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산책
유가(儒家)와 제자백가(諸子百家)
1. 유가의 시작
1) 유가의 시조 - 공자(孔子)
▪ 기원전 551-479, 주(周)의 종법 봉건제가 무너진 춘추시대, 인간과 사회에 대해 고민한 사상가, 교육가.
사후 제자들에 의해 공자의 언행을 담은 『논어論語』가 편찬된다.
▪ 인(仁), 서(恕), 예(禮), 군자(君子), 정명(正名), 덕치(德治)
: 공자에게 사람은 다른 이들과 관계 맺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자기[己]란 “타인들과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관계적 주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서恕’는 이런 인간의 이해에서 나온다.
공자가 강조하는 덕목인 인간다움인 ‘인仁’ 역시 관계적인 개인들이 다른 이들과 관계하면서 갖게 되는 통합적인 덕목이다.
스스로를 능숙하게 감당해서 사회적 역할인 ‘예禮’를 잘 수행할 수 있을 때[克己復禮], 사람은 공동체의 당당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사회 역시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부과된 사회적 호칭들에 상응하는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상태여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름을 바로 해야 하는[正名]’ 상황인 것이다.
공자는 이러한 ‘정명’을 실현하기 위해 위정자들이 스스로의 덕德으로 자신을 바로잡아,
사회 구성원들 역시 바로잡는 덕치(德治)를 말한다.
공자가 말하는 인간상인 군자(君子)는 이상과 같은 공자의 사상을 잘 대변해준다.
군자란 “자기 수양의 과제와 타인들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과제가 하나로 잘 통합되어 있는 자이다.”
▪ 공자 사상에 대한 비판
예는 위계적이고 차별적인 신분질서를 전제로 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문화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평등한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관점에서 보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 유가의 특징
1. ‘수기안인(修己安人)’ 혹은 ‘수기치인(修己治人)’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 자기 자신을 수양하여 타인을 편안하게 한다(타인을 다스린다).
☞ 자기 수양을 통해 현실공동체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도모하는 것
cf) 인본주의적인 경향, 교육-학문-학습, 문화적 배움에 대한 중시 등.
2. 유가에 대한 비판
개인의 도덕 수양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안주하게 만드는 이기주의적 발상을 담고 있다.
사회구조가 가져온 문제까지도 개인의 도덕문제로 환원시켜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으며,
그 결과 개인의 도덕적 반성을 강요하면서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음으로써 봉건도덕 전체를 미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현실에서는 사회의 불의와 부정에 대해 눈을 감는 사회성의 부정과 실천성의 결여로 나타난다.
2. 전국시대의 유가들
1)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
: 양주(楊朱) 및 묵적(墨翟)을 비판하며 유가의 가치를 이었던 사상가.
: 성선(性善), 왕도정치(王道政治)
: 맹자는 인간이 타고 태어난 본성은, 자연스러운 모습 자체로는 선하다고 보았다.
누구라도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다면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런 선한 마음을 백성들에게 펼쳐 정치를 하는 것이 곧 왕도정치다.
2) 순자荀子, 기원전 298-238.
: 문하에서 법가인 한비자(韓非子)와 이사(李斯)가 나올 만큼 냉철했던 유가의 사상가.
: 성악(性惡), 예치(禮治)
: 순자는 인간의 타고 태어난 본성이 욕구와 욕망이라고 보았다. 이 욕구와 욕망을 제약 없이 추구하면
결국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기에 악하다고 보았으며, 이 악한 본성을 예(禮)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여겼다.
● 맹자와 순자의 비교 :
맹자의 성선설이란 긍정적이고 좋은 감정을 사회적으로 더욱 확충하자는 것이라면
순자의 성악설이란 부정적인 감정, 문제를 일으킬수 있는 감정을 조절하여 사회적 화합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디.
이것이 바로 ‘情’의 인간학에 기반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유가가 내린 두 가지 처방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3. 제자백가의 사상가들
1) 도가(道家)
양주楊朱
: 기원전 440-360?, ‘나 자신을 위해 산다(爲我)’는 학설로 대표되는 사상가.
: ‘위아’는 관계적 자기를 중시하는 유가의 눈에 부정적으로 보여, 맹자는 양주를 심하게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양주의 ‘위아’는 이기적이라기보다, “외물을 가볍게 보고 생명을 중시(경물중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양주의 사상은 생명을 중시하는 삶-중심주의 사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양주는 이기주의가 아닌, 모든 인간이 몸을 가진 개체, 평등한 개인일 뿐임을 역설하는 개인주의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노자老子
: (생몰 불상) , 『도덕경(道德經)』으로도 알려진 『노자(老子)』의 저자.
: 『노자』의 ‘도’는 비인격적이며 저절로 그러한 것[自然]이기에,
‘도’에 순응하여 ‘덕’을 체현한 ‘성인’의 정치 역시 따로 하는 것 없는 ‘무위(無爲)’의 정치다.
