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류

아방가르드 예술 개념을 통한 예술의 자율성 비판

甘冥堂 2020. 11. 9. 10:21

들어가며

 

현대 예술 중에는 모더니즘 예술과는 다른 성격의 예술이 있다.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나 러시아의 구축주의 예술이 그러한 예로서, 이들 예술을 아방가르드 예술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아방가르드 예술은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어떤 특성을 지지고 있는지 살펴본다.

 

본론

 

1.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군사용어로, 본 부대에 앞서서 첨병이나 선봉역할을 하는 전위부대를 가리키는 프랑스어였으나, 점차 정치 사회적인 의미를 갖게 되면서, 정치사상이나 사회사상에서 보이는 급진주의를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특히 사회적 정치적 용어로 쓰기 시작한 사람들은 19세기 유토피아적 사회개혁가들이나 사회주의자 혹은 무정부주의자들이었다.

 

생 시몽(C.Saint-Simon)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를 건설하는데 예술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예술가는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뛰어난 상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토피아에 대한 예술가의 상상력은 다른 어떠한 주장보다 큰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아방가르드를 문학이나 예술과 관련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이며,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정치. 사회적 의미에서 완전히 벗어나 오로지 예술적인 급진주의를 가리키기 위한 심미적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그 결과 아방가르드는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찬양하는 다양한 유파의 새로운 예술운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아방가르드는 자신이 시대를 앞서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식은 아방가르드를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본질이 된다. 아방가르드의 이러한 선도의식은, 아방가르드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곧 엘리트 그룹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며, 이는 당대의 예술전통이나 인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을 계속하는 예술가들은 항상 새로운 형식과 기교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술적 전위로서의 아방가르드는 그것이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과 다르지 않으며,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논의되어 왔다. 즉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모더니즘과는 엄격히 구별되는 현상이 있다. 복잡한 논의들 속에서 이들의 관계는

첫째, 이 둘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둘째, 아방가르드를 모더니즘의 하부 개념으로 파악한다. 셋째, 오히려 아방가르드를 모더니즘의 상부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입장은 모두 특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방가르드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으로 생겨난 예술운동으로 주로 1920~1930년대에 유럽에서 풍미한 현상들이라고 규정할 수 있으며, 비록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서로 구분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페터 뷔르거의 아방가르드 이론

뷔르거는 이 세계에는 무관심적 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예술은 일정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한다고 하며 두 번째 마르크스 이론을 전제한다. 특히 실천성을 강조하며 변증법적 역사이해의 틀을 헤겔과 마르크스에게서 계승하고 있다. 이런 전제들 위에서 자신의 아방가르드 이론을 개진해 나가는데, 그가 가장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바로 유미주의.

유미주의는 모더니즘 예술의 모태가 되는 예술운동으로서 예술의 자율성과 자기 목적성을 중시하고, 특히 그 심미성을 강조하였다. 유미주의자들은 예술이 모든 도구적이고 실용적인 기능에서 해방될 때 비로소 그 존재 이유를 찾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예술을 생산해 내고 분배하는 장치뿐 아니라 어느 일정한 시대에 있어 예술에 대해 지배적인 생각들과 작품의 수용을 본질적으로 결정짓는 생각들까지 포함하여 지칭한다는 제도예술(Institution Kuns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결국 뷔르거는 전통적인 미학적 개념들 즉 예술의 자율성이나 천재 혹은 독창성 등과 같은 개념들이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는데, 우리가 뷔르거의 논의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역사사회적 관점에서 유미주의나 모더니즘 예술 그리고 아방가르드의 특성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뷔르거의 아방가르드 이론을 정리하면 첫째, 아방가르드는 부르주아의 가치체계에 대한 전면적 거부와 도전을 통해 기존의 모든 전통이나 인습과 급진적으로 단절하고자 하였으며, 둘째, 아방가르드는 체계적인 유미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다. 셋째, 아방가르드는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선을 붕괴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으며,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나 정치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또 삶과 유리된 예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예술과 유리된 삶 또한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3.아방가르드 예술의 미학적 원리: 다다와 초현실주의를 중심으로

1)다다이즘

다다이즘이란 1916년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중립국이었던 스위스 취리히에 모여든 예술가들에 의해서 시작된 반전통적. 반합리적 성향의 예술운동이다. 뷔르거는 다다이즘이 모든 아방가르드 가운데서도 가장 급진적인 예술운동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가장 무정부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운동이기도 했는데 다다이즘의 이러한 성격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합리주의 정신에 의해 급속도로 발전한 산업과 기계기술의 급성장을 통해 현대문명이 약속했던 모든 낙관주의는 바로 그 기계에 의해 파괴되었고, 합리적 사고와 인간적 가치, 종교적 도덕적 신념들이 1차 세계대전으로 부정되어 버렸다. 이제 모든 것이 전혀 다른 지반에서 출발해야할 필요가 생겼다. 전통적 합리적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 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시킴으로써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다.

