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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와 생활문화-강원도 고성 왕곡마을

甘冥堂 2019. 11. 2. 09:01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마을의 현장 조사-민속마을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

 

    

들어가며

 

민속마을이라 하면 오래된 기와집과 초가집, 행랑채의 툇마루. 돌담길. 오래된 나무. 정자.

우물 등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왕곡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 풍류

음악회를 알리는 깃발을 보인다. 음악소리는 들리는데 막상 관람객은 없고 출연자들만 음악에 맞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출연자들은 모두 이곳 왕곡마을 주민들이었다. 이곳에 머물며 마을의 내력과 주민들의 일상생활 등을 살펴보았다.

 

 

본론

1. 왕곡마을의 형성과 풍수지리

 

신라시대 이후 우리 민족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사상 중 하나는 풍수지리이다. 풍수지리는 고려, 조선을 거치는 동안 도성과 읍치의 결정 등 국가 대사에 영향을 미쳐왔을 뿐 아니라 개인의 무덤, 집터. 건물의 형태를 결정하는 데 많은 작용을 하였다.

 

지리적 개념을 갖춘 풍수에서 좋은 땅은 적절한 크기의 산들이 동서남북 사방에 위치해 해당 터를 보호하고, 그 땅에서 필요한 물길이 홍수가 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고성군은 백두대간과 동해를 끼고 금강산과 설악산 등 빼어난 산세와 검푸른 동해바다를 품고 있는데, 왕곡마을은 송지호와 작은 봉우리 다섯 개에 둘려 쌓여 있어 국도변에서 불과 1.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나 외부와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드는 형태의 분지를 이루고 있다.

 

마을의 동쪽은 골무산(骨蕪山), 남동쪽은 송지호, 남쪽은 호근산(湖近山)과 제공산(濟孔山), 서쪽은 진방산(唇防山), 북쪽은 오음산(五音山)으로 막혀 있고 마을 북쪽에 위치한 오음산에서 남서방향으로 마을을 관통하며 흐르는 왕곡천 좌우에 종심이 깊은 촌락으로 형성되어 있어 지리적 개념을 갖춘 풍수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송지호에서 왕곡마을을 바라보면 마을의 형상이 방주형이기에 마치 물에 떠있는 배의 형국이어서 구멍을 내면 배가 가라앉기 때문에 마을에는 우물이 없었다고 한다. 우물이 없던 시절에는 개울물이나 샘물을 이용했다.

 

위와 같은 지형적인 특성과 풍수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지난 수백 년간 전란과 화마의 피해가 없었던 길지 중의 길지로서 한국전쟁과 근래 고성지역에서 발생했던 대형 산불 때에도 왕곡마을은 전혀 화를 입지 않았다.

 

 

2. 왕곡마을의 역사문화

 

왕곡마을은 14세기 고려 말 두문동 72 중의 한분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간성에 낙향한데서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의 손자 함염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한 이후 함씨 후손들이 이곳에서 대대로 생활해 왔다.

 

조선시대부터 이 지역은 면소재지였으며 인구증가에 따라 1884년에는 왕곡마을이 금성. 왕곡. 적동 세 마을로 분리되었다. 금성에는 양근 함씨가, 왕곡에는 강릉 최씨가, 적동에는 용궁 김씨가 많이 살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 세 마을을 다시 합쳐 오봉(五峰)이라 불렀고, 한국전쟁 후 오봉1, 오봉2리로 합병 분할되었다. 지금의 왕곡마을은 금성과 왕곡 두 마을이 합쳐진 곳으로 오봉1리에 해당되며, 오봉2리는 적동마을은 서쪽에 위치해 있다.

 

특히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이 원형을 유지한 체 잘 보존되었기에 2001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이처럼 왕곡마을은 고려 말, 조선 초 이래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600년 세월을 정주해온 전통 있는 마을이다.

 

 

3.왕곡마을의 가옥 배치 및 구조

 

마을 중앙의 개울을 따라 가옥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집과 집 사이에 비교적 넓은 텃밭이 있어서 따로 담이 없다. 가옥구조는 안방, 도장방, 사랑방, 마루, 부엌이 한 건물 내에 수용되어 있으며 부엌에 가축우리가 붙어 있는 겹집구조이다. 비교적 높은 담으로 둘러쌓인 뒷마당은 여인들의 공간으로 비개방적이다. 뒷마당은 보이지 않고 지붕만 보여 여인들의 활동공간을 배려한 구조이다.

 

1)'' 자형 기와집과 초가집

대부분 가옥의 본체는 조선시대 함경도 지방(관북지방) 겹집구조 자 형태이며, 초가집은 30여 채가 있는데 이는 국내 유일하게 초가집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고 현재 41동이 보존되어 있다. 부엌에 가축우리가 붙어 있는데 겨울이 춥고 긴 산간지방에서의 생활에 편리하도록 했다.

