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荀子 勸學 (순자 권학)

甘冥堂 2012. 1. 5. 13:04

 

荀子 勸學 (순자 권학)

 

君子曰 學不可以已矣. 青 取之于藍 而青于藍  冰則為水 而寒于水

木直而中繩 輮而為輪 其曲中規  槁暴 不復挺者 輮使之然也 .

是故木從繩則直 金就礪則利 君子博學而日參省已焉 故知明則行無過.

군자왈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색은 쪽에서 얻지만 쪽보다 푸르며 얼음은 물로 만들어지지만 물보다 차갑다.

나무가 곧아서 먹줄에 들어 맞는다 해도 굽혀 수레바퀴를 만들면 굽은 자에 맞게 되고 비록 마싹 마른다 하더라도 다시 펴지지 않는 것은 굽혔기 때문이다.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아지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는 것 처럼 군자도 널리 배우며 매일 자기에 대해 살피면 밝아지고 행동에 허물이 없게 될 것이다.

 

是故不升高山 不知天之高也.  不臨深谿 不知地之厚也.  不聞先王之遺道 不知學問之大也.

於越戎貉之子 生而同聲 長而異俗者 教使之然也.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 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것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계곡에 가 보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것을 알지못하며, 옛 임금들이 남긴 말씀을 듣지 못하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오나라나 월나라 오랑캐들의 자식들도 태어났을 때에는 같은 소리를 내지만 자랄수록 풍습이 달라지는 것은 가르침이 다르기 때문이다.

 

孔子曰 吾嘗終日思矣 不如湏㬰之所學. 吾嘗跂而望之 不如升高而博見也.

升高而招 非臂之長也  而見者遠 順風而呼 非聲加疾也 而聞者著

假車馬者 非利足也 而致千里 假舟檝者 非能水也 而絶江海. 

君子之性非異也 而善假于物也.

공자왈,나는 일찌기 하루 종일 생각만 해본 일이 있었으나 잠깐동안 공부한 것만 못하였다. 나는 일찍이

발돋음을 하고 바라본적이 있었으나 높은 곳에 올라가 널리 바라보는 것만 못하였다.

높은 곳에 올라가 손짓을 하면 팔이 더 길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멀리서도 보이며, 바람을 따라 소리치면

소리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들리며,

수레와 말을 타면 발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천리에 도달할수 있으며, 배를 빌려 타면 수영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강을 건널수 있다.

군자의 성품은 다르지 않다. 사물을 빌려 잘 활용하는데 있다.

 

南方有鳥焉 名曰蒙鳩 以羽爲巢 而編之以髮 繫之葦苕 風至苕折 卵破子死.

남방유조언 명왈몽구 이우위소 이편지이발 계지위초 풍지초절 난파자사.

巢非不完也 所繫者然也.

소비불완야 소계자연야.

西方有木焉 名曰射干 莖長四寸 生於高山之上 而臨百仞之淵

서방유목언 명왈야간 경장사촌 생어고산지상 이임백인지연

木莖非能長也 所立者然也.

목경비능장야 소립자연야.

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 蘭槐之根是爲芷 其漸之滫 君子不近

봉생마중 불부이직 백사재녈 여지구흑 난괴지근시위지 기점지수 군자불근

庶人不服 其質非不美也 所漸者然也.

서인불복 기질비불미야 소점자연야.

故君子居必擇鄕 遊必就士 所以防邪僻而近中正也.

고군자거필택향 유필취사 소이방사벽이근중정야.

 

남쪽 지방에 새가 있는데 이름을 몽구라고 한다. 깃털로 집을 짓고 머리카락으로 집을 엮어 그것을 갈대의 이삭에 매어주었다. 바람이 불어와 이삭이 꺾여서 알이 깨어지고 새끼가 죽었다.

둥지가 완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맨 곳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서쪽 지방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을 야간이라고 한다. 줄기의 길이가 네 마디이나 높은 산 위에서 자라나 백 길이나 되는 연못을 굽어보고 있다.

