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 - 한유(韓愈)
조카를 제사 지내는 글
年月日 季父愈 聞汝喪之七日 乃能銜哀致誠
(년월일 계부유 문여상지칠일 내능함애치성)
使建中遠具時羞之奠 告汝十二郞之靈
(사건중원구시수지전 고여십이랑지령)
嗚呼 吾少孤 及長 不省所怙 惟兄嫂是依
(오호 오소고 급장 불성소호 유형수시의)
中年 兄歿南方 吾與汝俱幼 從嫂歸葬河陽
(중년 형몰남방 오여여구유 종수귀장하양)
旣又與汝就食江南 零丁孤苦 未嘗一日相離也
(기우여여취식강남 령정고고 미상일일상리야)
吾上有三兄 皆不幸早世
(오상유삼형 개불행조세)
承先人後者 在孫惟汝 在子惟吾
(승선인후자 재손유여 재자유오)
兩世一身 形單影隻
(양세일신 형단영척)
모년모월모일 막내숙부 한유는 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지 7일만에야 슬픔을 머금고 정성을 다해서
건중에게 멀리 시수를 가지고 가서 너 십이랑의 영전에 바치게 하면서 고한다
아, 내가 어려서 고아가 되어 성장하기까지 아버님을 알지 못했고 오직 형님과 형수님만 의지하며 지냈다.
중년에 형님께서 남방에서 돌아가셨을 때 너와 내가 나이가 어려서, 나는 형수님을 쫓아 하양으로 돌아가서 형님의 장례를
치렀다.
그 후 강남으로 가서 생활했는데 외롭고 쓸쓸해서 하루도 서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내 위로 형님이 세 분 계셨으나 불행히 모두 일찍 돌아가셨으며
조상을 이을 후손으로 손자로는 너뿐이었고 아들로는 나뿐이었다.
양대에 걸쳐 한 몸뿐이라서 홀몸에 그림자도 외로웠다.
嫂嘗撫汝指吾而言曰 韓氏兩世 惟此而已 汝時尤小
(수상무여지오이언왈 한씨양세 유차이이 여시우소) :
當不復記憶 吾時雖能記憶 亦未知其言之悲也
(당불복기억 오시수능기억 역미지기언지비야)
吾年十九 始來京城 其後四年 而歸視汝
(오년십구 시래경성 기후사년 이귀시여)
又四年 吾往河陽省墳墓 遇汝從嫂喪來葬
(우사년 오왕하양성분묘 우여종수상래장)
형수님께서 일찍이 너를 어루만지시고 나를 가리키며 이르시기를 한씨 집안에 양대에 걸쳐 너희들뿐이구나. 라고 하셨다.
당연히 너는 너무 어려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비록 그때를 기억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 말의 슬프고도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열아홉 살이 되어서 비로소 경성에 왔으며 그 후 4년 만에 집에 돌아가 너를 보았다
또 4년 후에 하양에 가서 성묘를 하다가 형수님의 영구를 모시고 와 안장하는 너를 우연히 만났다
又二年 吾佐董丞相於汴州 汝來省吾 止一歲 請歸取其孥
(우이년 오좌동승상어변주 여래성오 지일세 청귀취기노) :
明年 丞相薨 吾去汴州 汝不果來
(명년승상훙 오거변주 여불과래) :
是年 吾佐戎徐州 使取汝者始行 吾又罷去 汝又不果來
(시년 오좌융서주 사취여자시행 오우파거 여우불과래)
吾念汝從於東 東亦客也 不可以久
(오념여종어동 동역객야 불가이구)
圖久遠者 莫如西歸 將成家而致汝
(도구원자 막여서귀 장성가이치여)
그 후 2년 내가 변주에서 동승상을 보좌하고 있을 때 네가 와서 만난 적이 있었다. 1년간 머무르다가 돌아가 처자를
데려오겠다고 했었지.
그 다음 해에 승상께서 돌아가셔서 내가 변주를 떠나게 되어 네가 올 수 없었다.
이 해에 내가 서주에서 군무 처리를 도우면서 너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관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네가 또 올 수 없었지.
