 없게 된다.

 

한편, 독일의 문화 연구자 하우크(W.F.Haug)는 상품미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논의했다. 그의 상품미학 비판은, 상품생산이 점차적으로 디자인이나 광고에서처럼 미적인 차원을 통합해가는 과정에서, 현대소비사회의 감성적 인식을 다루게 된다. 하우크는 사회적인 미적 가상과 그로 인한 감성의 정형화 현상을 상품미학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면서 그 현상을 경제적인 기능 연관에서 설명하고 있다.

상품미학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상품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두 측면이 존재한다. 사용가치란 외적인 대상으로서 그것이 지닌 속성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능력을 의미하며, 교환가치의 측면이란 화폐나 혹은 여타의 목적들과 거래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런데 자본주의적인 상품생산이 지향하는 것은 오로지 교환가치일 뿐이며 특정한 사용가치의 생산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교환에서도 판매자의 관심은 교환행위를 통한 현금화의 실현이다. 반면에 구매자의 목적은 상품의 사용가치이기 때문에 교환은 단지 사용가치를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모순관계로서, 이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상품을 둘러싼 아름다운 가상이 출현하게 된다.

 

 

2.(항아리)의 미학

 

인류가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대략 질그릇 항아리가 만들어졌으며, 질그릇 항아리는 역사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승되고 있다. 형태는 그 지역, 그 민족에 따라 갖가지 특징을 나타낸다. 흙으로 만든 것 외에 나무로 만든 것···동 등의 금속으로 만든 것, 유리로 만든 것 등 그 재료와 종류가 많다.

 

1)독과 항아리

 

독은 운두가 높고 배가 조금 부르며 크기는 다양하다. 곡물을 담아 헛간에 놓거나, 김장을 담고, 술이나 간장·된장을 담아 햇볕이 잘 드는 장독대에 둔다. 집을 지키는 토지신을 이 장독대에 모셔두기도 하여 그 중요성을 짐작케 한다. 오지나 질그릇 외에 굵은 피나무의 속을 파내어 독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산간지방에서 볼 수 있다.

 

항아리()는 오지그릇이나 질그릇의 한 종류로, 항아리보다는 큰 그릇을 독, 항아리보다는 작은 그릇을 단지라고 한다. 항아리는 그릇의 입구가 짧고 배가 부르며, 운두가 높고 원통형이다. 항아리는 주로 흙으로 만들지만 그 지역과 민족에 따라 나무, , , 구리, 유리 등 갖가지 재료를 이용하며, 주로 물건이나 음식을 담아 두는 데에 사용된다. 항아리는 신석기 시대 이후 넓은 지역에 걸쳐 써 왔으며, 오늘날까지 계속 쓰이고 있다. 일찍이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오리엔트, 인도, 중국 등 고대문명이 발상한 모든 지역에서 정교한 항아리가 발견된다.

 

2)달항아리에 대하여

 

달항아리는 둥그런 몸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대형의 조선 백자 항아리를 일컫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백자 항아리의 희고 깨끗한 살결과 둥글둥글한 생김새가 보름달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달항아리는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백 년 정도 되는 기간에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높이가 40cm 이상으로 지름과 높이가 거의 같은 비례를 이루는 큰 항아리로 워낙 크기 때문에 하나의 모양을 짓지 못하고, 위쪽과 아래쪽 부분을 따로 지어 접붙여 만들었다. 그래서 허리께에 이음 부분이 보이면서 조금씩 비뚤어져 있다. 그래서 달항아리의 매력은 깔끔한 정형이 아니라 어딘가 이지러진 듯한 자연미에서 나온다. 좌우 비대칭의 둥그스름한 모습이 도리어 자연스럽고 넉넉한 느낌이 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너그럽고 풍성하게 해준다.

 

달항아리는 감상용이 아닌 실제 사용하던 그릇으로서 경기도 분원에서 구워냈다고 한다. 19세기 무렵에는 반가(班家) 뿐만 아니라 웬만한 가정에서는 한두 개씩 놓고 쓰던 것이었다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지고 전 세계를 통틀어 30여 개 정도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달항아리는 귀족적이지 않고 서민적이며 선조들의 생활과 애환이 배어있는 예술품이다. 원래 달항아리에는 맛있는 장이나 젓갈을 저장해 왔다는데, 달항아리 중에서도 저장했던 장이 배어나와 겉으로 무늬를 만든 것도 있다.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예술가와 문인들이 수없이 칭송해 왔다. 이 중에서 몇 가지를 옮겨 본다.

 

-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백색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교묘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에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 한국의 흰 빛깔과 공예 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의 하나이다. 따라서 한국의 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려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맺으며

달항아리는 폴 윌리스의 대중문화에 대한 토대의 미학에서의 주장과 같이 적절하게 사용되는 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반가(班家) 뿐만 아니라 웬만한 가정에서는 한두 개씩 놓고 쓰던, 그 사용되는 중에 사용가치에 기반을 두고 소비된 대중문화의 일부였던 것이다.

 

한편 달항아리를 하우크(W.F.Haug)의 상품미학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처음 만들어 질 때에는 단순히 장이나 젓갈을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가치라는 경제적 기능을 주로 한 것이었다. 목적은 상품의 사용가치이기 때문에 교환은 단지 사용가치를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일 뿐이었지만, 달항아리가 더 이상 제조되지 않아 절품되면서 이제는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가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되었다.

 

더구나 자본주의적인 상품생산이 지향하는 것은 오로지 교환가치일 뿐이며 특정한 사용가치의 생산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현실에서, 달항아리의 교환가치는 갈수록 더 커질 것이 자명하다.

 

단순한 백색의 항아리의 둥근 모습이 갖는 한국적인 조형미, 그리고 가운데를 이어 붙여 불균형과 이지러진 듯한 자연미에,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하면서 우리의 멋과 예술의 경지를 승화시킨, 달항아리를 만든 선조들의 미적 감각에 고개 숙인다.

 

 

참고자료 :

1. 문화비평과 미학 KNOU PRESS. (최연희 정준영 공저)

2. 다음백과

3. https://biencan.tistory.com/2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