그러나 이는 덕으로써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뿐 따로 하는 것 없는 유가의 무위 정치와는 성격이 다르다.
‘도’가 천지만물에 인정사정없듯, ‘도’의 정치는 무정하게 공평무사한 ‘무위’의 정치일 뿐이다.
『노자』에는 이 ‘무위’의 정치를 위한 역설적인 기술들이 제시되어 있다.
『노자』가 “권력의 기술에 관한 책”이라고 말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자莊子
: 기원전 369?-286?, 비판적인 태도로 ‘변화[化]’를 적극적으로 사유한 사상가.
: 장자에게 변화는 자기동일성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사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변화를 통해 기존의 가치를 넘어 더 큰 지혜와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이미 ‘정해져 있는 옳음[爲是]’이 단순한 선입견, 편견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장자는 변화를 통해, ‘인시(因)是)’, 즉 ‘상황에 따라 창조되는 옳음’을 권한다.
때문에 장자는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자아[我], 자기라는 개념에도 회의적이다.
장자는 양주처럼 자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죽음 역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장자는 생명을 힘인 ‘기(氣)’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2) 묵가(墨家)
: 묵적(墨翟, 기원전 480년경-390년경)을 필두로 피지배층의 편에 서서 ‘겸애(兼愛)’와 ‘교리(交利)’를 말했다.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사랑하라는 ‘겸애’와
서로 이익을 나눈다는 ‘교리’는 이래야만 모든 이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공리주의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로 묵가는 겸애와 교리가 하늘의 뜻이라고까지 말하며 엄격한 실천성을 보였다.
이 맥락에서 묵가는 비실용적으로 보이는 유가적 문화에 반대했고, 지배층의 침략전쟁에도 과감하게 맞섰다.
그러나 맹자 등은 묵가의 사상이 인간의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감정 등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3) 법가(法家)
: 엄정한 법(法)과 제도 및 권세[勢], 효과적인 정치술[術]을 통한 사회-정치를 지향했다.
춘추시대 관자(管仲, ?-기원전645)를 위시해,
상앙(商鞅, ?-기원전338),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280-233) 등이 법가의 사상가들로 꼽힌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보는 관점에서는 순자 성악설과의 연관을 찾아볼 수 있고,
평민, 귀족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에서는 『노자』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능률과 실용성을 중시한 법가는 유가의 문화적 가치 추구에 비판적이었으며,
실제로 이들이 꾀한 실제적인 부국강병의 정책은 진(秦)의 천하통일에 기여 한다.
성리학(性理學)과 주희(朱熹)
▪ 신유학의 등장 배경 : 유가와 시대의 흐름.
: 한(漢)이 세워진 후, 유학은 동중서(董仲舒) 등에 의해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학문으로 올라서고,
내부적으로는 훈고학(訓詁學)의 경향으로 흘러갔다.
이런 상황에서 유학의 자기수양 및 사회참여 정신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 한(漢)의 몰락 이후 대륙은 또다시 전란에 휩싸였으며 당시의 사람들은 노자, 장자 등의 사상을 다시금 주목했다.
위진 현학(魏晉 玄學)의 등장이었다.
불교 역시 후한(後漢)-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에 전래되어, 수(隋)·당(唐) 때에 꽃을 피운다.
: 수·당 이후에는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기를 거쳐 문치주의를 기치로 내건 송(宋)이 등장한다.
그러나 송(宋)은 외세의 침입에 대항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과거제도를 통해 관료가 될 수 있었던 유가적 소양을 지닌 사대부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 신유학이란?
: 도가, 불가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형이상학적 측면을 보강한 새로운 경향의 유학.
송나라 주희의 집대성으로 주자학, 송학, 이학, 성리학, 도학 등으로 불린다.
신유학의 집대성자 : 주희(朱熹)
▪ 호는 회암(晦庵), 1130-1200. 남송(南宋)인. 이른바 북송오자의 학문을 집대성한 신유학의 대학자.
1. 주희의 세계에 대한 이해 : 이기론(理氣論)
1) 리(理)와 기(氣)
▪ 리(理) : 우주의 궁극적 원리, 이치 : ‘사물을 사물이게 하는 원리(所以然之理)’
▪ 기(氣) : 리와 함께 하며 사물을 형성하는 일종의 질료(+α)
“천지간에는 理도 있고 氣도 있다. 理는 형이상적인 도(道)이며, 사물을 생성하는 근본이다.
기는 형이하적인 기(器)이며, 사물을 생성하는 도구(具)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에는 반드시 이 理를 품부받은 뒤에 성(性)이 생기고,
반드시 이 기를 품부받은 뒤에 형체(形)가 생긴다.”
