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西塞山懷古 / 劉禹錫
서새산 회고
王濬樓船下益州 (왕준루선하익주) 왕준의 전함이 익주에서 내려오자
金陵王氣黯然收 (금릉왕기암연수) 금릉의 왕기가 빛을 잃고 사라졌다.
千尋鐵鎖沈江底 (천심철쇄침강저) 긴 철쇄는 강 속 깊숙이 잠기고
一片降幡出石頭 (일편항번출석두) 한 조각 항복 깃발만이 석두성에 걸렸네.
人世幾回傷往事 (인세기회상왕사) 인간사 지난 일에 마음 상하기 몇 번인가
山形依舊枕寒流 (산형의구침한류) 산의 모습은 여전히 장강을 베고 누워 있다.
今逢四海為家日 (금봉사해위가일) 지금은 사해가 일가가 되었는데
故壘蕭蕭蘆荻秋 (고루소소노적추) 옛 보루는 쓸쓸하고 갈대와 억새에는 가을이 왔네.
이 시는 유우석이 장경4년(824) 기주를 거쳐 화주자사로 전근하면서 서새산을 지날 때 쓴 시다.
西塞山(서새산):지금의 호북 대야현에 있다. 장강 중류의 요새로 삼국시대 東吳가 일찍이 여기에 방어설비를 했다.
王濬(왕준):자 士治. 홍농 호현(지금의 하남 영보)사람으로 익주자사.
樓船(누선):晋 咸寧5년(279), 왕준이 晋 무제의 명을 받들어 오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戰船을 만들었는데,
선상에 목재로 성을 만들고 樓를 세워, 매 선박마다 2천 명을 태울 수가 있었다.
益州(익주):지금 사천 성도. 太康원년(208) 왕준은 선대를 이끌고 익주를 출발하여 남쪽으로 내려와 동오를 정벌했다.
金陵王氣(금릉왕기):금릉 즉 건업, 지금의 남경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전국시대 초나라 威王 때,
어떤 사람이 이곳에 王氣가 있음을 보고, 금을 묻어 덮었다고 해서 금릉이라 했다. 동오도 금릉을 수도로 삼았다.
黯然(암연):상심한 것을 형용. 이 구와 윗 구절은 왕준이 익주에서 출병함으로 인하여,
오국 도성의 왕기가 흩어졌고, 국운이 장래 종말을 맞게 되었음을 말한다.
尋(심):옛날에는 8척을 1심으로 했다. 千尋(천심):긴 것을 형용한다.
鐵鎖(철쇄):진나라 전선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오나라는 철쇄를 끌어내어 강 위를 가로로 끊었으나
왕준이 큰 불을 사용하여 태워서 끊었다.
降幡(항번):항복하는 깃발.
石頭:석두성. 지금의 강소 강녕에 있으며 오나라 수도의 방호벽이 되었다. 왕준이 군대를 거느려 석두성을 공격하니
吳主 孫皓(손호)가 친히 성문을 열고 투항했다.
寒流(한류):장강을 가리킨다.
四海為家(사해위가):사해가 일가의 소유가 되었다. 즉 천하가 통일 되었다는 뜻.
故壘(고루):옛날의 영루. 이 구와 위 구절은 지금은 당나라가 통일한 시대이니, 옛날의
영루는 모두 폐기 되었다. 단지 갈대와 억새만 남아, 쓸쓸한 가을바람이 분다.
蘆荻(노적):갈대와 억새.
【해설】이 시는 옛일을 생각하고 지금을 위로하는 시로, 산하는 의구한데 사람의 일은
예와 같지 않다는 정감을 쓴 시다.
시의 앞 4구는 西晋이 동으로 내려와 吳를 멸망시킨 역사적 사실을 쓴 것으로,
국가 통일은 역사의 필연임을 표현했고, 사물의 흥패는 사람의 생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후의 4구는 서새산을 써, 그곳 이름을 뽑아낸 것은 일찍이 군사 요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산의 형태는 그대로인데, 사람의 일을 모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의 주제로 했다.
마지막은 지금 천하가 통일되고 강산이 통일되었다.
六朝와 같이 분열되어 이미 한 번 나라가 망하니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썼다.
시는 깊고 넓은 寓意와 언사가 호쾌하다. 그러나 시 안에 시인의 진정이 보이지 않고,
또 다소 기세가 꺾이고 침울한 것이 오히려 큰 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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