 

2)대문없는 마당

왕곡마을의 집들은 대문이 없다. 개방적이다. 즉 입구쪽으로 대문과 담장이 없다. 이것은 겨울철에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고 따뜻한 볕을 확보하기 위해 북쪽에 산을 등지고 남향을 하고 있는 경우로, 바람과 눈이 많은 이 지방의 기후 특성과 관계가 있다. 햇볕을 충분히 받고 적설로 인한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개방 형태의 마당 구조를 취했으며 가옥의 기단을 높게 만든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3)외양간과 부엌 그리고 난방

부엌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고 부엌 앞으로는 외양간을 붙여 온기를 유지했다. 부엌에서 통하는 뒷마당은 비교적 높은 담장으로 남의 시선을 차단했다. 완전 개방된 앞마당과 달리 담장으로 둘러친 뒷마당은 공간을 확보하여 북서풍을 막는데도 효과적이고 산죽(대나무)을 이용한 뒷담을 만든 가옥도 있다.

 

안방의 난방은 부엌에서 하도록 시설하였지만, 부엌을 기준으로 사랑방까지의 거리가 멀어 사랑방은 별도로 외부에서 난방을 할 수 있도록 별도의 아궁이를 시설하였다. 이 아궁이 위로는 가적(집의 측면벽에 달아 외쪽지붕으로 꾸민 것)을 달아 비나 눈을 막아 아궁이에 물이 차는 것을 방지하는 등 원활한 난방을 도모하였다.

 

또한 집마다 항아리굴뚝이 있는데 이는 진흙과 기와를 한 켜씩 쌓아 올리고 항아리를 엎어놓아 굴뚝에서 나온 불길이 초가에 옮겨 붙지 않도록 한 조상들의 지혜이며, 한국 전통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조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4.저잣거리

마을 입구에 새로운 저잣거리가 있다. 그러나 비어있는 듯 인적이 없는 게 아쉬웠다. 풍물시장의 구색으로 음식점. 기념품점. 난전 등이 있으나 고객이 없으니 허전하기만 하다.

그러나 마을 안쪽에는 민속주점 떡집 민박집 등이 있어 하루 정도 묵으며 마을체험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게 하였다.

 

5.마을축제

마침 방문한 날이 마을축제의 날이었다. 마을에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객석에는 일반 평상을 놓아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적절한 시간대가 아니었는지 관객이 서너 명에 불과 했고, 거기에 우리 일행이 참가하니 분위기가 다소 고조되었다. 손수건을 한 장씩 나누어주며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환영해 준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마을 주부들 12명이었다. 악기라고 해봐야 별것 없다. 집안에서 쓰는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빨래방망이나 주걱을 두드려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전부였다.

 

물동이에 물을 반쯤 채우고 바가지를 엎어놓고 주걱으로 두드리면 부드러운 음색으로 바뀌며, 방안에서 쓰는 다듬이돌을 방망이로, 또 빨래할 때 사용하는 빨래판을 비스듬이 세워 빨래방망이로 박자를 친다. 얼핏 난타공연 비슷해 보이지만 아마추어 마을주민이기에 더욱 정감이 간다.

 

흰색 저고리, 검은 치마에 흰 앞치마로 복장을 통일하고 머리띠를 두른 모습이 시골 아낙네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이 공연이야말로 향토색 물씬 풍기는, 그리고 가무를 즐기는 한민족의 기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무대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묻지 마세요등 트로트풍의 노래는 박자도 제대로 맞고 열심히 재미있게 부르는 것이 인상 적이었다. 오육십 대 이상의 마을 부녀자분들이 이런 정도의 음을 맞추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했을 것이다. 억지로 꾸미지도 아니하고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상설 체험 프로그램으로 전통의상체험. 디딜방아. 고누놀이 구슬치기. 굴렁쇠 굴리기. 비석치기 놀이 등도 있었다. 전통가옥에 민박도 할 수 있도록 했다.

 

 

나가며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며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 한두 곳이겠느냐 마는, 이번 왕곡마을 답사는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민속마을로, 마을의 형성과 풍수지리를 살필 수 있었고, 지역과 기후에 따른 주거공간의 결합을 공부할 수 있었다.

 

또한 마을 주민 음악회에서 주민들의 순박한 모습과 토속적이며 창의적인 악기와 리듬에 매료되었고, 그들의 몸에 밴 친절과 환대에 고마워했다. 앞으로도 왕곡마을의 민속과 전통이 계속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답사를 마친다.

 

 

A4용지 편집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