나는 네가 나를 따라 동쪽으로 온다 하더라도 동쪽 역시 객지이므로 오래 있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안정된 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서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그 곳에서 가정이 안정되면
너를 데리러 가려고 했다.
嗚呼 孰謂汝遽去吾而歿乎
(오호 숙위여거거오이몰호)
吾與汝俱少年 以爲雖暫相別 終當久相與處
(오여여구소년 이위수잠상별 종당구상여처)
故捨汝而旅食京師 以求斗斛之祿
(고사여이려식경사 이구두곡지록)
誠知其如此 雖萬乘之公相 吾不以一日輟汝而就也
(성지기여차 수만승지공상 오불이일일철여이취야)
아, 네가 나를 버리고 죽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너와 내가 모두 나이가 적어 서로 비록 잠시 떨어져 있다 해도 마침내는 오랫동안 함께 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버려두고 경사에서 객지 생활을 하며 얼마 되지 않는 녹봉을 구했다.
정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비록 높은 관직을 준다고 해도 너를 버리고는 하루라도 관직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去年 孟東野往 吾書與汝曰 吾年未四十
(거년 맹동야왕 오서여여왈 오년미사십)
而視茫茫 而髮蒼蒼 而齒牙動搖
(이시망망 이발창창 이치아동요)
念諸父與諸兄 皆康彊而早世 如吾之衰者 其能久存乎
(념제부여제형 개강강이조세 여오지쇠자기능구존호)
吾不可去 汝不肯來 恐旦暮死 而汝抱無涯之戚也
(오불가거 여불긍래공단모사 이여포무애지척야)
작년에 동야가 너 있는 곳에 갈 때 내가 너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를 "내 나이 아직 사십도 되지 않았는데,
눈이 침침하고 머리는 반백이 되었으며 치아도 흔들린다.
숙부와 형님들은 모두 건강하신데도 일찍 돌아가셨으니 나처럼 쇠약한 사람이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
내가 너에게 갈 수 없고 너는 오고 싶어 하지 않으니 내가 조만간 죽게 되면 너는 끝없는 슬픔을 품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孰謂少者歿而長者存 彊者夭而病者全乎
(숙위소자몰이장자존강자요이병자전호)
嗚呼 其信然邪 其夢邪 其傳之非其眞邪
(오호 기신연사 기몽사 기전지비기진사)
信也 吾兄之盛德而夭其嗣乎
(신야. 오형지성덕이요기사호)
少者彊者而夭歿 長者衰者而存全乎 未可以爲信也
(소자강자이요몰 장자쇠자이존전호 미가이위신야)
夢也 傳之非其眞也 東野之書 耿蘭之報 何爲而在吾側也
(몽야 전지비기진야 동야지서 경란지보 하위이재오측야)
나이 어린 자가 죽고 나이 많은 자가 살아남으며, 건강한 자가 먼저 죽고 병약한 자가 온전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아, 이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꿈이란 말인가? 전해온 소식이 사실 같지 않구나.
사실이라면 그토록 훌륭했던 형님의 덕행으로 그 후사를 요절하게 했단 말인가?
젊고 건강한 자가 일찍 죽고 나이 많고 쇠약한 자가 살아 온전하다니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꿈이라면 전해진 일이 진실이 아닐 것이다. 동야의 편지와 경란의 통보가 어찌 내 곁에 있단 말이냐.
嗚呼 其信然矣 吾兄之盛德而夭其嗣矣
(오호 기신연의 오형지성덕이요기사의)
汝之純明宜業其家者 不克蒙其澤矣
(여지순명의업기가자 불극몽기택의)
所謂天者誠難測 而神者誠難明矣
(소위천자성난측이신자성난명의)
所謂理者不可推 而壽者不可知矣
(소위리자불가추 이수자부가지의)
아! 사실이로구나. 형님의 훌륭한 덕행으로도 그의 후사를 일찍 죽게 했구나.
너처럼 순결하고 총명한 사람이 가업을 계승해야 하는데 선인들의 그 은덕을 받을 수가 없었구나.