▪ 理와 기의 관계 : ‘서로 떨어지지도 않지만 섞이지도 않는다(不相離不相雜)’
그러나 理는 기보다 근본적이다.
2) 사물들은?
▪ 理와 기가 함께 있는 존재.
▪ 우리가 각각의 사물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것은 기 때문이다. (“기는 감각이 가능한 것들, 측량이 가능한 것들
- 현상, 신체, 물질, 도구, 수단”)
반면 理는 배후에서 사물을 사물이게 한다(“理는 사물의 본질, 또 사물의 존재 목적에 해당하는 개념”.
하나의 사물이 사라지는 것은 그 사물을 이루고 있던 기가 흩어지는 것일 뿐, 그 사물을 사물이게 한 理는 영원하다.
▪ 그래서 각각의 사물들은 동일한 리를 갖고 있어도 기로 인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 영희와 순희는 모두 인간의 理를 갖고 있지만 강인한 기질을 타고 난 영희는 씩씩하고, 부드러운 기질을 타고난 순희는 차분하다.
▪ 또, 기질이 서로 다르더라도 영희와 순희는 모두 인간이므로, 인간이 타고난 본성의 理를 쫓게 된다.
이를테면 영희와 순희는 모두 부모에게 효를 하는데, 이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理를 따른 것이다.
3) 理의 의미와 특징
▪ ‘사물을 사물이게 하는 것(사물의 규율 : 所以然之理-所以然之故)’이며 동시에
‘도덕의 원칙(사물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 所當然之理-所當然之則)’
▪ 인간은, 행위에 있어서 당연한 이치, ‘소당연지리’를 쫓아야 하며,
신유학은 도덕·윤리적인 ‘소당연지리’의 측면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2. 주희의 성인되기 : 수양·공부론(工夫論)
◉ ‘거경궁리(居敬窮理)’ : 경건함에 거하며 理를 끝까지 탐구하라
1) ‘거경(居敬)’ : 경건함에 거한다.
“성인의 천만마디는 사람들에게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하라(存天理, 滅人欲)’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 ‘경건함’을 안에 보존하면 인욕은 자연히 생기지 않을 것이다.”
2) ‘궁리(窮理)’ : 理를 끝까지 탐구한다.
▪ 주희: 『대학(大學)』 ‘격물(格物:사물에 이른다)’을 ‘궁리(窮理)’로 제시한다.
주희의 『대학장구(大學章句)』
“‘격물’의 ‘격(格)’은 ‘이른다(至)’는 뜻이고 ‘물(物)’은 ‘일(事)’과 같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그 지극한 것이 이르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치지’가 ‘격물’에 달렸다는 말은, 나의 앎을 지극히 하려면 사물에 나아가 그 理를 궁구함에 있다는 얘기다.”
▪ 『대학』의 ‘격물치지’에 대한 주희의 해석.
: 각각의 사물(사태)에 나아가 그 안에 있는 理를 탐구해서 앎을 지극하게 해야 한다.
‣ 모든 사태와 사물의 理를 탐구해서 앎이 지극해진다면,
인간은 각각의 사태에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따라 스스로를 수양할 수 있다.
‘격물(궁리)’하여 ‘치지’한 연후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왕양명(王陽明)과 양명학(陽明學)
1) 왕수인(王守仁)
: 호는 양명(陽明), 1472-1529, 출중한 군사전문가, 사상가, 교육가. 왕양명 생전 제자들이 그의 어록을 모아 만든 『전습록(傳習錄)』이 출간.
2) ‘용장대오(龍場大悟)’
“성인의 길은 나의 본성만으로 충분하다. 이전에 외부의 일과 사물에서 이치(理)를 찾은 것은 잘못이다.”
‣ 우리가 어떤 사태에서, 어떻게 해야 마땅한 것인지를, 모든 사물들을 쫓아다니며 배워서 알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 “용장대오는 ‘자기 밖의 사물들과 사태들 하나하나에 이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 속에서 이치를 찾아 헤매는 것은 성인이 되는 것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자각이었다.”
2. ‘심즉리(心卽理)’
1) 마음(心)이 곧 리(理)다 : ‘심즉리(心卽理)’
▪ ‘용장대오’는 마음이 곧 理라는 ‘심즉리(心卽理)’로 정식화된다.
▪ 어떻게 해야 마땅한 것인지의 ‘소당연지리’는 “내 마음 바깥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를 섬길 때 부모에게서 효(孝)의 이치를 구하겠는가? 임금을 섬길 때 임금에게서 충(忠)의 이치를 구하겠는가?
친구와 교제하거나 백성들을 다스릴 때 친구와 백성들에게서 신의(信)와 인(仁)의 이치를 구하겠는가?(『전습록』)”
2) 왕양명에게 ‘격물(格物)’이란?
▪ 왕양명이 말하는 마음은 개개인이 사적으로 갖고 있는 심중 같은 의미가 아니다.
