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정치는 썩었어도 감동주는 이야기

甘冥堂 2024. 8. 29. 08:02

나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컴퓨터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오후 6시 경,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아는 사람 소개로 전화를 드렸어요. 여긴 경상도 칠곡이라는 곳이예요.
딸애가 초등학교 6학년인데요. 지금 서울에서 할머니하고 같이 사는데,
중고품 컴퓨터라도 있었으면 해서요" 4~50대 아주머니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적당한 물건이 나오거든 연락을 달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열흘쯤 지났을 때, 쓸만한 중고컴퓨터가 들어왔습니다.
아주머니에게 전화하여 딸이 사는 서울집 주소를 알아내서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다세대 건물 안쪽 자그마한 샤시문 앞에 할머니 한 분이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집안에는 악세사리를 조립하는 부업거리가 방안에 가득히 쌓여 있었습니다.
형편이 넉넉치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야! 컴퓨터다.''
컴퓨터를 조립하고 있는데 그 사이 6학년 딸애가 들어와 컴퓨터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 고마워요"
마치 내가 컴퓨터를 구해 준 은인인 것처럼 좋아했습니다.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였습니다.
할머니가 아이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너 열심히 공부하라고 니 엄마가 사준거여.

어여 학원에 다녀와라"
아이는 ''네...'' 하고는 후다닥 나갔습니다.

설치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려고 나서는데, 버스정류소에 아까 그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니? 아저씨가 태워 줄게."
주저할만도 한데, 아까 봤던 아저씨라 마음이 놓이는지, 아이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하계역 이에요.''
가려던 방향과는 반대였지만 태워다 주기로 했습니다.
거리로 보면 집과 학원은 너무 먼 거리였습니다.
십 분쯤 갔을 때, 아이가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고 했습니다.
패스트푸드점이 보이길래 차를 세웠습니다.
''아저씨 그냥 가세요.''
아이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는 건물 안으로 황급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왕 여기까지 온 것이니 기다려서 태워다 주어야지 생각하며,

무심코 조수석 시트를 보는 순간,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조수석 시트엔 검붉은 피가 묻어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왠 피가?
그때 갑자기 머리를 스쳤습니다
6학년 첫 생리인가? 직감했습니다.
시트를 적신 걸 보니 속옷과 바지도 다 버렸겠구나.

차에서 뛰어내리며 당황하던 아이의 얼굴이 겹쳤습니다.
당장 화장실 가서 어떻게 하고 있을까?
아마 처음이니 얼마나 놀라고 당황하며 어떻게 할지 울상짓고 있을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나는 마음이 너무나 급해졌습니다.
아이가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차에 비상등을 켜 두고는 속옷가게를 찾았지만 주변에는 아무런 상점도 없었습니다.
마음은 조급한데 별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첫 생리 때 엄마가 옆에 없는 어린 아이가 몹씨 애처로웠습니다.
청량리 역 근처에서 황급히 속옷가게를 찾았습니다.
사이즈를 알 도리가 없어, 제일 작은 것부터 위로 사이즈를 두 개 더 샀습니다.
속옷만 사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집사람에게 전화했습니다.
''지금 택시 타고 청량리역으로 와. 아니, 그냥 오면서 전화해.''
'왜 무슨 일인데?''
자초지종 말을 하자마자 집사람이 알았다 하더니,
택시를 타고 빨리 온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구세주"였습니다.
아내는 다급히 ''약국에 가서 생리대 xxx 달라고 하고, 그거 없으면 ㅇㅇㅇ달라고 해.
속옷은?" ''샀어.''
''치마도 하나 사고, 편의점 들러 아기 물티슈도 하나 사."
아내의 일사불란한 지휘 덕분에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고,
아내를 태워 그 아이가 내린 건물로 급히 차를 몰았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처리하고 갔을까?
없으면 어쩌나 가슴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 이름도 모르는 상황에서...
집사람이 화장실로 들어갔을 때 세 칸 중 한 칸이 잠겨 있었고...
''얘 있니? 아까 컴퓨터 아저씨네 아줌마야~''
말을 건네자 안에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네~~'' 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그 안에서 혼자 울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평범한 가정이라면 축하받으며 조촐한 파티라도 벌였을 일일 텐데...
콧잔등이 짠해 왔습니다.
그 좁은 곳에서 어린애 혼자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요?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의 문자가 왔습니다.
''옆에 꽃가게 보이던데 꽃 한다발 사와."
이럴 때 어떻게 축하해 줘야 하는지를 몰라 서성거렸는데,
선듯 보이는 중에 제일 예쁜 꽃다발을 골랐습니다.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있는데, 아이와 아내가 나왔습니다.

아이의 눈은 퉁퉁 불어 있었습니다.
아내를 처음 보고서 멋쩍게 웃어 보이다가 챙겨간 것들을 보고서 막 울기 시작 했었다고 합니다.
아내의 얼굴에도 눈물자국이 보였습니다.
저녁을 먹여서 보내고 싶었는데, 아이가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집 앞에 내려줬습니다.
"아저씨! 아줌마!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울며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어린 소녀를 보며 우리 내외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습니다.

아내와 돌아오는 차속 대화에서 그 집 사정이 여의치 않음을 안 아내는 ''그 컴퓨터 얼마에 팔았어?''
''22만 원'' '
'다시 가서 주고 오자''
''뭐?''
''다시 가서 계산 잘못됐다고 하고, 할머니한테 10만 원 드리고 와.''
중고 컴퓨터값이 내렸다는 둥 적당히 둘러대면서 10만 원을 할머니께 드리고 왔습니다.
나는 내심 아내의 통 큰 마음에 놀랐습니다.

그 날 밤 열한 시쯤,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 칠곡인데요. 컴퓨터 구입한...''
이 한 마디를 하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 하곤 목이 메여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아내도 따라서 눈이 빨갛도록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짠한 일입니다.
시간이 금 쪽같이 바쁜 세상에 이렇듯 갸륵한 마음씨를지닌 부부의,
세심한 배려와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실화를 접하면서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아직도 이렇듯 아름답고 정감넘치는 행복한 세상입니다.
예전부터 그런 민족성이 다분한 백성이었습니다.

좋은 날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 정치판은 썩었어도 아직 살만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
천사 같은 부부의 선행에 마음이 따스해 집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하늘의 은총이 항상 넘치고,

기쁨의 은혜가 풍성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받은글-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雜草  (0) 2024.08.29
바닷가재  (0) 2024.08.29
감동의 서울대 생활수기 당선작  (13) 2024.08.28
가을인가요  (0) 2024.08.28
많다고 좋을 것 없다  (0) 2024.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