나무의 줄기가 길기 때문이 아니라, 서 있는 장소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쑥이 삼밭에서 자라면 잡아주지 않아도 곧아지고, 하얀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그와 함께 검어진다. 난괴의 뿌리를 지(芷)라고 한다. 그것을 오줌에 담가두면 군자는 가까이 하지 않고 서민들도 몸에 차지 아니한다. 그 본래의 성질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담가두었던 곳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거처함에 있어 반드시 마을을 가리고, 교유에서 반드시 사인(士)에 접근하니, 사악한 길에 빠짐을 막고 중정한 덕에 접근하기 위한 때문이다.

 

物類之起 必有所始 榮辱之來 必象其德 肉腐出蟲 魚枯生蠹 台慢忘身 禍災乃作

물류지기 필유소시 영욕지래 필상기덕 육부출충 어고생두 태만망신 화재내작

强自取柱 柔自取束 邪穢在身 怨之所構 施薪若一 火就燥也 平地若一 水就溼也.

강자취주 유자취속 사예재신 원지소구 시신약일 화취조야 평지약일 수취습야.

草木疇生 禽獸羣焉 物各從其類也. 是故質的張而弓矢至焉 林木茂而斧斤至焉

초목주생 금수군언 물각종기유야. 시고질적장이궁시지언 임목무이부근지언

樹成蔭而衆鳥息焉 醯酸而蜹聚焉 故言有召禍也 行有招辱也 君子愼其所立乎.

수성음이중조식언 혜산이예취언 고언유소화야 행유초욕야 군자신기소입호.

 

사물의 발생은 반드시 시초가 있다. 영예나 치욕을 초래함이 반드시 그 사람의 덕을 나타낸다.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생겨나고 물고기가 마르면 굼벵이가 생겨난다. 게으르고 몸을 함부로 하면 재앙이 생긴다.

강하면 저절로 꺾이게 되고, 유약하면 스스로 속박을 자초한다. 나의 몸에 사악과 더러움이 있으면 원한이 맺어지는 원인이 된다. 땔감 펴기를 고르게 하면 불길은 마른 데로 향한다. 땅을 평평하게 하기를 고르게 하면 물은 젖은 데로 향한다.

풀과 나무는 무리지어 자라고, 새와 짐승들은 떼를 지어 사니, 만물은 모두 자기와 동류의 것을 따른다. 그러므로 사후(質:射侯)와 정곡(的:正鵠)이 장치(張)되면 활과 화살이 그곳에 날아오게 되며, 숲과 나무가 무성하게 되면 큰 도끼와 작은 도끼가 그곳에 쓰이게 된다.

나무가 그늘을 이루게 되면 많은 새들이 그곳에서 쉬게 되고, 식초가 시어지면 초파리가 그곳에 모이게 된다. 그러므로 말로써 화를 부르는 경우가 있고, 행동으로 모욕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으니, 군자는 立身하는 바를 근신해야 한다.

 

積土成山 風雨興焉 積水成淵 蛟龍生焉 積善成德 而神明自得 聖心備焉.

적토성산 풍우흥언 적수성연 교룡생언 적선성덕 이신명자득 성심비언.

故不積蹞步 無以至千里 不積小流 無以成江海.

고부적규보 무이지천리 부적소류 무이성강해.

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則亦及之. 功在不舍 鍥而舍之 朽木不折

기기일약 불능십보 노마십가 즉역급지. 공재불사 계이사지 후목불절

鍥而不舍 金石可鏤. 螾無瓜牙之利 筋骨之强 上食埃土 下飮黃泉 用心一也.

계이불사 금석가루. 인무조아지리 근골지강 상식애토 하음황천 용심일야.

蟹六跪而二螯 非蛇蟺之穴 無可寄託者 用心躁也.

해육궤이이오 비사선지혈 무가기탁자 용심조야.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거기에서 비와 바람이 일어난다. 물이 괴어 연못이 되면 교룡이 살게 된다. 선을 쌓아 덕이 이루어지면 신명한 통찰력을 스스로 얻어 성인의 마음이 갖추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리 길을 갈 수가 없다. 작은 물줄기를 모으지 않으면 강이나 바다를 이룰 수 없다.