▪ 왕양명은 마음이 곧 理라고 말했으며, 이 마음은 또한 기를 배제하지 않았다.
주희가 理와 기로 세계를 설명했다면 왕양명은 세계를 마음으로 설명한다.
▪ 이 때 ‘격’은 주희가 채택한 ‘이르다[至]’는 뜻이 아니라 ‘바르게 한다[正]’는 뜻이다.
→ 즉, 왕양명의 ‘격물’은 내 마음이 나쁜 의념을 냈을 때, 그 의념을 바로잡는 것이 된다.
3. 마음의 앎과 행위 : ‘지행합일(知行合一)’
1) 마음의 앎과 행위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 ‘지행합일(知行合一)’
‣ ‘마음이 곧 理’인데, 이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 어떻게 해야 마땅한가, 하는 사태에서 마음이 순수한 모습 그대로 움직인다면, 마음에서 앎과 행위는 분리되지 않는다.
☞ 찻길로 뛰어드는 꼬마를 보았을 때
‣ 어느 때 앎과 행위가 분리되는가?
: 내 마음에 사욕이 끼어들 때.
☞ 마땅히 도와줘야 하지만 상대방이 내 경쟁상대일 때 모른 척 하는 경우
2) ‘지행합일’의 근본취지
▪ 왕양명이 말하는 ‘지행합일’은 무엇을 독려하고 있는가?
: 자신의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 “자각적으로 깨어 있을 것을 촉구”
※ 단순히 ‘아는 것을 행하라’ 가 아니다.
3) ‘지행합일’의 의의 - 기존의 ‘지선행후’에 대한 비판
▪ ‘지선행후설(知先行後說)’과 ‘지행호발병진설(知行互發竝進說)’
: 주희에게도 올바른 일을 행위하는 것이,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지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
: 또 주희는 앎과 행위는 병행해서 나아가야만 한다는 사실[知行互發竝進] 역시 인정한다.
: 그러나 주희는 논리적 선후로는 아는 것이 먼저고 행위는 다음[知先行後]이라고 여긴다.
▪ 주희의 지행 이론에 대한 왕양명의 비판
▪ 왕양명은 위와 같은 주희의 지행 이론을 비판한다.
주희처럼 앎과 행위의 선후를 나누는 것은 앎과 행위를 완전히 별개로 보는 것이고,
이렇게 앎과 행위를 나누어 차례를 지으면, 수양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4. ‘치양지(致良知)’
- ‘양지(良知)’를 지극히 하여[致] 실현하라
: 『맹자』의 ‘양지(良知)’ + 『대학』의 ‘치지(致知)’ 를 합한 왕양명의 고유한 개념.
▪ 양지(良知)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양능(良能)’이고, 사려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양지(良知)’다.” ( 『孟子』)
▪ 치지(致知) : “앎을 지극히 하는 ‘치지’는 ‘격물’에 달려 있다.” (『大學』)
1) ‘양지(良知)’란?
▪ 마음 본체인 양지
“양지라는 것은 마음의 본체다.(『전습록』)”
: 마음은 따로 학습하거나 사고하지 않고도 어떤 사태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바를 안다[心卽理].
이 앎이, 배우거나 사고하지 않고도 있는 마음의 근본적인 능력이라, 이를 ‘양지’라고 부를 수 있다.
즉 ‘양지’는 마음의 본체로, “천리의 자연적인 밝은 깨달음이 발현되는 곳(天理自然明覺發見處”이며, 마음의 직각적인 도덕 능력이다.
▪ ‘진성측달(眞誠惻怛)’한 양지
: 양지는 진실로 측은해 하는 도덕적 감정이다.
▪ ‘시비지심(是非之心)’인 양지
: 양지는 옳고 그름을, 특히 자신의 옳고 그름을 안다.
▪ ‘허령명각(虛靈明覺)’한 양지
: 양지는 신령스럽게 텅 비어 있으면서 밝게 깨닫는다.
2) ‘양지(良知)’를 ‘치(致)’하는 공부
▪ 양지는 스스로의 상태를 자각한다. 스스로를 알기에 사사로운 의념이 일어날 때 이를 극복하는 공부를 한다면,
모든 사물들이 천리를 얻는다. 이것이 ‘치양지’다.
▪ ‘치양지’는 곧 ‘양지’를 회복, 확충하는 것이고, 지극하게 다하여[致] 실현하는 것이다.
“‘치지’라고 말하는 것은, 후세의 유학자들이 이른바 그 지식을 확충(擴充)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양지를 지극하게 다하는 것[致]이다.” 『대학문』
“내 마음 양지의 천리를 모든 사물에 이르게 하면 모든 사물은 모두 그 理를 얻게 된다.
내 마음의 양지를 이르게 하는 것이 ‘치지(致知)’다.” 『전습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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