천명이라는 것은 헤아리기 어렵고 하늘의 뜻은 이해하기 어렵구나.
이른 바 이치란 추측할 수 없는 것이고 목숨도 알 수 없는 것이로다.
雖然 吾自今年來 蒼蒼者或化而爲白矣 動搖者或脫而落矣
(수연 오자금년래 창창자혹화이위백의 동요자혹탈이락의)
毛血日益衰 志氣日益微 幾何不從汝而死也
(모혈일익쇠 지기일익미 기하불종여이사야)
死而有知 其幾何離 其無知 悲不幾時 而不悲者無窮期矣
(사이유지 기기하리 기무지 비불기시 이불비자무궁기의)
汝之子始十歲 吾之子始五歲 少而彊者不可保 如此孩提者 又可冀其成立邪
(여지자시십세 오지자시오세 소이강자불가보 여차해제자 우가기기성립사)
그렇다 하여도 금년 들어서 희끗희끗하던 머리가 희게 변하고 흔들리던 치아 중에 어떤 것은 빠져 나갔다.
체력도 날로 쇠해져가고 의지와 기개도 날로 쇠미해지니 너를 쫓아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사람이 죽어서 감각이 있다면 우리가 떨어져 지낼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죽어서 감각이 없다면 너와 헤어져 슬퍼할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그러니 오히려 슬퍼하지 않을 날이 영원할 것이다
네 아들은 이제 열 살이고 내 아들은 겨우 다섯 살이다. 나이가 어리고 건강한 사람이 일찍 죽는다면 어찌 이 같은 어린아이들이 또 어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嗚呼哀哉 嗚呼哀哉
(오호애재 명호애재)
汝去年書云 比得軟脚病 往往而劇
(여거년서운 비득연각병 왕왕이극)
吾曰 是疾也 江南之人 常常有之 未始以爲憂也
(오왈 시질야 강남지인 상상유지 미시이위우야) :
嗚呼 其竟以此而殞其生乎 抑別有疾而致斯乎
(오호 기경이차이운기생호 억별유질이치사호)
아, 슬퍼라. 아, 슬퍼라.
작년 네 편지에 이르기를 요즈음 각기병에 걸렷는데 가끔 심합니다. 라고 했었지.
나는 이르기를 "그 병은 강남 사람에게는 항상 있는 것이다 걱정할 만한 것이 아니다“
고 했었지.
아, 네가 그 병 때문에 죽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다른 병이 생겨 이런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
汝之書 六月十七日也 東野云 汝歿以六月二日 耿蘭之報無月日
(여지서 유월십칠일야 동야운 여몰이육월이일 경란지보무월일)
蓋東野之使者 不知問家人以月日 如耿蘭之報 不知當言月日
(개동야지사자 불지문가인이월일 여경난지보 부지당언월일) :
東野與吾書 乃問使者 使者妄稱以應之耳
(동야여오서 내문사자 사자망칭이응지이) :
其然乎 其不然乎
(기연호 기불연호)
너의 편지는 6월 17일에 쓴 것인데, 동야가 이르기를 "너는 6월 2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고 경란의 통보에는
날짜가 적혀 있지 않았다.
아마 동야가 심부름 보낸 사람이 집안사람에게 정확한 날짜를 물어 볼 생각을 못했고 경란의 통보에서는
날짜 언급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동야가 내게 편지를 보낼 때 심부름꾼에게 날짜를 물었는데 심부름꾼이 망령되이 들은 대로 대답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은가?
今吾使建中祭汝 弔汝之孤 與汝之乳母
(금오사건중제여 조여지고 여여지유모)
彼有食 可守以待終喪 則待終喪而取以來
(피유식 가수이대종상 즉대종상이취이래)
如不能守以終喪 則遂取以來 其餘奴婢 並令守汝喪
(여불능수이종상 즉수취이래 기여노비 병령수여상)
吾力能改葬 終葬汝於先人之兆 然後惟其所願
(오력능개장 종장여어선인지조 연후유기소원)
이제 내가 건중을 시켜 너를 제사지내고 네 아들과 유모에게 조문하게 했다.