천리마도 한 번 뛰어서는 10보의 거리를 갈 수가 없다. 둔마도 10일을 가면 역시 따라 잡는다. 공은 중단하지 않는데 있다. 조각을 하다가 중단하면 썩은 나무도 자르지 못한다.

조각을 하다가 중단하지 않으면 쇠붙이나 돌도 새길 수 있다. 지렁이는 날카로운 이나 손톱, 강한 근육과 뼈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위로는 먼지나 흙을 먹고 아래에서는 지하의 샘물을 마시니, 마음을 쓰는 것이 전일하기 때문이다.

게는 여섯 개의 발에다가 두 개의 집게발이 있지만 뱀이나 장어의 구멍이 아니면 의지하고 살 수 있는 데가 없으니, 마음을 쓰는 것이 산만하기 때문이다.

 

是故無冥冥之志者 無昭昭之明 無惛惛之事者 無赫赫之功. 行衢道者不至 事兩君者不容.

시고무명명지지자 무소소지명 무혼혼지사자 무혁혁지공. 행구도자부지 사양군자불용.

目不能兩視而明 耳不能兩聽而聰. 螣蛇無足而飛 梧鼠五技而窮.

목불능양시이명 이불능양청이총. 등사무족이비 오서오기이궁.

詩曰“尸鳩在桑 其子七兮 淑人君子 其儀一兮 其儀一兮 心如結兮.” 故君子結於一也.

시왈“시구재상 기자칠혜 숙인군자 기의일혜 기의일혜 심여결혜.” 고군자결어일야.

 

 

그러므로 조용하고 정성스러운 뜻이 없는 자는 밝은 지혜가 없고, 묵묵히 정성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혁혁한 공로가 없게 된다. 여러 길을 한꺼번에 가려는 자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두 임금을 섬기려는 자는 용납되지 못한다.

눈은 두 개의 물건에 시선을 두면 분명히 보지 못하고, 귀는 두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명확하게 듣지 못한다. 등사는 발이 없으면서도 날고, 날다람쥐는 다섯 가지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통치 못하다.

시경에 이르기를“ 뻐꾹새는 뽕나무에 사는데 새끼는 일곱 마리. 훌륭한 군자여 그 태도는 한결같네. 그 태도가 한결같고 마음은 맺은 듯이 단단하구나.” 그러므로 군자는 全一한 자세를 굳게 지킨다.

 

學惡乎始? 惡乎終? 曰:其數則始乎誦經, 終乎讀禮, 其義則始乎為士  終乎爲聖人

真積力久則入, 學至乎 没而後止也.

故學數有終 若其義則不可須臾舎也. 爲之人也 舎之禽獸也.

 

학문은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나는가? 그 방법은 경문을 외우는데서 시작하여 예기를 읽는데서 끝나며, 그뜻은 선비가 되는 것에서 시작하여 성인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노력을 오랫동안 쌓으면 그런 경지에 들어갈 수 있지만, 학문이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의 방법에는 끝이 있지만 그 뜻은 잠시라도 버려둘 수 없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 것은 사람이고 학문을 버려두는 것은 짐승이다.

 

君子之學也 入乎耳 著乎心 布乎四體 形乎動靜.  端而言 蠕而動 一可以為法則.

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 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

古之學者為已 今之學者爲人. 君子之學也 以美其身 小人之學也 以為禽犢.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붙어서 온몸으로 퍼져 행동으로 나타난다. 소곤소곤 말하고 점잖이 움직여 모두가 법도가 될만하다.

소인은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네치밖에 안되니 어찌 일곱자나 되는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

옛날의 학자들은 자기자신을 위해 학문을 하였고 지금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학문을 한다.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그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고, 소인이 학문을 하는 것은 남에게 내놓아 이용하기 위해서이다.(勸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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