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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의 이해- 장한몽에 대하여

甘冥堂 2019. 11. 2. 08:56

 공연예술의 이해와 감상

 


o장한몽에 대하여


 

들어가며

 

연극은 흔히 '배우가 희곡의 등장인물을 대신해 무대 위에서 관중에게 몸 동작과 말로 창출하는 예술'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이 정의는 불충분하며 이에 더하여 배우·희곡·무대·관객에 관해 우선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테면 아마추어 극이나 학생극·인형극 등도 훌륭한 연극임에는 틀림없지만 배우라는 말에 상식적인 개념을 쓰고 있는 한, 위의 정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희곡의 경우도 보통은 대사를 위주로 하고 지문의 보조를 받아서 의미를 전달하지만, 팬터마임이나 무언극같이 대사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무대도 서양식 프로시니엄 무대를 기준으로 하느냐 또는 많은 민속극의 경우처럼 공연이 행해지는 장소로 보느냐에 따라서 연극인지 놀이인지를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도 있다. 이렇듯 연극을 한마디로 완전하게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실제로 민족과 시대에 따라서 연극의 형태는 천차만별이다.

 

연기·의상·장치·무대 등의 양태뿐만 아니라 극본의 양식, 연기자의 실체 및 연극의 사회적 지위나 흥행조직에 따라서도 연극은 달리 구분된다. 더구나 연극은 종합예술일 뿐만 아니라 1회적인 순간예술이므로 역사적인 연구나 실증적인 연구를 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 연극이나 한국의 가면극에서 볼 수 있듯이 가상의 진실이나 핵심적인 사고(극본)를 한 장소(무대)에서 구경꾼(관객)을 대상으로 연기자가 실연해보인다는 기본 틀은 변하지 않는다.

 

연극은 궁극적으로 모방놀이(make-believe)의 세계이다. 사실성을 배제한다는 아방가르드 연극에서조차 나름대로 창조된 세계에 몰입한다. 또한 아무리 사실적인 연극이라 할지라도 현실과 다른 가상의 공간을 가진다.

 

1. 사례: 장한몽을 중심으로

 

1)연극의 장르는 비극·희극·소극(笑劇희비극·멜로드라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비극은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으로, 도덕적 결단에 따른 희생을 동기로 삼아 슬픈 종말을 맞는 양식이다. 반면 희극은 현세계의 질서를 존중하여 화해를 통해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소극은 희극의 한 변형으로서 내재적 사건진행보다는 기계적이고 육체적인 동작이 웃음을 자아내는 극이다. 희비극은 희극과 비극의 요소가 뒤얽힌 작품으로 현대의 부조리극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분명한 흑백논리적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여 악인에게 고난받던 주인공이 권선징악의 결말에 따라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로 감성을 극대화하여 대중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장한몽은 "이수일과 심순애"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소설이자 신파극이다.

1913513일부터 1913101일까지 전편이, 1915525일부터 1226일까지 속편이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언재되었던 장한몽(長恨夢)은 일제(一齊) 조중환(趙重桓) 원작의 장편 소설이었다.

 

1913년 유일서관에서 활자본(32)으로 발행되었고 1930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행되어 여러 판을 찍었다. 장한몽은 연재되자마자 인기가 오르고 "혁신단"에 의해 19138월 공연되어 절찬을 받았다. 이후 가요로도 만들어지고 영화로도 인기를 끌었다.

조선말 춘향전 이후 장기 베스트 소설 중 하나로 일제 하 식민의 설움을 달래준 신파극으로 끊임없이 상연되었고, 원작 장한몽은 최근까지 수십번이나 연극과 영화와 가요에 사용되었다.

 

2) 무성영화 장한몽의 변사

 

때는 바야흐로 춘 삼월! 비둘기 쌍쌍이 날으는 대동강 가에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두 청춘 남녀가 있었으니, 그 들의 이름은 이수일과 심순애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대동강 물이 변해 모란봉이 되고 모란봉이 변해 대동강이 될지라도 우리사이 서로 변치 말자고 약속 했건만...., 네가 나를 배반하다니....”

"수일씨! 흐흐흑!" "놔라! 이 바지를 놓으란 말이다. 바지 찢어질라..." "수일씨!"

"나는 너를 만나기 위에 어제 전당포에서 일자로 쭉 뻗은 단꼬 쓰봉을 빌려입고 왔단다."

"수일씨! 흐흐흑!"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야몬드 보석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란 말이냐?"

"김중배의 다이야몬드가 그렇게도 탐이 났더란 말이냐?" "에이! 더러운 년! 매춘부!"

"만일에 내년 이 밤 아니 내명년 이밤 저 달이 오늘 같이 흐리거던 이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애 너를 원망하고, 저 달이 흐려져 비가 오거든 나의 눈물인줄 알아라.

