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할매 국밥

甘冥堂 2024. 3. 5. 13:06

피난시절 한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영도다리 옆 자갈치시장 입구에는

60년째 배고픈 사람들의 든든한 곳간이 되어준 욕쟁이 할머니 돼지국밥집이 있습니다.

고달픔과 삶의 애환이 묻어 있는 허름한 벽 한편에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는

[돼지국밥 오천 원]

단골손님 인듯한 남자가 허겁지겁 국밥을 삽질하듯 입에 퍼넣고는
세상 날아갈 듯한 트림 한 점을 올리며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내미는 모습에
“3천 원만 도가”
“뭔 가격이 고무줄이라예?”
“와 꼽나? 꼽으면 니가 국밥 장사해라메“
“며칠 전에는 5,000원 받더니만 오늘은 와 3000원이라예?“
“문디... 싸게 해 줘도 지랄이고 ...
오늘은 니가 쪼매 힘들어 보여서
내가 니한테 이천 원 뇌물 쏜거다. 와?“

“할매요... 그라면 내는 와 오천 원 다 받는교?“
이쑤시개로 터널이라도 팔 듯 사정없이
입을 쑤시며 나오는 또 다른 남자의 말에
“저 봐라 ... 아까운 줄 모르고 밥 냉긴 거 봐라.“

생선 실은 자갈치 배가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한바탕 소란을 피워대던 할머니의 가게가
섬을 재우는 파도처럼 조용해질 즈음
“여기 돼지국밥 한 그릇만 주이소.“
“오늘은 어찌 손녀랑 같이 왔는교?”
“오늘이 우리 손녀 생일이라우”
자신은 녹슨 리어카에 기대어 빵과 우유 하나로 허기를 때우면서도

손녀에게 만큼은 따뜻한 고깃국을 먹이고 싶은 게 할머니 마음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고기가 듬뿍 담긴 국밥 두 그릇을 내밀어주면서
“오늘은 내가 쏠 테니 돈 걱정 말고 맘껏 드슈.“

햇살 같은 따스한 정까지 국밥에 담겨 있는 걸 아는 폐지 할머니는

그래도 그럴 수 있냐며 구겨진 오천 원을 펴서 내미시는 모습에
“그럼 한 그릇 오백 원씩 해서 천 원만 받으면 되겠는교?“

그마저도 안 받으면 공짜로 얻어먹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질 할머니와 손녀에게 살핌과 나눔으로
없는 이의 마음까지 헤아려주는 시간을 지나
“감사히 잘 먹었심더..“

그렇게 고맙다는 인사는 욕쟁이 할머니에겐 선물이 되고,
받으면 돌려줘야 한다는 게 부산사람 인심이라는 듯
손녀 손에 뜨끈한 고깃국물을 담은 비닐봉지를 쥐어주며
하늘이 높아진 만큼 사랑하는 마음도 커 나가는 것 같은
흐뭇함으로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항구의 뱃고동 소리가 어둠 속에 번져가고 있을 때
사람 따라 국밥값이 달라지는 할머니의 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는 익숙한 듯
“할매요..여기 국밥 한 그릇하고 소주 한 병 주이소.“
“국밥은 내가 줄테니까네 소주는 니가 꺼내서 처무라.”

고된 뱃일에 곰삭은 하루를 누가 씹다 버린 달을 보며
소주잔에 토해내더니 가게 한 켠에서 포근한 달빛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넵니다.

“지는 걸어도 달려도 와~ 늘 뒷바퀴 같은 인생인지 모르겠으예?“
“뒤로 갈 땐 뒷바퀴가 먼저일 때도 안 있나?
어찌 인생이 직진 빼이 없디나?“
“할매말이 맞네예... ㅋㅋ“

“성공하기 전까진 다들 열심히 하제.
근데 하고 난 뒤가 더 문젠기라“

목표조차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며
이룬 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며
할머니는 한철 한 계절을 삶에 지친 고된 이들에게
때론 할머니로...  때론 엄마 같은 따스한 온기로...
살아가는 길이 미끄러울 뿐이지 낭떠러지는 아니라며
삶의 녹색 신호등이 되어주고 있었답니다.

얼기설기 맞대어 놓은 배들이 파도에 일어섰다 누웠다를 반복하고 있는 달빛 잠든 저녁
지친 달빛을 안고 한 남자가 들어서더니
“할매요, 여기 국밥 하나 주이소.”
“김 사장 니 이 시간까지 밥도 안 먹고 댕깄나?”

남자는 대답 대신 국밥 한그릇에 담긴 한숨을 소주잔에 눈물까지 말아 마시더니
“할매요.. 너무너무 힘들어 결국 못 버티고 오늘부로 가게 문 닫았심더.“
“니 처음 사업 시작할 때 돈도 없이 젊은 패기하나 갖고 했다 안 했나?“
“네 그땐 그랬지예.“
“그라먼 지금은 무기가 하나 더 있네.”
“뭔 무기예? 빚만 남았는데예...“
“경험이란 무기가 하나 더 안 있나? ”
“................“

“꿀벌을 와 사람들이 좋아하는 줄 아나?“
“부지런해서 아님미꺼?”
“아이다... 남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데이.”

인생이라는 놈은 때론 예기치도 않은 곳에다 닻을 내리기도 하는 거기에
남을 도와가면서 함께 잘사는 게 진짜 승리한 거라며 위로를 건네는 할머니를 보며

“할매예...
돈 버는 건 꼴등이지만도 행복은 내가 일등 할게예.“

골목길에 드리워진 가로등 불빛을 타고 놀던 별들의 배웅을 받으며 멀어지는 남자의 등뒤로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골목안에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힘내래이..
희망은 절망 뒤에 가려서 안 보일 뿐이데이...!“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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