네 아들과 유모가 먹을 것이 있어 기다려 상기를 마칠 수 있다면 상기가 끝날 뒤 그들을 데려 오겠다.
만약 상기를 마칠 수 없다면 바로 그들을 데려오고 남아 있는 비복들로 하여금 너의 상기를 지키게 하겠다.
내가 개장할 형편이 된다면 선영에 안장 하겠다 그런 뒤에 그들 소원대로 해 주마.
嗚呼 汝病吾不知時 汝歿吾不知日
(오호 여병오불지시 여몰오불지일)
生不能相養以共居 歿不能撫汝以盡哀
(생불능상양이공거 몰불능무여이진애)
斂不憑其棺 窆不臨其穴
(렴불빙기관 폄불임기혈)
吾行負神明 而使汝夭 不孝不慈
(오행부신명 이사여요 불효불자)
而不能與汝相養以生 相守以死
(이불능여여상양이생 상수이사)
아, 네가 병이 난 때도 나는 알지 못하고 네가 죽었는데 나는 날짜도 알지 못하였구나.
살아 있을 때는 너와 함께 생활하지 못했고 죽어서는 너를 어루만지며 나의 슬픔을 다 할 수도 없었다.
일관시킬 때는 옆에 있지도 못했고 하관할 때 구덩이에 가보지도 못했다.
나의 행실이 신명에게 죄를 지어 너를 요절하게 하고 불효하고 어질지 못하게 하였다.
서로 돕고 살 수 없었으며 서로 죽음을 지켜보지 못했다.
一在天之涯 一在地之角
(일재천지애 일재지지각)
生而影不與吾形相依 死而魂不與吾夢相接
(생이영불여오형상의 사이혼불여오몽상접)
吾實爲之 其又何尤
(오실위지 기우하우)
彼蒼者天 曷其有極
(피창자천 갈기유극)
自今以往 吾其無意於人世矣
(자금이왕 오기무의어인세의)
너는 하늘 저 끝에 있고 나는 땅 모퉁이에 있어서
살아서는 네 그림자도 내 몸에 의지하지 못했고 죽어서는 영혼도 꿈속에서 나와 만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내 탓이니 무엇을 원망하리오.
저 푸른 하늘이여, 어찌 나의 슬픔이 끝이 있겠는가?
이제부터는 나는 인간 세상에 아무런 낙이 없게 되었구나.
當求數頃之田 於伊潁之上 以待餘年
(당구수경지전 어이영지상 이대여년)
敎吾子與汝子 幸其成 長吾女與汝女 待其嫁 如此而已
(교오자여여자 행기성 장오여여여녀 대기가 여차이이)
嗚呼 言有窮而情不可終
(오호 언유궁이정불가종)
汝其知也邪 其不知也邪
(여기지야아 기부지야아)
嗚呼哀哉 尙饗
(오호애재 상향)
이제 고향에 작은 땅을 마련하여 이수와 영수가에 여생을 보내고 싶다.
너와 내 아들을 가르쳐 성장하기를 바라며 너와 내 딸을 키워 출가하기를 이처럼 기다릴 뿐이다.
아, 말은 다 마쳤지만 슬픈 마음은 끝이 없구나.
너는 내 뜻을 아는가 모르는가?
아, 슬프다. 흠향해다오
............
한유는 唐代의 문호로서 고문운동의 선도자아며 唐宋八大家중의 한사람이다. 선조가 창려에 살았기 때문에 昌黎선생이라고도 한다.
그는 南陽(지금의 하남성)에서 태어나 3세때에 부모를 여의고 형수인 鄭氏에게 양육되었다.
어릴 때부터 각고의 노력하는 자세로 학문에 임하여 六經과 諸子書에 통달하였고 성인의 도를 밝히는데 큰 뜻을 두어 孟子 이후 단절된 유가 학통의 승계를 자임했으며, 벼슬은 이부시랑에 이르럿으나 불교의 영입을 반대하다가 남방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이글은 그의 조카의 죽음을 애도하는 슬픈 글이다.
이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인자한 부모가 아니다 라는 사람도 있듯. 참으로 애틋하고 가슴 아픈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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