 

다다(dada)라는 명칭의 유래는, 프랑스어로는 아이들이 타고 노는 장난감 목마를 가리키며, 루마니아어로는 ‘yes’. 독일어로는 아이들이 내는 의성어지만 실제로는 전혀 무의미한 말이다. 다다는 이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므로, 이들 예술가들은 정치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이고 사상적으로 허무주의적인 자신들의 부정의 정신을 상징하는 표어로 이 용어를 선택했던 것이다.

다다는 하나의 양식을 의미하지 않고 예술에 대한 하나의 태도를 가리키며, 따라서 하나의 특정 양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정신상태로서의 다다를 설명하자면, 우선 예술은 죽었다는 그들의 선언에서 드러나는 반예술이라는 특징을 들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양상의 하나가 바로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ready-made)’이다. 그는 대량생산된 남성용 소변기에 서명을 하고 <(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러한 레디 메이드는 뷔르거가 말하는 제도 예술에 대한 미학적 공격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량생산된 상품에 서명을 함으로써 부르주아 예술 개념 즉 예술 작품이란 예술가 개인의 독창적 창조물이라는 개념을 조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복제품에 수염을 그려 넣고 프랑스어로 ‘L.H.O.O.Q’(프랑스어로 성적 욕설)을 붙여놓는다거나, 렘브란트의 그림을 다리미판으로 만들어 기성품이라 불렀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량생산된 상품을 오브제(objet)로 사용하거나, 역으로 걸작품으로 평가받는 대가들의 예술 작품들을 오브제로 사용함으로써 상품과 예술작품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다다이스트들은 부르주아 예술의 작품 카테고리를 공격하기 위한 또 다른 전략으로 우연성에 의존하였다. 예를 들어 가위로 자른 색종이를 모자 속에 집어넣었다가 그것들을 바닥에 쏟아놓음으로써 이루어지는 자연스럽고 우연적인 효과를 그대로 그림으로 옮긴다든가, 신문 잡지 기사의 단어를 하나씩 잘라 포대에 넣고 흔든 다음 하나씩 꺼내어 그 순서대로 베껴 쓰는 식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기적 통일성이라든가 창조성, 독창성이라는 작품 카테고리를 파괴함과 동시에 합리성이라는 사회적 가치 기준을 의도적으로 위배하는 무의미성을 드러낸다. 이 같은 무의미성에 관객은 충격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자신들이 그동안 당연하게 간주해 온 전통적 관습이나 규범에 대해 반성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몽타주특히 하트필드 등의 포토 몽타주의 경우, 그것은 미적 대상이라기보다는 읽히기 위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노버 다다를 대표하는 쿠르트 슈비터스의 콜라주나 아상블라주(assemblage:여러 가지 물건을 모아서 작품을 구성하는 기법) 등도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없애려는 다다의 시도가 낳은 산물이다.

 

2)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 가운데 가장 늦게 전개된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과 더불어 부르주아 사회와 그 예술을 타파하는 데에 전위적 역할을 담당했다. 초현실주의는 상당부분 다다이즘에서 발전되었다. 다다이즘과 공통점은 초현실주의 역시 부르주아 사회와 제도예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그러한 비판을 위한 전략으로 우연성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이 논리적으로 발전된 운동이면서 동시에 다다이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다다는 허무와 부정의 정신에 의해서 이루어진 혁명이었을 뿐, 구체적인 목표나 비판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초현실주의는 의식의 혁명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혁명까지도 추구했다.

 

초현실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24년에 브르통이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문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이에 의하면 초현실주의란 순수한 상태에서의 정신의 자동작용으로써, 이를 통해 사람들은 말로든 글로든 어떤 방법으로든 사고의 실제적인 작동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이성에 의한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어떠한 미적 혹은 윤리적 관심에서도 벗어난 상태에서의 사고에 의해 받아써지는 것이라고 했다.