순애야! 돌아온 섣달 그믐날 비가 오거든 이 오빠는 만경창파에 몸을 싣고 21세기의 청춘으로 돌아 가련다." "순애야 이젠 기다리지 마라."

 

 

3) 추억

어릴적 음력 설날을 맞아 시골 사랑방에 동네 마실꾼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별안간 문이 활짝 열리며 서너명의 청년들이 들이닥친다. 당시 전기도 없던 시절이다. 연사가 어둠 속에서 변사역을 한다.

 

(대사:변사) 월색은 교교히 흐르는 대동강 달밤. 기러기 울음소리 애처럽다. 홀연 어둠속을 뚫고 나타난 두 청춘 남녀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였던 것이었다.

 

이어 이불 홑청을 뜯어 망토로 대신한 청년이 나온다. 이수일이다.

 

(이수일)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야몬드가 그다지도 탐이 나더냐. 에이, 악마, 매춘부!

만일에 내년 이 밤, 내명년 이 밤, 만일에 저 달이 오늘 같이 흐리거든

이 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애 너를 원망하고 어디에선가 우는 줄 알아라.”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먹이며 눈물을 훔친다.

 

(이수일)“순애야, 반병신 된 이 수일이도 이 세상에 당당한 의리 남아라.

이상적인 나의 처를 돈과 바꾸어 외국 유학 하려 하는 내가 아니다.”

 

(심순애) “! 수일씨,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무릎을 꿇으며 이수일의 바지가랑이를 잡는다.

 

(이수일) “놓아라. 잡으면 찢어진다. 너의 치마는 값 많은 끛동치마요. 내 쓰봉은 단돈 일 전에 지나지 않는 골프 쓰봉이다.”

 

(대사:변사) 이 말이 끝나자 한 발짝 두 발짝 띄어 놓기를 시작한 수일의 모습은 영영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마실꾼들이 크게 웃으며 즐거워 한다. 간단한 술상에 엿과 떡을 내 놓으며 이들을 격려한다.

음력 설날 명절은 보름간 마을 축제다. 마을분들도 좋아하고 청년들은 다시 옆동네 다른 집으로 옮겨 이 연극을 한다. 연극 축제나 다름없다.

 

놓아라. 잡으면 찢어진다.”라는 대목에서는 정말로 바지가 흘러내리거나 찢어지기도 했고,

놓아라. 놓지 않으면 나의 이 다 떨어진 구둣발로 너의 그 몽실몽실한 젖가슴을 팍 차버릴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정말로 심순애의 가슴을 발로 차버리는 웃기는 장면도 있었다.

변사의 대사도 큰 몫을 차지한다. “~하였던 것이다하면 될 것을, “~하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라고 하는 등 과장과 강조가 지나치기도 하였다.

 

4)당시에 황금심, 고복수가 부른 "장한몽가"가 크게 유행하기도 하였다.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兩人)이로다

악수논쟁(握手論定) 하는 것도 오날뿐이요 도보행진 산보(徒步行進 散步)함도 오늘뿐이다

수일이가 학교를 마칠 때까지 어이하여 심순애야 못 참았느냐

남편의 부족함이 있는 연고(然故)냐 불연(不然)이면 금전이 탐이 나더냐.

 

 

2.재현과 일루전의 생성

 

재현은 대본, 즉 회곡을 바탕으로 실현되는데, 그렇게 해서 연극의 역사는 오랫동안 문학적 연극이 주로했다. 재현의 원리는 연기에서 완성되며 흔히 체험의 연기라고 일컬어지는 사실주의 연기는 재현의 원리와 심리연구를 바탕으로 한 연기술로서 이후 등장한 다양한 현대 연기술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는 연극은 대상을 보는 주체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되고 희곡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무대를 자신의 상상력으로 완성하는 관객이 되었다.

 

사례로 본 장한몽이라는 신파극에서도 정해진 뚜렷한 희곡은 없고 그 대강의 이미지만 살릴뿐, 그때 그때 분위기에 따라 대사가 달라지고 액션이 추가되기도 하며, 웃음이 유발되거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등 다양한 연기술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나가며

 

장한몽에 대한 연극과 영화를 보았지만, 어릴적 보았던 이 연극이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전기도 안 들어오던 가난했던 시절, 아무런 무대장치도 없는 좁은 방안에서 사각모에 망토를 걸친 이수일과, 흰저고리 검은치마를 입은 심순애의 역할을 마을 청년들이 번갈아 돌아가며 연기하면, 마을분들이 때론 슬프게 때론 대견스럽게 주목하며 즐거워하던 장면이 되살아난다.

세월이 흘러 연극의 흐름이 어떻게 변했던, 한 가닥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신파극의 아련한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 것이, 뜻도 모를 현대극에 비할손가?