 

초현실주의 예술은 다다에서처럼 예술가 개인의 개성적 창조성을 부정하고 합리적 이성의 논리를 무너뜨리려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하고 그것을 드러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 사용한 기법으로는 자동그리기, 프로타주. 데칼코마니, 데페이즈망, 콜라주, 오브제 등이 있다.

 

미로의 <광대의 축제(1924~1925)와 마송의 <미궁(1930) 두 작품은 무의식적 자동작용을 보여주는 사례들로, 미로는 무엇인가를 그리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나는 그냥 그림을 그려 나가며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림이 나타나거나 내 붓끝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단계는 자유롭고 무의식적이라고 밝혔다.

한편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1953)> 작품은 사실주의적 초현실주의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극히 사실적 기법으로 그려져 있으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낮과 밤, 빛과 어둠의 공존을 통해 우리를 초현실의 세계로 이끈다고 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에 기대어, 무의식의 주된 영역을 차지하는 것은 성적욕망이라고 생각했다. 딜리의 <거대한 자위행위자(19270>, 및 프로이트의 꿈 이미지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초현실주의 회화로 성적 욕망과 거세 공포를 다루고 있는 <니르키소스의 변형(1937)>은 사실주의적 초현실주의 회화의 예가 된다.

 

4.미학에 대한 예술사회학적 비판

아방가르드 예술이 모더니즘 예술의 근본인 예술의 자율성을 비판함으로써, 미학은 또다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와 연관하여 자네트 월프는 미학에 대한 사회학적 비판에서 미학이 예술과 그 대상 그리고 그에 대한 감상에 초점을 맞추는 하나의 학문분과로 구성되고 철학 내에서도 예술에 관한 문제가 윤리와 정치의 문제로부터 분리된 것은 18세기에 와서야 가능했다고 하였으며, ‘위대한 예술과 대중문화를 단순한 방식으로 대립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고 했다. 따라서 미학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예술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결국 무엇이 그 사회나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서 예술로 간주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5.본 주제에 특별히 주목하게 되었던 배경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ready-made)’이라는 작품은 대량생산된 남성용 소변기에 서명을 하고 <(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이를 처음 화보에서 보았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의아함을 감출 수 없다. 변기가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차라리 우리나라 전통 놋쇠 요강이 예술적 가치가 더 높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런 종류의 것이 예술작품이 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인들 예술작품이 되지 않겠는가?

 

강원도 고성의 어느 마을 축제를 본 적이 있다. 이 동네에 사시는 부녀자들이 가정에서 사용하던 바가지, 다듬이돌. 빨래방망이. 솥뚜껑, 요강. . 절구 등을 두드리며 합창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신선한 충격이 지금도 새롭다. 소위 말하는 전위예술이라는 것이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적 가치 기준을 의도적으로 위배하는 무의미성에 충격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자신들이 그동안 당연하게 간주해 온 전통적 관습이나 규범에 대해 반성적으로 검토하게 된다는 다다이즘. 가정에서 소중하게 사용되는 가재도구들을 내리치며 두드리는 것이 관습이나 규범에 위배되는 것이니 이 또한 예술이라 할 수 있겠다.

 

6. 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예술의 형식이나 내용은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장르를 달리하며 변해갈 것이다. 아방가르드 예술, 그에 속한다는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예술의 경지를 지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지로 넘어가듯, 미학에 관한 인식은 계속 변하게 될 것이다. 예술은 죽었다는 그들의 주장이 과연 정당한가?

 

중국의 대표급 현대시인 장극가(臧克家)가 말했다. “자기만이 알 수 있는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자기만 아는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그것을 과연 작품이나 예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추상화, 다다. 초현실주의의 예술작품들을 보며,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자기 또는 그들 부류만이 아는 내용이나 표현방식은 아닐까? 과연 그러한 작품들이 영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나가며

이상으로 아방가르드 예술 개념과, 세부적으로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에 대한 페터 뷔르거의 이론 및 다다와 초현실주의를 중심으로 한 아방가르드 예술의 미학적 원리를 살펴보았으며 몇 편의 다다와 초현실주의 작품을 감상하였다.

현대의 예술을 접하다보면 이것도 예술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본 과정을 공부함으로써 어렴풋이나마 예술개념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각 시대의 예술이 어떠했는지 예술 개념의 형성과 변화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음을 보람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